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의 영혼이 안식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 마태오 11:28∼30 -

나는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지치고 지쳐서 너무나 힘들 때 이 구절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 이렇게 스스로가 자유로운 사람이어서 나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에게 기댈 수 있거나 무거운 짐을 진 동지가 나에게로 와서 기댈 수 있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그렇게 가고 싶었던 겨울 지리산에 갔다. 겨울 산은 처음이라 나름대로 준비를 단단히 해서(보온 물병부터 스패츠까지)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황동지(농협노조 중앙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친구)와 함께 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 오전 11시 30분부터 였다.

그러나 한 번 가본 길이라 자신이 있었던 백무동 길에서 그만 난 나침반의 역할을 망각한 채 등산로가 아닌 길로 빠져 한 시간 반이나 헤맸다. 너무나 뻔한 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니.....

분명 인적이 있었던 길을 따라 왔는데 어느 새 길이 없어졌다. 온 길을 따라 다시 내려와 보니 초입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 수로공사현장을 따라 올라온 것이었다.

그렇게 등산로가 아닌 험한 길을 헤매다 등산로를 발견하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지리산이 오만하게 굴지 말고 조심해서 가라고 나에게 보낸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리산을 오르는 등산로 중에서 가장 평이하다는 백무동 길을 몸이 아픈 황동지와 둘이서 5시간여에 걸쳐 올랐다. 장터목 산장에서 도착한 우리는 눅눅해진 신발과 몸을 추스르고 취사장에서 간단한 저녁과 소주 한 병을 나눠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30분에 눈을 떴지만 날씨가 영 험했다. 눈보라가 치고 날이 험해서 해가 보일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는 천왕봉에 가고 싶었다.

같이 간 황 동지는 산장에 남기로 하고 나는 천왕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행이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 다르게 산을 오를수록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 무서워 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혼자 가다가 사고가 나면 이 눈보라 속에서 아무리 소리쳐도 잘 들리지 않을텐데... 괜찮을까?'
'아니 그래도 지리산에 왔는데 사람들이 천왕봉은 들러서 갈테지 먼저 출발한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야. 얼른 쫓아가 보면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까?'

이렇게 고민하다 결국 포기하고 내려오려고 되돌아서 걷기 시작했는데 밑에서 불빛이 보이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따뜻한 손길이 필요했던 나

다행히 그들과 함께 천왕봉을 향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을 서른 번 쯤 올랐다던 전형적인 산사람 아저씨는 어제 저녁때 만난 관절이 아픈 대학생이 천왕봉을 꼭 가고 싶다는 말에 그를 데리고 이 험한 길을 헤치고 올랐다며 힘을 내서 걷자고 일행들을 다독이고 지리산에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 주신다.

걷는 도중 그 아저씨는 나에게 험한 길에서 손을 내밀어 주었지만 나는 그 손을 흔쾌히 잡지 않는다. 왠지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게 싫기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데 굳이 그러는 아저씨가 부담스럽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아저씨가 한마디 하신다.

"괜찮아. 나 총각 아니니까 걱정 말고 내 손 잡아" 라고. "난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라고 말했더니 그 아저씨 막 웃으며 한 마디 하신다.

"고집 되게 세네. 사람은 의지하고 사는 거야. 나한테 빚 진 거 남한테 그만큼 돌려주면 되는 거구."

겨울 지리산에서 나는 깨달았다. 짐이 되기 싫은 나와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나를. 그래서 나는 내 의식이 시키는 대로가 아니라 내 몸이 시키는 대로 가기로 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