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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화연재] 류경호의 문화읽기(3)

류경호( 1) 2003.04.05 12:13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에 부닥치면 운세를 점치게 된다. 연말 연시가 되면 더해서 자녀의 학교 진학이나 취업, 사업 등등 부지기수의 사연으로 ‘철학관’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신문에 매일 실리는 오늘의 운세가 고정란으로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됐고, 스포츠신문의 한 광고면을 보면 전체가 운세상담 광고다.

지면과 인터넷을 가득 메운 '운세상담'

요즘은 인터넷으로 사주팔자를 입력하면 애정 문제며 재물에 관한 답을 듣는 모양이다. 또 전화를 걸면 몇 십 초당 얼마라며 유료전화 명목의 ‘복채’를 받기도 한다. 정말 변화된 세태를 실감케 한다.

유년시절 점과 관련해 한가지 기억이 생각난다. 매년초가 되면 할머니는 성황당에 간다며 집을 나선 적이 많았다. 다름 아닌 당골네를 찾아 우리들의 한 해 운수를 살피러 가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럭저럭 해거름에 집에 돌아오시면 올해는 찬 음식을 먹지 말라던가 동쪽으로는 가지말고 물가를 조심하라는 등등의 결과를 가지고 돌아오셨다.

우리도 내심 켕기는 마음으로 얼마간을 주의를 기울이며 이 말에 따르다가 잊어버리곤 했다. 또 아버지는 토정비결을 펼쳐놓고 그 해의 운수를 살펴보며 삶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매년 새 토정비결을 사 모으니 나중엔 몇 질이나 되는 연작소설처럼 묶여 시렁에 차곡차곡 쌓였다. 마치 근심 걱정은 그 책 속에 넣어두고 새해의 운세가 형통하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서일까 그저 ‘별 일’없이 그 해를 지냈던 것 같기도 하다.

운세상담이 늘어나는 이유는...

서두에 말했듯 세태의 변화는 다양한 생각을 부른다. 시대가 변한 탓이어서 새로운 형태의 운세상담 서비스가 다양한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더욱 살기 어려워지다 보니까 미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일까?

‘도사’를 찾는 발길에 문턱이 닳아 없어질 지경이라니 새삼 사람의 나약함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마음의 평안함이 우리의 조바심을 없애는 약이라면, 모두가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기어이 결과를 알아내고서야 속이 개운해지는 모양이다.

운명이란, 개척하는 것

필자도 한 때는 운명이 먼저 와 있고 사람은 그 운명을 좆아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서다. 또 일각에서는 운명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현실을 사는 우리에게 그 답은 오답이거나 신념을 잃은 낙오자일 가능성이 더 크다. 진인사 대천명이라고 했듯이 성실한 자세로 오늘을 묵묵히 살아간다면 분명 행복의 무지개는 가까이 있을 것이다.


* 필자는 40년이 넘는 지역 연극 역사를 갖고 있는 전주 창작극회에서 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앞으로 연극인으로써 또 생활인으로써 느끼는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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