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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인권이야기] 전쟁과 복지

평화와인권( 1) 2003.04.06 13:12

복지국가의 전제조건을 몇 가지 든다면 대략 3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야 한다. 국내적 갈등, 특히 자본과 노동의 갈등이 합리적으로 처리되는 민주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

둘째, 시장경제가 확립되어야 한다. 재화의 생산과 유통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소득과 재산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근로유인에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 사회적으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평화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국방비와 치안유지비가 과도하게 소요되고 그만큼 복지비는 줄어들게 된다. 평화시에는 셋째 전제조건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만 유사시에는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시작도 못해본 복지국가

그 동안 김대중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현 정부가 참여복지를 주창했지만, 첫째와 둘째 조건의 달성은 아직 요원하다. 또한 분단국으로서 국방비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햇볕정책으로 전쟁의 위험보다는 통일의 기대가 상승되어 왔는데,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으로 파병문제가 불거져 우리의 평화 분위기는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다. 이러다가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맛을 보지도 못하고 난국에 처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한다.

서구의 복지국가들은 사실 식민통치와 전쟁을 통해 수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복지국가들은 식민지로부터의 경제잉여 덕분에 자국의 노동자들을 위한 국가복지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또한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노동자에 대한 제도적인 사회보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총력전을 치르기 위해 노동조합의 양해를 얻어야만 했던 영국의 경우 처칠 수상은 평화시에 국민통합을 이루는 복지체제를 수립하여야 국가가 위험을 당할 때 노동자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한다.

일국 내에서 복지국가는 정의롭게 보이지만, 국제적 수준에서 보면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 민중의 고통이 제국의 복지로 현상된 것이다. 또한 국가안보를 위해 내부적인 안보로 등장한 것이 복지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또 하나의 전쟁, 교육시장 개방

오히려 식민통치를 당했고 전쟁을 통해서 많은 파괴와 피해를 겪은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전제부터 형성되지 못했다. 우리는 순전히 우리의 힘으로 복지국가를 세워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식민지배와 전쟁은 우리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형성에도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 이러한 모순들을 극복해내고 참된 민주주의를 정착하고 투명한 시장을 유지하면서 사회가 평화적으로 통합되는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매우 힘겨운 과제로 보인다.

그나마 민주주의가 진전되어 왔고, 시장의 투명화와 합리화를 위해 노력해오던 중에 우리는 이라크 침략전쟁과 파병이라는 복병을 만나게 된 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전쟁 위험과 직결되어 있어 작금의 분위기는 매우 불안하다.

게다가 우리는 또 하나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교육시장 개방이 그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물리적인 전쟁이라면 교육시장개방은 자본에 의한 시장전쟁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를 이끌어 온 것이 교육의 덕이라고 한다면, 이제 교육은 그 공공성을 상실하고 전문성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계급장으로서의 의미로 형해화되어 왔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교육개혁을 주장해왔지만, 결과는 점점 빗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외국 자본에게 교육시장개방의 압력을 받게 된 것이다.

교육시장 개방은 교육의 시장화, 식민지화를 획책하는 길이다. 쳐들어오는 외국의 자본군대에게 항복의 절차를 밝히는 것이 교육개방 양허안이다. 만일 외국 자본이 수도권에 대학을 설립하면 수도권 소재 대학들은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은 현재 지방대학에 다니는 인력을 공급받아 그런대로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지방대학은 아예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 지방분권운동이 무색해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외국대학이 지방으로 들어오게 되어도 지방대학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지역사회 전체적으로는 학생들이 몰려오는 등 일시적으로는 이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대학이나 외국자본이 우리 지역을 위해 과연 무엇을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외국대학이 '지역'에 무엇을 기여할까

교육이 공공성을 유지한다면 교육 자체가 엄청난 복지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그것은 빈곤의 대물림을 예방하고 평등에 기여하게 된다. 그러나 교육이 시장화될수록 그것은 철저하게 반복지적이다.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키고 심지어 사회를 분열시키고 인간을 황폐화시킨다.

최근 곳곳에서 전쟁과 파병반대, 교육시장개방 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반대 세력 또한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대체로 가진 자들은 파병과 교육시장 개방에 우호적인 것 같다. 그 동안 내부적 안보로서 복지체제마저 부실해서 국가와 시장의 외부적 안보가 흔들릴 때 우리가 얼마나 굳건히 단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 나라가 오랫동안 동서로 갈려 얼마나 고통을 겪어야 했었던가? 이제 상하로 다시 분열되고 있는 느낌이다. 통합된 통일 복지국가에서 살아보고 싶다.


- 윤찬영 / 교수·전주대 사회복지학과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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