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문화연재]'욕'찾아 방방곡곡(2)

토로( 1) 2003.03.31 09:57

한국이나 미국이나 욕의 소재는 비슷하다. 주로 성(性)이나 성기, 항문 즉 부끄러운 신체 부위를 일컫는 말이 보편적으로 욕에 많이 쓰이는 말이고, 정도가 심한 욕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머니와 성(性)을 결부시킨 말이다.

그 예로 ‘son of a bitch’나 ‘motherfucker’를 들 수 있는데, bitch는 암캐를 가리키는 말이므로 son of a bitch는 ‘개새끼’에 가깝고, ‘motherfucker’란 제 어머니를 욕보일 놈이란 뜻이므로 ‘지이미 시팔’이란 뜻과 통한다.

씹과 좆이 가장 많더라

그 외에 남성의 성기를 빗댄 욕으로 ‘cock’이나 ‘dick’등이 있고 여성의 성기를 빗대는 욕으로는 ‘cunt’, ‘pussy’ 등이 있다. 항문을 빗대 ‘ass’ 혹은 ‘asshole’이라는 욕도 사용한다.

성행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suck’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욕으로 쓰이는데 ‘Suck my dick’이라든가 ‘cock sucker’ 등으로 흔히 쓰인다. (정확한 발음과 쓰임을 원하는 분은 스팸메일을 삭제하지 말고, 스팸이 인도하는 곳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늘씬한 백색의 미녀와 흑색의 남성이 등장하는 성인동영상을 확인하기 바란다)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직도 지식인 놀음처럼 생각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자녀가 ‘fuck you’나 ‘motherfucker’라고 말한다면 그 역시 박수를 치며 환영할 것인가 궁금하다.

“온갖 지랄 다 한다. 지 에미 오줌인가 쇠오줌인가 그것도 모르고 예끼 호로자슥아.”
― 봉산탈춤(이두현 채록본), 제 6과장 할미 영감

“꼬라지 꼬라지 얽어도 장에 가고, 굶어도 떡 해 먹고, 성밑 집에 오구하고 통시 개구리 보지 문다더니 꼬라지…”
― 봉산탈춤(이두현 채록본), 제 2과장 양반 마당


한국사회 욕의 기본은 음양조화의 '이원론'

욕의 소재는 국경이 없다. 우리말에서도 욕에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은 위의 예에서 보이듯 성기에 관련된 것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욕할 일도 아니다. 세상 모든 것에는 이치와 근본이 있듯 욕에도 분명 기본은 있기 때문이다. 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思惟終始)라 하지 않았던가? 한국사회 욕의 기본은 바로 세상 이치와도 부합되는 동양 사상의 주축인 이원론(二元論)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원론이란 무엇인가? ‘음양(陰陽)의 조화로 세상이 움직인다’는 이론이다. 구체적인 예로 ‘좆’과 ‘씹’을 말하는 것이다. 욕 가운데 가장 많이 응용과 변형이 되고있는 것이 바로 이 두 단어다. 그런데 이원론적(二元論的) 시각으로 해석하면 큰 모순점이 발견된다. 두 단어가 욕과 거리가 먼 단어가 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먼저 국어사전에 명시된 단어의 뜻부터 살펴보자.

좆 = 어른의 자지를 일컫는 말. 신(腎)[penis] ↔ 씹
씹 = ① <생> 나이 찬 여자의 보지.[vulva] ↔ 좆. ② 성교(性交)의 속어.
― 표준우리말사전(理想社·1990)


사전을 보면 ‘좆’과 ‘씹’은 어른의 성기를 나타낸 말이다. 그렇다면 성기를 나타낸 말 가운데 이것 말고 다른 말은 없었을까? 물론 있다. ‘자지’나 ‘보지’라는 순 우리말 외에도 ‘양물’(陽物)이나 ‘음문’(陰門), 옥문(玉門)이라는 소위 점잖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한자어도 있었다.(더 다양한 형태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성기에 대한 우리말도 옛날 사가나 문인들에 의해 검열·삭제되어 버렸을지 모른다)

'조'와 '습'의 격음화

분명 한자어가 있어 언어 소통에 불편함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좆’이나 ‘씹’이라는 순우리말이 생겨났을까?

욕에 있어서 기본이 되는 이 두 단어는 동양 사상의 근간이 되는 음양이론으로 보면 각각 남자와 여자의 대명사가 된다.

「주역」의 음양이론은 남자는 양(陽)으로 표현되며 곧 하늘을 나타낸다.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은 음(陰)으로 땅을 표현한다. 하늘의 기운은 언제나 말라있어 건조하다. 하늘에 습기가 많아지게 되면 비가 내려 곧 그 습기를 없애버리는 것은 현대의 과학을 빌리지 않더라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하늘로 대변되는 남자를 건조하다는 말에서 건(乾)자를 빼고 말라있다는 뜻의 조(燥)자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땅은 하늘과 반대편에 있으면서 항상 축축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 축축한 기운은 이내 하늘로 올라가 다시 비로 내려오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 땅 위나 땅 아래쪽에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으로 대변되는 여자를 일컬어 축축하다는 뜻의 습(濕)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땅이 여자를 의미한다는 사실은 주역에 나오는 곤도성녀(坤道成女)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으며 우리 나라 곳곳에서 발견되는 장승을 보더라도 부가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남자 장승은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여자 장승은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아니던가?

아무튼 조(乾)자와 습(濕)자는 이런 연유로 각각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고 그 뜻은 남자와 여자의 커다란 신체적 차이점인 생식기를 나타내는 말로 전이(轉移)된 것으로 추측된다.
한동안 ‘조’와 ‘습’으로 불리던 말은 세상이 끊임없는 전쟁으로 시달리며 인심이 흉흉해지는 사이 격음화(激音化)를 통해 오늘날의 ‘좆’이나 ‘씹’으로 변화되어 왔고 각박해진 세태를 반영하듯 그 발음은 더욱 드세어지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소주가 쏘주로, 다시 쐬주 그러다가 다시 소주로 돌아오는 과정을 보듯이(물론 지금은 각각의 소주에 이름이 생겼지만) 세상이 변하는 만큼 다양한 언어의 변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조선의 유교나 근대사, 1960∼80년대의 규제와 억압은 사람들의 감정표현을 거칠게 만들었고 자율의지마저 사장시켜 창조보다는 변형·변이·습관에 익숙한 인간을 만들어 냈다. 거기에 우리민족의 다양한 표현력이 어우러져 욕만큼은 세계으뜸이 되었다.

'씹' : ② 성교(性交)의 속어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씹’은 〈나이 찬 여자의 보지〉라는 사전적인 뜻 외에 〈성교(性交)의 속어〉라는 뜻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씹한다’라고 하면 곧 남녀간의 성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교를 나타내는 말로 왜 ‘씹’이 사용되었는가?

추측하건대 예로부터 농경국가로서 부권(父權)중심의 씨족이 살아왔던 우리 나라에서 남자의 상징인 ‘좆’을 제쳐두고 ‘씹’을 성교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한 점은 우리 민족의 잠재의식에 성행위에 대해 다분히 메저키즘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이것은 또한 농경국가였기 때문에 특히 다산(多産)의 바램도 포함될 것이다.

즉 우리 민족의 성행위에 대한 잠재의식은 ‘받아들인다’는 수동적 의미로서, 또한 ‘좆’을 삽입함으로서 모태귀속본능(母胎歸俗本能)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이것은 개국설화인 단군신화와도 맥이 상통한다.

단군은 웅녀(熊女)의 아들로서 신화에서는 곰의 자손으로 표현되어 있다. 설화이기는 해도 어찌 곰이 사람이 될 수 있으며 그 곰이 낳은 자식이 한 나라의 시조가 될 수 있겠는가.

단군신화에서 말하는 웅녀는 곰이 아니라 땅의 신을 섬겼던 부족장의 딸로 생각된다. 여기서 곰은 ‘곰’(熊)이 아니라 우리말의 ‘땅’(坤·곤)에 해당하는 것이고 발음이 같은 동물인 곰으로 표현된 여겨진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대문밖에 걸어놓는 줄을 우리는 금줄이라고 하는데 이는 땅의 신을 섬겼던 웅녀의 후예로서 당연한 일이다. 이렇듯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땅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으며 그 의미는 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잠재의식 속에 면면이 담겨져 왔다.

각박한 세상사와 거칠어지는 욕

욕하는 사람은 손가락질 당하고 저급한 수준으로 평가된다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으면서도 욕의 사용자와 기능은 더욱 확대·흉폭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욕은 사회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욕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 그만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부조리와 불합리를 안고 있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다.


미친놈들, 미친(美親)놈들, 갈피 없는 교육제도, 끊임없는 정치인과 공무원들의 비리, 일자리를 잃어 가는 사람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실이 이어지는 사회에서 어찌 욕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점에서 소위 말하는 엘리트 계층의 부패는 중하위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여지며 이와 연관해 감정 표현의 수단인 언어가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 진다. 욕은 먼지처럼 널러 다닌다.

그렇다고 무조건 말도 안 되는 욕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욕을 해야한다면 그에 맞게 적절한 욕을 찾아서 하는 미덕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연재하는 글을 꼼꼼히 읽으시라. (계속)


※ 본 글은 1996년부터 6년여 동안 某월간지와 某웹진 등을 떠돌며 연재했던 칼럼을 再수정할 예정입니다. 당시 내용이 대부분 웹망 곳곳을 휘젓고 다니기에 저 역시 욕설을 남발하며 웹 구속구석 쏘댕기고 서적을 뒤적이고… 많은 부분 보완할 계획입니다. E­mail을 통해 많은 욕설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카피레프트입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