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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생명 가득찬 갯벌 만드는 파도 되어야

평화와인권( 1) 2003.03.09 14:11

[편집자주] 이 글은 지난 3일 새만금 천주교회 100회미사 때의 이영춘 신부의 강론이다.

이영춘 신부는 "포기는 배추를 셀 때에나 쓰는 말이고 실패는 바느질 할 때에 쓰는 말이다"고 했다. 새만금갯벌 살리기 운동에 실패와 포기는 없다는, 오히려 더욱 강고하게 연대하자는 호소를 이렇게 전해왔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에나 쓰는 말이고, 실패는 바느질 할 때나 쓰는 말입니다."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깍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이사40,4)"


이 말씀은 주님께서 오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길을 그렇게 준비하라는 것이고, 주님께서 오신다는 것은 이런 모습을 나타낸다는 말씀입니다.

새만금 현장을 생각하면 이 말씀이 생각납니다. 왜냐하면 겉모양을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산을 깍고 바다를 메우는 장면이 이사야서의 말씀과 비슷하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른 것이기에 같은 것 안에서 빛과 어둠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주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하기 위해 불평등의 골짜기를 메우고, 불의를 메우고, 그릇된 욕망을 깍아 내리라는 뜻입니다. 또 주님께서 오시는 세상의 모습이 그러하리라는 뜻입니다. 불의와 불평등의 골짜기가 없고, 욕망의 산이 평지로 변하는 그런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겉으로는 똑같은 모습 같지만 그 내면에는 다른 상황이 여기에 펼쳐져 있습니다. 바로 새만금 현장과 새만금 사업을 추진했고 추진하고 있고 또 추진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어쩌면 바다는 수만년의 세월 동안 이사야서의 말씀을 나름대로 실천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수만년 동안 끊임없이 깍고 부수고 메워서 갯벌이라는 평평한 지평선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의 일이 그처럼 좋은 일이었기에 바다가 만든 갯벌에는 그 많은 생명이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그 일 자체가 생명을 살리는 일, 즉 구원의 일을 한 것이고 실제로 구원의 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곳에 육중한 콘크리트 장벽을 쌓고 산을 깍아다 그것을 덮어 버린다는 것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입니까? 이것은 반역인 것입니다. 겉모양이 비슷하다고 속까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의 일이 아니라 멸망의 일인 것입니다. 생명이 가득 찬 평등 세상에 골짜기를 만들고 불의를 만들고 욕망의 탑을 쌓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새만금 사업의 결과가 그런 것이고 또 처음부터 권력욕이라는 욕망의 탑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찌 반역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세상을 더럽혀온 바로 그 모습입니다. 이곳에서 그러고 있는 것처럼 세상의 권력자들은 계속해서 욕망의 탑을 세우고 불의의 골짜기를 만들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이 깍고 메워야 할 것은 산이요 바다가 아니라, 자신들의 욕망이요, 욕망이 만들어내는 불의인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를 다시 바라보며 투쟁의 마음을 지니고 희망을 실현해야 합니다. 비록 욕망이 쌓아올린 육중한 콘크리트 장벽에 밀려갔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콘크리트에 부딪혀 평등과 정의와 생명이 가득 찬 세상을 만들려는 바다를 보며 그런 마음을 지녀야 하겠습니다.

당장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 보이지만 결국 바다는 자신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진실 앞에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바다를 벗삼아 함께 희망하고 함께 실천하고 함께 이루어가야 할 것입니다.

함께 공감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파도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이 가득 찬 갯벌을 만드는 파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이 영춘 / 전주 서신동천주교회 신부
- 주간인권신문 [평화와인권] 3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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