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허철희의 포토갤러리] 실금장어 이야기

허철희( 1) 2003.03.14 23:38 추천:4

뱀장어는 바다와 민물을 회유하는 물고기로, 해마다 봄이 되면 새끼뱀장어는 바다에서 거슬러 오고, 가을에는 강에서 성장한 뱀장어가 번식을 위해 먼 바다로 돌아간다.

그러나 뱀장어 알과 새끼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아 오랫동안 뱀장어의 번식은 수수께끼였다. 아리스토텔레스 뱀장어가 강바닥 진흙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장하는 지렁이로부터 생겨나는 것으로 믿었을 정도였다.

▲실뱀장어


이 수수께끼는 20세기 초에서야 비로소 풀리게 되는데, 1922년 덴마크의 어류학자 요하네스 슈미트박사는 서인도제도의 북동쪽에 있는 사르가소 해역의 번식지로 이동하는 뱀장어를 뒤 쫒아 가 부화 직후의 개체를 발견하여 비로소 뱀장어의 번식장소를 알아냈던 것이다. 번식을 위해 무려 5,000km나 이동하는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서 사는 뱀장어의 산란장이 어렴풋이 밝혀진 것은 90년대 들어서였다. 일본 도쿄대 해양연구소는 20여 년 동안 태평양 일대를 뒤진 끝에 지난 91년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생후 2∼3주된 길이 1㎝ 미만의 뱀장어 치어(댓닢뱀장어)를 수백마리 잡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소 츠카모토 교수는 동북아에서 3천㎞ 떨어진 마리아나열도와 필리핀 사이 서북 태평양을 뱀장어 산란장이라고 추정하는 논문을 <네이처>에 발표해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필리핀 동쪽 해역 산란장에서 갓 태어난 치어는 반년 동안 바다 위에 떠서 북적도 해류와 쿠로시오 해류에 실려 동북아로 이동한다. 이 때 치어는 부유생활에 맞게 대나무 잎처럼 납작하고 몸이 투명해 `댓닢뱀장어'(렙토세팔루스)라고 불린다.

그러다가 대륙붕과 심해의 경계지역인 대륙 사면에 이르면 몸이 원통형으로 바뀌면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실뱀장어로 변태한다. 해류와 조류를 타고 한반도까지 온 실뱀장어는 크기가 5∼7cm까지 성장해 봄철 서해와 남해의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부안 돈지 앞바다에 설치해 놓은 실뱀장어 어살


실뱀장어가 회유해 오는 시기인 2월초~4월말까지 동진강하구와 만경강하구 어민들은 실뱀장어잡이로 천금을 올렸었다. 뱀장어의 산란이 이렇듯 신비의 베일에 가려있기 때문에 양식이 어려워 이 시기의 실뱀장어를 잡아다 양만장에서 가두어 기르기 때문에 양식용 실뱀장어의 가격은 그야말로 금값이 될 수밖에 없다. ‘97년 한참 가격이 좋을 때는 1kg 당 1천만 원을 넘어 1천 5백만 원까지 오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금 1kg 가격이 1천2백만 원 정도 했으니까 금값과 맞먹는 셈이다. 그래서 한 때 ’실금장어‘라고 부르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동진강 하구의 문포나 계화도 사람들은 하룻밤 벌이로 논 한 필지를 살 수 있었던 때도 있었다며 그 때를 생각하면 꿈만 같다고 한다.

▲동진강 하구의 실뱀장어 배


그런데 요즈음 이들의 수입은 예전의 10%로 줄었다. 강을 거슬러오는 실뱀장어 개체수가 급격히 준 탓이다. 거기다 값싼 중국산 실뱀장어가 다량으로 국내에 들어오자 양만업자들은 국내산 실뱀장어를 외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던 실뱀장어는 다 어디로 갔을까? 환경부 한강수질검사소 공동수 박사는 “수질오염에도 원인이 있고, 4대강이 모두 하구둑이나 수중보로 가로막혀 강을 거슬러 올라오지 못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말한다. 73년 팔당댐이 들어서고 80년대 한강종합개발로 한강이 수중보에 가로막히기 전까지만 해도 늦봄이면 청평 일대까지 실뱀장어가 들끓었지만, 요즘 팔당 상류에서는 씨가 말라버렸다고 한다. 부안의 경우도 내변산 백천 지류에 뱀장어가 득시글거렸고, 직소폭포에까지 뱀장어가 올라와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1996년 부안댐이 들어서면서 뱀장어의 회유로는 막히고 말았다.

▲만경강 하구의 실뱀장어 배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