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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새만금 댐은 부안의 변산에 있는 구합쟁주(九蛤爭珠-아홉마리의 조개가 한 개의 진주를 얻기 위해 다투는 형상)지형에서부터 시작하여 군산의 금강하구까지를 막는 세계적인 간척사업으로 군사독재정권인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발표되었었다. 그리고 바다를 메우는 간척사업은 이후로 끊임없이 진척되어서 어마어마한 수중성곽이 근자에 들어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이제 새만금의 산룡도를 살피려 함에 있어서 당연하게 군산과 옥구의 산맥들과 더불어서 부안 변산의 산룡들을 살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새만금의 모든 산맥의 뿌리는 직접적으로 호남정맥에 두고 있다.

4. 완주의 주화산에서 시작하여 광양 백운산에 이르는 호남정맥

호남정맥이란 완주군 소양면과 진안군 마령면과 진안군 부귀면을 경계로 하고 있는 지점에 있는 주화산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곧 전주 진안간 26번국도의 옛길인 모래재 터널을 넘어가면 진안군 마령면 초입에 약수터가 있는데 이 약수터의 물이 바로 섬진강의 최상류 지점으로 발원지중의 하나이다.

이 물길의 시발점은 뒷산봉우리인데 이곳이 바로 금남호남정맥과 금남정맥 호남정맥의 삼 산맥이 맞닿는 지점이자 섬진강 금강 그리고 만경강등 세 강의 발원지중의 하나이자 수분경계지점이다. 그러므로 주화산은 금남호남정맥의 끝이자 금남정맥의 시발점이자 호남정맥의 시발점이다.

주화산에서 비롯된 호남정맥은 남으로 흘러서 박뫼기산을 거쳐서 전주 남원간 17호 국도지점에 위치한 슬치(瑟峙-비파재)에 이른다. 호남정맥은 다시금 북진하여 갈미봉과 옥녀봉 그리고 경각산에 다다르는데 경각산은 완주군 구이면과 임실군 덕치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근자에 들어서 행글라이더를 타기에 적합한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고갯길에는 행글라이더를 타려는 사람으로 붐비기도 한다.

▲왼쪽) 옥정호 오른쪽) 백암산
다시금 호남정맥을 따르다 보면 옥정호를 내려다 보면서 달려가는 오봉산과 국사봉을 지나서 막은댐에 다다른다. 막은댐은 섬진땜이 완성되어 옥정호가 생기기 전에도 큰물이 지면 범람하여 섬진강 물이 넘치던 지역으로 현재는 완주군 구이면에서 임실군 운암면으로 넘어가는 길이 나있다. 막은댐을 지나면 묵방산이 있고 다시금 산줄기를 따라가면 정읍시 산내면의 왕좌산에 다다른다

다시금 산맥을 따르면 정읍 칠보면에서 산내면으로 넘어오는 구절재에 다다른다. 이곳의 호남정맥의 지형은 동으로는 해발이 높은 산악지형을 형성하고 있고 서로는 낮은 평야지대가 존재함으로서 낙차가 발생하여 유역변경식발전소로 유명한 섬진강의 칠보발전소가 있다. 다시금 호남정맥의 산맥을 따라서 달리다 보면 순창의 국사봉과 고당산을 지나서 쌍치와 정읍을 넘는 고개를 지나면 단풍으로 유명한 정읍의 내장산에 다다른다.

정읍의 내장산에 다다른 산맥중 한 지맥은 상두산을 거쳐서 고창의 방장산과 영광의 불갑산을 지나서 함평과 무안의 승달산을 거쳐서 목포의 유달산에 다다르는 지맥을 형성하고 있다.

호남정맥의 본줄기는 장성의 백암산으로 달려간다. 백암산은 다시금 담양의 추월산을 거쳐서 순창의 강천산과 금성산을 지나서 전남 곡성군 옥과면의 설산에 다다른다. 옥과의 설산에서 다시금 서남진하여 담양군 창평을 거쳐서 드디어 광주의 무등산에 다다른다.

이렇게 장구하게 달려온 산맥은 다시금 화순을 거쳐서 장흥의 사잔산에 다다른다. 장흥의 사자산까지 남으로 남으로 달려온 산맥은 방향을 틀어서 동북진하여 보성의 제암산을 거쳐서 승주의 송광사가 있는 조계산에 다다랐다가 다시금 달려서 구례 순천간의 국도17호선의 지점인 솔재(松峙)의 병풍산에 이른다. 다시금 동북으로 달려간 호남정맥은 일순 높이 솟구쳐서 광양의 형제봉과 백운산이라는 해발 천이백미터가 넘는 호남지역에서 제일 높은 거대한 산을 만들어 낸다.

구절장단처럼 호남의 땅들을 굽이굽이 달려온 산맥이 바로 호남정맥의 실체이다.

이렇듯 얽힌 실타래 같은 굽이굽이의 호남정맥은 실로 우리 역사 속에서 그리고 우리 생활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왔었다. 곧 호남정맥을 사이에 두고 동쪽을 호남좌도라 하였고 서쪽을 호남우도라 하였다.

호남정맥은 호남을 두 지역을 갈라서 문화와 생활 그리고 사상적 차이를 만들었다. 이러한 사례는 풍물굿에서 많이 나타난다. 우리가 풍물굿을 좌도굿과 우도굿으로 많이 나눌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지형적 요인이다.

좌도는 동으로는 백두대간을 맞이하고 서로는 호남정맥의 산줄기에 둘러쳐진 산간지역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통일적으로 섬진강이라는 하나의 큰물줄기로 통일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호남좌도는 특징적으로 호방하고 남성적이며 전투적이고 통일적인 경향을 나타내게 되었고 호남우도는 동으로는 호남정맥이 있지만 서로는 평야와 광활한 바다를 끼고 있는 평야지대를 형성하였고 나아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등등의 많은 강과 작은 물줄기로 퍼져 있다. 그래서 섬세하고 여성적이며 평화지향적이고 예술지향적이며 개별적인 성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이렇듯 무한한 역할을 수행하여온 호남정맥은 사라지고 현재는 노령산맥만이 존재하고 있게된 데는 일제식민치하의 일제식 식민지적인 지리학이 우리머리에서 아직도 건재하고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곧 땅에 박은 쇠말뚝은 뽑아도 머리속에 박은 쇠말뚝을 뽑을 생각은 왜 하고 있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나는 새만금땜을 바로 잡는 것이 바로 우리 머리속에 박힌 쇠말뚝 뽑기의 일환이라는 생각에서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4-1. 주화산에서 만덕산 그리고 기린봉과 건지산으로 이어지는 건지산맥

호남정맥에서 맨 먼저 분지하는 것이 바로 전라감영으로 존재하였던 전주를 형성하고 있는 건지산 지맥이다.

완주군 소양면에 있는 만덕산에서 곧바로 약암(藥岩-약바위)을 지나서 의암(衣岩-옷바위)이 있는 묵방산과 두리봉으로 내려가는 산맥은 중바위산(현재는 치명자산이라 불림)을 거쳐서 기린토월(麒麟吐月-기린이 달을 토하고 있는 형세)의 대 명당이 있다는 기린봉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기린봉은 옛적 후백제의 견훤이 쌓았다는 토성이 거쳐서 있었던 아중택지를 거쳐서 인후동으로 지맥이 흘러들어서 전주의 오랜 주산으로 건재하여왔던 건지산(乾止山-하늘이 그치는 산)에 다다르고 일맥이 다시금 달려서 천마산까지 흘러간다.

이 지맥이 유명한 전주오백년왕업의 터전이라는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의 묘소인 조경단(肇慶壇)에 이르는 산맥이자 전라감영과 전주부영을 만드는 지맥이었다.

현재 이 지맥은 도심의 난개발과 무분별한 도로건설등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현재도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약암과 의암사이로 전주 상관면에서 소양면으로 나는 우회도로가 개설중이며 나아가 전주우회순환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나아가 포항-익산간 고속도로건설을 위하여 무진장한 파괴가 시작되었고 또한 전주-남원간 17호선의 연장선상이자 전주동부우회도로가 두리산에서 중바위산으로가는 혈심을 상당부분 다치게 하고 있다.

나아가 아중지구는 아파트와 택지개발을 앞세워 옛날 조상들의 유적 유물을 짖밟았는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전주에서 가장 볼쌍사나운 모텔촌을 형성하여 동부우회도로를 지나는 객지 사람들로부터 천년의 역사 도시이자 교육 도시였던 전주의 이미지를 완전히 구겨버리고 있다.

이렇듯 난도질당한 산맥을 왜 언급하는가? 하는 것은 건지산 지맥이 바로 새만금의 산룡들의 중심룡이기 때문이다.

새만금을 막음으로서 가장 큰 피해는 바로 팔왕터(八王=全)의 중심인 전주(全州)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징후는 벌써 드러나고 있다.

2002년 임오년에 우리 나라에서 가장 더운 도시로 부각된 곳이 바로 전주였다. 나아가 자연재해가 없기로 유명한 전주에 2002년 임오년은 엄청난 폭설이 여러 차례 왔었던 점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어딘지 석연치 않다. 이러한 이상 징후는 계속될 것이다.

4-2. 슬치와 경각산 오봉산 그리고 모악산을 거쳐서 만경까지 이어지는 모악지맥

다시금 호남정맥으로 돌아가 보면 옥녀봉과 경각산 사이에서 전주로 가는 고남산 지맥이 분지하지만 전주의 서신동에서 그침으로서 길지 않기에 언급하지 않기로 하고 또 다른 지맥은 막은댐을 지나서 먹방산에서 분지하여 국사봉을 거쳐 모악산에 다다른다.

모악산은 징게맹게(김제와 만경)뜰을 품안에 안고 만경강과 동진강의 발원지로서 호남평야의 어머니와 같은 위치의 산이다. 옛날부터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한문으로는 부아악(負兒岳-아이를 업고 있는 산)이라고 불리며 순수한 우리말로는 어미뫼로 그리고 이를 한자화하여 모악산(母岳山)이라고 불러왔다.

이 분지룡이 곧 새만금에 직접적으로 맞닿는 땅이자 용이다. 그러므로 모악산은 호남평야의 징게맹게와 연닿은 새만금의 어머니 산이기도 한 것이다.

산줄기는 모악산에서 고깔봉으로 흘러가서 두 줄기로 나뉜다. 한줄기는 금구의 구성산으로 흘러들어가서 금구와 금산을 만든다. 이지형 또한 옛부터 아홉명의 성현이 날 자리가 있다고 전하는 대명당의 지형이며 나아가 금구의 금천호 주위에는 호승예불(胡僧禮佛-호국 스님이 예불을 올리는 자리와 같은 형국의 명당)이라는 대 명당터인 호남삼대명당에 해당하는 자리가 있다라고 전한다. 하지만 이 지맥은 김제의 호남평야로 들어가 숨어 버린다.

다시금 돌아가서 고깔봉을 지나면 응봉을 지나서 완주군 이서면으로 야산으로 숨어 들어간 산룡은 구릉룡이 되어서 꾸불거리면서 엎어졌다 일어났다 기어갔다 숨었다 하면서 김제군 만경읍까지 흘러든다. 드디어는 망해사가 있는 산까지 들어가고 광활면을 지나서 심포항까지 이어진다.

이 지맥의 산룡은 대부분이 야산이나 평지로 숨어들어 버린 은룡(隱龍)이다. 하지만 만경강물과 동진강물이 모여서 바다와 합치는 장관을 바라보노라면 이곳이 바로 큰물이 만나는 두물머리(合水地點)임이 확실하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곳의 지도를 잘 살펴 보라 김제 만경을 만경강과 동진강 두강이 꼭 껴안고 있음을 볼 것이다. 군산,옥구와 부안이 꼭 감싸고 있는 모습을 역력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당신이 경비행기라도 타고 오르면 아름다운 한폭의 명당도(明堂圖)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눈으로 새만금의 아름다움을 맛본 당신이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는 것을 상상해본다면 당신은 어떤 심경에 빠질 것인가?

4-3. 내장산 상왕산 그리고 두승산과 천태산에 이르는 두승지맥

또 다시 호남정맥으로 되돌아가 보면 정읍의 내장산과 입암산까지 연이어 지는 호남정맥의 산줄기 자체가 새만금을 감싸안은 커다란 성곽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한눈으로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입암산에서 호남정맥과 유달산(또는 방장산) 지맥으로 나뉘는데 상왕산에서 고창의 방장산으로 산줄기가 달리던 중 한줄기가 분지하여 북으로 달리게 되는데 그 산자락이 바로 고부의 두승산으로 이어진다.

▲정읍- 전봉준 생가
다시금 북진하면 영원면과 이평면의 경계 지점에 있는 천태산에 맞닿아 있고 조금 더 나아가 달리다 보면 백산면에 다다른다. 이 지맥이 바로 황토현이 있고 나아가 전봉준 장군이 살던 집이 있고 곧 백산 동학농민군 집결지가 있다.

이 지맥은 호남평야의 동진강의 남쪽을 담보하고 있으며 나아가 옛날부터 두승산(斗升山)은 동방 삼신산중 하나인 영주산이라고도 불러왔으며 두승산에는 호남팔명당의 하나라는 비룡상천이 유선사 근처에 있다고 전하고 있는 산맥이다.

비록 짧은 산맥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명산을 끼고 있는 중요한 산룡중의 하나이며 그로 인하여 근현대사속에서 동학농민전쟁의 봉기지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지맥인 것이다.

4-4. 방장산에서 흥덕 그리고 변산으로 이어지는 변산지맥

또 하나의 지맥이 방장산 자락에서 나와서 고창군 흥덕과 부안군 곰소를 거쳐서 변산에 다다른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하나는 방장산과 변산인 봉래산은 연결된 산이라고 하기도 하고 또 다른 견해는 물길로 막혀서 독자적인 산맥을 형성하였다고 여겨진다. 전통적인 견해와 다수의 견해는 바로 변산의 독립설이다. 왜냐하면 변산아라는 산이름 자체가 곧 독립된 산이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서서도 말했듯이 한반도는 어미호랑이이고 변산은 호랑이 뱃속에 든 새끼라는 전통적인 풍수적 견해이다. 이렇듯 중요하게 언급되어지는 산맥이자 우리가 새만금땜의 공사현장이자 산들을 헐어내고 바다를 메우고 땜을 쌓고 있는 지점이다.

이러하기에 어쩌면 가장 지면이 많이 할애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새만금의 직접적 오염과 환경파괴는 앞서서 언급하였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언급될 사안이기에 여기서는 소개에 그친다.

4-6. 문수산에서 선운산으로 이어지는 선운지맥

▲왼쪽) 선운산 오른쪽)변산
고창의 방장산에서 고창읍과 흥덕 사이에서 하나의 산맥이 분기하여 서쪽으로 달리는데 이지맥이 바로 소요산에 다다른다. 곧 고창군 부안면에 있는 인촌 김성수씨의 생가를 향하여 달리는 산룡으로 보면 될 것이다.

소요산을 넘어가는 지점에 질마재가 있다. 그리고 질마재를 넘으면 미당 서정주 시인의 고향이 있다. 이곳이 바로 새만금을 막고 있는 부안의 변산과 호수같은 바다를 끼고 마주보고 있는 지점이다.

여러분이 인촌 김성수의 생가에서 바라보면 앞에 보이는 산이 바로 변산의 내소사가 있는 학가산(능가산)이다. 그런데 소요산의 서쪽에 있는 산이 바로 활빈당과 연계가 있었다고 하는 선운사가 있는 선운산이 있다. 이산은 방장산에서 곧바로 뻗어간 것이 아니라 남으로 문수산까지 갔다가 다시금 야산으로 뻗쳐서 무장면(옛날에는 무장현)의 지맥을 이루고 나서 다시금 솟구쳐 오른 곳이다. 곧 소요산과 선운산 사이로 흐르는 천이 바로 풍천(고창천)이다.

새만금댐 건설사업이 진행되면서 연계선상으로 부안의 변산과 고창의 선운산을 연결하는 다리를 계획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부창대교이다. 새만금과 부창대교는 연계선상으로 기획한 것처럼 산룡들도 바다도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

현재 새만금의 폐단은 이곳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 이 지역의 바다는 호수 같은 바다였다. 그래서 조개와 새우 그리고 장어와 숭어양식이 활발하던 곳이다. 비록 시골이어도 아주 잘살던 어촌마을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뻘과 바다가 썩어서 이제 조개양식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다른 양식들도 점차 여러 가지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

더더군다나 이번 2002년 임오년 혹한과 폭설로 가장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지역이다. 이러한 피해가 단순히 천재로만 여길 것인가라는 점에는 많은 의문점이 남는다.

왜냐하면 이 지점이 새만금땜 건설현장과 전남 영광의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흥농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곧 부안과 고창사이의 호수같은 바다가 바로 삼신산(고창 방장산 고부의 영주산 부안의 봉래산)의 앞뜰이며 조기어장으로 유명한 칠성 앞바다와 조기파시로 유명한 위도로 연결되어지는 산룡의 중심지점이다.

5. 보은의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진천의 칠현산에 이르는 한남금북정맥

앞에서 언급한 산맥으로 새만금의 영향권에 든 산룡을 모두 살핀 것은 아니다. 이제 북으로 돌아들어서 다시금 백두대간으로 돌아가 보아야 한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달려가던 백두대간은 충청도 보은 속리산에 다다라서 잠시 멈추어서 위용을 자량하면서 동으로는 낙동강의 상류가 되고 북으로는 남한강의 상류가 되며 서와 남으로는 금강의 발원지중의 하나가 되어서 삼강의 수분계이자 발원지를 이룬다.

이러한 지형은 백두산 천지를 빼고서는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사실이다.(물론 앞서서 언급한 주화산이 있지만) 그래서 속리산은 백두산을 옮겨 놓은 지형과 같다고도 한다. 이러한 연유로 하여 속리산은 삼남과 경기도의 산들의 우두머리가 된다.

곧 백두대간인 속리산은 동으로는 낙동강에 다다르고 백두대간인 속리산의 서쪽은 한남금북정맥으로 이어져서 산맥의 북동은 남한강의 발원지중의 하나가 되고 그 서남은 금강의 발원지가 된다. 이러한 지형적 특수성 때문에 속리산에는 옛날부터 중원을 발아래 꿇린다는 천자지지(天子之地)가 있다고 전하여 왔다. 나아가 속리산의 천자를 보좌할 일곱명의 성현이 난다하여서 붙여진 산이 바로 충청도 진천과 경기도 안성의 경계에 있는 칠현산(七賢山)이다. 일곱 성현인의 등장은 어느 때일까?

지금처럼 오매불망 새시대를 갈망하는 시기에 이러한 천자와 성현은 강림(降臨)하려는 것일까?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속리산은 중국지나(中國支那)로부터 끊임없는 견제와 탄압을 받아왔다.

속리산의 법주사 뒤로 연이은 산이 바로 수정봉이다. 수정봉에는 탑을 인 거북이 한 마리가 있다. 이 거북은 탑을 이고 있는 것도 모자라서 목까지 뎅겅 잘려나갔었다. 왜 중원의 모든 기운과 재물을 해동국 조선 땅으로 옮기는 산이라고 여겨졌었기에 중원의 지관들은 속리산의 지맥의 기운을 눌러놓아야 했다.

이렇듯 속리산은 중원지나의 침략식민풍수의 흔적을 안고 있게 되었다. 거북의 머리를 잘랐기 때문이었을까?

속리산의 경업대는 중원의 땅에서 고립무원으로 분투하던 백마산성의 주인이자 조선최대의 명장중의 하나로 불리는 임 경업 장군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고 전한다. 비록 역사의 패자로 뒤안길에 들어섰지만 중원으로 향하던 임경업 장군의 웅지와 포부는 사그러들지 않고 면면히 속리산에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웅장한 기운을 머금은 산들과 산줄기들이 있었기에 변산과 같은 호랑이의 자궁이 들어앉아 있는 지도 모른다.

이제 새 천년의 시작을 알릴 커다란 호랑이의 포효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지 않는가? 다시금 살아 돌아온 임경업 장군의 말발굽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임경업 장군의 용천검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는가?

6. 진천의 칠현산에서 발원하여 서산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

중원을 도모 할 천자를 도울 일곱 명의 현인이 난다는 칠현산(七賢山)에서 두 개로 분지한 산맥중 하나는 북으로 달려서 인천 부천의 소래산과 강화도로 연결하면서 한강 이남의 땅인 서울강남과 더불어서 경기도의 남부지방의 지형을 형성하였다. 여기에서는 다룰 중심은 한강남쪽의 산맥인 한남정맥은 아니므로 여기 소개에 그치겠다.

다음으로 살필 산자락이 곧 금강 이북의 지형을 형성하고 있는 금북정맥이다. 진천에서 공주방향으로 흘러가는 산맥은 차령을 경계로 하여 이북은 각 하천으로 흘러들고 이남은 모두 금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산맥은 서남으로 흘러서 칠갑산과 청양의 오서산에 다다라서 다시금 북으로 북진하여 흘러가는데 주요 산줄기는 충남 예산의 수덕사가 있는 가야산으로 흘러들어 간다.

가야산은 사방으로 흐트러지면서 야산지대를 형성하고 서산을 거쳐서 서산의 안흥진(安興津)에 이르는 산맥이 주요 산줄기이다. 이곳의 지형을 충청도라고 부르는데 금북정맥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뚜렷한 다른 지형을 형성하는데 하나는 내륙지방으로서 공주 부여 청양 예산 온양 등지로 공주를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내륙지방이다. 또 하나는 서천 대천 보은 홍성 서산 당진등으로 대별되는 서해안 지형이다. 이곳은 바닷가에 위치하여서 너른 벌판을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비록 낮은 4~500미터 내외의 낮은 산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바닷가에 직면하고 있어서 마치 커다란 산들로 구성된 성벽을 갖춘 것처럼 되어 있다. 그래서 외부지역은 홍성(옛적은 홍주)을 중심으로 하는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때문에 이곳은 서해안의 대표적인 해수욕장들이 만히 형성된 곳이다. 이 금북정맥의 해안가를 따라서 지금은 시원스러운(? 마치 호랑이 배를 갈라놓은 듯이) 서해안 고속도로가 나있다.

우리 나라의 지형은 내륙에서 바다로 점점 낮아지는 형태의 지형은 드물다. 그래서 바다로 직진하여 흘러드는 강이나 하천은 거의 없다. 만약 하천이나 강이 직진하여 바다로 뚫려있으면 그만큼 홍수피해도 가뭄피해도 커진다. 또한 해일피해나 태풍피해도 어마어마해진다. 그러나 산맥이 바닷가를 휘돌고 있으면 물길이 구불어지거나 돌아서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형이 바로 전해내려오는 전형적인 풍수형국의 명당이다.

우리 나라의 거의 모든 지형이 바로 강물이 돌아돌아 이 고을 저 고을을 휘돌아서 나아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산맥으로 이루어진 장성은 곧바로 외침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충청도가 양반의 고장으로 그리고 선비의 고장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서울과의 근거리라는 잇점도 있었지만 이러한 천연의 산맥성벽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명당입지는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을 언급하고 있다. 비록 호남땅이자 바닷가라도 수비가 용이한 특수한 지형을 형성한 해남의 윤선도의 집을 명당으로 이중환이 업급하고 있는 점을 우리는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만금은 곧 강 건너의 서천장항에 직접적인 영향력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속리산과 칠갑산 그리고 오서산에 영향을 끼칠 것은 용맥을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빤히 보이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주의 천재지변을 막고 있는 산이 바로 오서산과 속리산이기 때문이다.(여기에 대해서는 따로이 전주의 지맥을 설명하는 기회를 갖겠다)

이렇듯 새만금의 산룡맥을 살폈던 것은 이제 새만금의 수룡(강하도와 해도)을 찾기 위해서 이다. 이제 새만금의 물길을 찾아가 보자.


- 雪山 최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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