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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정현의세상보기] 핵폐기장 백지화하라!

문정현 신부( 1) 2003.02.26 21:56

핵페기장 백지화 핵발전 시설 반대 원불교 교문 비상총회” 거대한 모임이었다. 한 종단 전체가 모였으니 아주 큰 모임이었다.

1,700명의 교무중 외국에 파견되거나 피치못하게 참석하지 못한 교무를 제외한 1,200명이 모였다. 사직공원이 가득했다. 총회를 마치고 행동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표현하고저 한다.


핵폐기장백지화.핵발전시설반대 원불교비상총회



총회는 자성 끝에 “핵은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새만금간척사업의 중단을 위하여 투쟁한다.” 이것이 원불교의 결의다. 그 일환으로 천주교의 경당, 기독교 교회당, 불교의 사찰과 나란히 원불교의 경당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3월 8일 설립날자까지 정해졌다.

이 분들의 모임을 보고 놀라는 한편 핵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고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모임의 결과가 나의 주장과 같아 무한히 기뻐하며 큰 희망을 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원불교 총회에서 문정현 신부의 지지연설

미 대통령 조지 W.부시는 “인공위성에서 찍은 한 반도의 밤사진을 보면 남쪽은 휘황찬란하고 북쪽은 깜깜하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은 밝기로 남북의 우위를 가렸다. 과연 휘황찬란한 것이 좋은 것인가! 남쪽은 에너지를 물 퍼쓰듯 하여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라고 말하면 잘 못일까? 그 만큼 핵폐기물이 쌓일 것이 아닌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런 불야성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남쪽은 핵발전소를 돌리고 돌려 나오는 에너지를 마구 쓰고 있다. 잠을 자야하는 밤을 낮처럼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오는 핵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보통의 문제가 아니다. 남쪽은 알맞게 먹어야 할 독약을 한꺼번에 먹고 있는 것과 같다. 결과는 죽음뿐이다.

많은 나라들, 특히 먹고 살만한 나라들은 핵발전소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핵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동 구라파는 에너지 부족으로 핵발전소건립에 매력을 느낀다. 서 구라파는 동구의 핵발전소건립을 극구 말리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인접해 있어 직접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나라의 환경운동가들은 핵을 동력으로 하는 배를 접근조차 거부하고 있다. 그 만큼 위험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없다면 왜 핵폐기물을 자기나라에서 처리하지 않고 가난한 남의 나라에 수출하려 드는가? 위험을 떠넘기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의 ‘공사’라 이름 하는 기관은 문제가 있다. 농업기반공사, 한사원 같은 것들이다. 저들은 무한의 이득을 위하여 무제한 개발을 하려든다. 이를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공사’는 통제 불능이다. ‘정권은 기한이 있는데 공사는 기한도 없다. 조직이 탄탄하게 살아남아야 하는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해서는 안될 사업도 더 큰 사업으로 키워나간다. 관료, 정치인, 재벌, 교수, 필요한 모든 사람을 동원한다. 돈으로 매수도 한다. 지역 주민까지도 매수한다. 문제를 축소시키고 작은 것도 장밋빛으로 포장하여 부풀린다. 결국 당하는 사람은 지역 주민이다. 주민은 실상을 뒤늦게 알아차려 저지하기에 너무 늦게 된다. 저들은 “돈을 이 만큼 쳐드렸는데 중단할 수 있겠는가?” 라는 논리를 편다. 이런 것들을 만들기 위하여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는커녕 주민들은 감언 이설로 속임수에 넘어갔던 것이다. 사기꾼한테 당한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사업의 중단을 위하여 싸우지만 너무 늦어 힘에 겹다.

저들은 핵발전소의 완벽을 큰 소리로 외친다. 하지만 완벽은 없다. 사방에서 고장이 나고 있다. 원자로와 터빈이 작동을 중단하기도 한다. 피폭을 당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핵발전소 핵 폐기장은 살인적 시설이다. 핵 자체는 불안과 공포의 괴물이다. 핵은 인류의 적이 될 것이 틀림없다. 체르노빌의 이억이 생생하다.

원불교는 집단이기주의자들이 절대로 아니다. 영광이 원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이 아니다. 핵은 어디서나 남용되어서는 아니 되기 때문이다. 이 나라, 세계의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다. 원불교는 지금 사직 공원에서 비상총회를 열어 “핵페기장 백지화.핵발전 시설 반대”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 1,300여 분의 교무님들이 모여있다. 우리는 이에 지지를 표명하며 함께 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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