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문화연재] ‘욕’ 찾아 방방곡곡 (1)

토로( 1) 2003.03.23 14:21 추천:6

사전적 정의처럼 욕은 증오에 차서 남을 저주하고 욕되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욕쟁이 할머니가 ‘처먹어라’는 국밥은 눈물콧물 쏟으며 먹으면서도 全州고사동 어느 골목서 억센 눈초리를 째리는 10대 고딩에게 듣는 ‘∼처먹었으면…’하는 소리는 쉽게 소화시키지 못하는 게 인지상정. 때론 ‘그 쓰임이 어떤가’에 따라 천양지차의 감정이 느껴진다. 먹은 것은 다르지만….

욕 한두 마디 못하는 사람 어디 있을까? 인간이 존재하는 곳엔 문화가 존재하고 문화가 존재하는 곳엔 욕이 존재한다. ‘한민족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발달되었다’는 의미를 달리 생각하면 찬란한 문화유산과 풍부한 감성만큼 ‘대글빡터지게’ 많은 욕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이다. 좋으면 좋아서 씨발, 나쁘면 나빠서 씨발…. 어차피 쓸 욕, 토로와 함께 욕의 근원을 찾아 알고 사용하자.

※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는 두 눈을 맑은 물로 씻어주시라.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이 글을 소리내서 읽었다면 당연히 귀를 씻고 양치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너땜에 까먹었잖아 씹새꺄. 어이그 씹새꺄”

사이폴 : 경고!! 경고!! 당신의 주소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건전한 통신문화를 위하여 욕설이나 심한 농담을 하는 분은 강제퇴장 당할 수도 있습니다. 통신 예절을 지킵시다.

네티즌이라면 봤을만한 문구다. 인터넷의 가장 큰 특징은 ‘개방’과 ‘익명’.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반면, 익명성이 전제되어 있기에 어떤 사안이든 쏟아지는 감정을 그대로 또는 과장해서 올릴 수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던 초기(1999년∼2000년), 네티즌의 언어사용실태와 사용계층을 조사한 논문들에 따르면 ‘소극적인 사람이나 사회 저명인사들도 익명성이라는 방패에 매료되어 웹상에서만큼은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때론 퇴폐적으로까지 변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실제로 당시 신문을 보면 某대학 교수나 시민단체 지도층들조차 이 법망을 벗어나지 못해 명예훼손 등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

이러한 특성은 웹에서 다양한 형태의 욕을 발견하게 했고, 1940∼70年代生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욕이 탄생되기도 했다. 욕의 쓰임이 웹에서만 있을까.

영화 ‘넘버3’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송강호를 순식간에 스타대열에 끼여들게 했던 바로 그 영화, 그 대사.


“내..내 말에 토도..토토..도토..토다는 새끼 전부 배반이야. 배신. 앞으로 직사시켜버리겠어. 이런 씹새꺄. 너땜에 까먹었잖아 씹새꺄. 어이그 씹새꺄.”(*직사 直死)


그 영화에서 검사 역으로 출현했던 최민식의 입담도 송광호에 뒤지지 않게 걸다.


“니들만이 깡패새끼들 아니야. 뇌물 받는 새끼. 주는 새끼. 비자금 만드는 새끼들. 지애비 빽믿고 설쳐대는 애새끼들, 그 애새끼들 믿고 설쳐대는 개새끼들. 땀흘려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모든 개 좆같은 새끼들. 그 새끼들이 진짜 깡패새끼들이야.”


영화에는 깡패보다 검사의 입에서 더 풍성한 욕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가 분출하는 것은 사회의 부조리를 향했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검사의 자연스런 욕설은 관객에게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사전적 정의처럼 욕은 증오에 차서 남을 저주하고 욕되게 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때론 위의 예처럼 ‘그 쓰임이 어떤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예로 시골 어르신들의 정자나무 주변을 상상하면 욕이 그리 역겹게만 느껴지진 않을 것이다.

인간이 존재하는 곳엔 문화가 존재하고 문화가 존재하는 곳엔 욕이 존재한다. 게다가 우리 민족은 찬란한 문화유산만큼 찬란한 욕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한민족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발달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욕 한두 마디 못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술자리에서, 친한 벗과의 대화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푸념, 심지어 이제 갓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들조차 욕을 입에 담는 경우가 있으니 더 이상 욕과 인간과의 관계가 멀다고만 할 수는 없다. 심한 경우지만 욕을 빼면 언어 소통에 지장을 초래 할 정도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도 보인다.(필자는 “아이 씨발”“쓰바”“좆같은 소리하지마” 등을 애용한다)

보통 청소년기에 많이 쓰고, 저학력·저소득층일수록 일상생활에서 욕을 쓰는 빈도가 잦아진다. 그렇다고 고학력·고소득층, 소위 엘리트 계층 사람들이 욕을 쓰지 않느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그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숨어서 욕을 입에 담곤 한다.(S대를 나와 S그룹을 다니는 필자의 친구는 가끔 이불을 뒤집어쓰고 “계장 과장 차장 부장 사장 이사 개새끼들”이라고 소리치면 맘이 후련해진다고 한다. 변태 초기 증상이다)


“욕봤다” 도대체 뭘 봤다는 말이지?

욕(辱)은 욕설(辱說)의 준말로 명예스럽지 못한 일을 나타낼 수도 있고, 특정 지방에서는 ‘수고했다’의 속어로 쓰이기도 한다. 또 욕되게 할 수도, 볼 수도, 보일 수도, 먹을 수도 있다.(욕되다·욕보다·욕보이다·욕먹다) 욕이란 단어가 인간과 얼마나 다양하게 조화를 이뤄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욕을 얻어먹어도 마땅한 사람을 가리켜 ‘욕가마리’라 하고 여러 사람에게 욕을 먹는 사람은 ‘욕감태기’라고 하는 단어도 70년대 문학작품을 통해 왕왕 보여진다.

한국사회에서 욕은 가히 전통을 자랑한다. 그리고 욕이란 단어처럼 재미있는 단어도 흔하지 않다.

“감실 아부지, 참말로 욕봤구먼요.”
“내가 뭐 욕본 것이 있간디.”
“사람 송장 치우는 것이 뭐 보통 일이래요. 참말로 욕봤어라”
“참 나, 내가 뭔 욕을 봤다고 자꾸 그리싼데.”
“욕 많이 봤지요. 그라고… 한번 욕본 김에 욕 좀 쪼까 더 봐주셔야 쓰겄는디.”
“나 인자 못혀. 내가 전생에 뭔 죄를 많이 졌다고 그 욕을 또 본데.”
“욕 본 사람이 한번 더 욕보라는데, 뭘 그리싸요.”
“지금 나한티 욕하는 것이여, 뭐여. 시방∼”
― 최기우 단편 「염소」중에서


위 예에서도 보이듯 마지막 문장에서 쓰인 욕과 나머지 문장에서 쓰인 욕은 다른 형태라는 것을 알 것이다.(설마 모든 문장의 욕을 ‘능욕(凌辱)당하다’로 생각하는 이는 없겠지요)

한국인이 사용하는 욕에는 일반적으로 ‘좆’이나 ‘씹’이 사용됐거나 ‘염병하다’‘땅딸보’와 같이 질병·신체에 관련된 욕, ‘소불알’‘개 풀 뜯어먹는 소리’처럼 동물·식물이 들어가 있는 형태, 그 중에서도 ‘개수작’같이 犬이 들어간 형태, ‘쌍놈의 새끼’처럼 출생·사망에 관한 욕, ‘우라질’과 같이 조선시대 형벌이라는 역사가 묻어 나는 욕, ‘화냥년’처럼 직업(?)에 관한 욕, ‘꼬부라진 자지 오줌∼’과 같이 속담에 등장하는 욕 등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또 ‘계집’이란 단어에서 보이듯(계집은 모계중심이던 사회에서 ‘집에 계시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되었으나 부계중심으로 바뀌면서 ‘계집’ 자체가 하대용으로 쓰이게 되었다) 욕은 세월에 따라 다양한 변이를 갖기도 한다. 그 의미가 도전적이든 개인 만족을 느끼는 것이든 아니면 자기 확인으로서의 욕이든 그 형태나 쓰임은 사회가 다변화될수록 더 할 것으로 사려된다.

새로운 직업이 나타나면 그에 따른 은어가 생겨나듯이 욕도 탄생한다. 우리말에 빠질 수 없는 속담 역시 일부는 다양한 욕의 형태로 변화됨을 알 수 있다. 속담이라는 말속에 속된 이야기라는 뜻을 품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각각의 욕은 어떤 의미가 있고 좀더 세분화하면 어떠한가? 일상처럼 쓰이는 욕과 욕설을 내뱉으므로 인해 어떤 영향이 끼치는 것일까? 욕을 하는 사람은 욕을 먹는 사람의 기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으며 상대에게 어떤 심리적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욕을 하는 것일까?

인간이 아니고서는 욕을 할 줄 모른다.(다른 동물의 언어를 모르니까)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욕은 가장 인간다운 것이 아닐까? 그럼 이제부터 욕에 대한 진지하고 구체적인 탐구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심리를 알아보자.

욕, 모르면서 함부로 뱉는 것보다 정확히 알고 그 쓰임에 맞게, 혹은 다른 단어로 대신한다면 당신의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누차 강조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는 두 눈을 맑은 물로 씻어주시라.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혹시 이 글을 소리내서 읽었다면 당연히 귀를 씻고 양치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계속)


※ 본 글은 1996년부터 6년여 동안 某월간지와 某웹진 등을 떠돌며 연재했던 칼럼을 再수정할 예정입니다. 당시 내용이 대부분 웹망 곳곳을 휘젓고 다니기에 저 역시 욕설을 남발하며 웹 구속구석 쏘댕기고 서적을 뒤적이고… 많은 부분 보완할 계획입니다. E­mail을 통해 많은 욕설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카피레프트입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