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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경자유전”이라는 희극

3대 먹거리 사업 예산 되살려야

관리자( icomn@icomn.net) 2021.09.28 10:16

 

 

현행 헌법 제121조 제1항에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천명되어 있다. 땅은 농사를 짓는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헌법에 따르면 농업은 자영이 원칙이다. 그래서 소작농은 금지된다. 물론 농지의 임대차나 위탁경영이 완전히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농업 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이에 준하는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때만 “법률에 의하여 인정된다.” 이처럼 경자유전의 원칙은 헌정질서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인 것이다.

 

하지만 시시때때로 농지 불법취득 사건이 벌어진다. 특히 개발예정지 근처에서, 그것도 사회적으로 유력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그 주변의 사람들에 의해. 지위를 이용해 접근할 수 있는 개발예정 정보를 사전에 입수하여 개발 차익을 노리고 불법적으로 농지를 취득했다는 의심을 살만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라고 하기엔 그 빈도가 지나치게 잦고, 경우에 따라서는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농지의 불법 취득이라 함은 농사를 짓지도 않을 사람이 농사를 지을 것처럼 위장하여 농지를 취득했다는 것을 말한다. 헌법과 법률이 천명하고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을 위배하는 행위다. 사전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의 수취는 국민 간의 정보 불평등이라는 위헌적 문제로도 이어진다. 여러 측면에서 농지 불법취득은 우리 헌법이 용인하지 않는 행위다. 헌법 이전에 정서적으로도 이해될 수 없는 불의하고 부도덕한 행위이기도 하고.

 

최근 신도시 개발예정지 주변의 농지를 취득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논란은 가중되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불법적 농지취득을 한 사실이 사회적 파장을 가져온 바 있다. 제1 야당의 대표가 부친의 농지불법취득에 대해 사과하기도 하고, 급기야 현직 국회의원이 부친의 농지불법취득에 책임을 지고 사직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가 토지주택정책의 실무선에 있는 LH의 임직원들이 개발예정정보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하고, 사회 주요 인사들의 친인척이 모종의 이유로 불법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대중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농림축산부는 지난 8월 17일 농지법, 농어업경영체법, 농어촌공사법 등 농지관리개선 관련 3개 법률을 개정하였다. 이들 법률의 개정에 따라 농업진흥지역 내 농지취득 제한, 투기목적 농지취득에 대한 강제처분의 신속절차 시행, 처분명령 미이행에 대한 이행강제금 기준 상향 조정, 농지 불법취득에 대한 벌칙 강화 등이 이루어진다. 결국 핵심은 헌법이 정한 경자유전의 원칙을 실질적으로 지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농지의 불법취득을 규제할 수 있도록 법이 강화되었으니 경자유전의 원칙은 지켜질 것인가? 불행하게도 이 질문은 선후가 바뀌었다. 무엇보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도대체 땅을 갈고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 수 있느냐이다. 2020년 농업소득 평균은 1,5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2020년 임금 근로자 평균연봉 3,634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실제로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 그래서 다음 질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이런 마당에 농사 지을 사람이 남아 있는가? 즉, 유전(有田)할 자격이 있는 경자(耕者)가 있는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농사를 업으로 삼는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만 간다. 아예 농가 인구 자체가 200만 명을 겨우 넘는 수준으로 감소했다. 농사를 지을 땅이 있어도 정작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먹고살기 어려운 고행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누가 농사를 지으려 하겠는가? 이런 판국이 되니 경자유전이라는 말은 우스운 말이 되어 버린다. 농사만 지어도 임금 근로자 수준으로는 먹고 살 수 있어야 땅을 갈아 소출을 보자고 의욕 하는 거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 아니라 천덕꾸러기가 된 마당에 경자유전은 물정 모르는 소리일 뿐이다.

 

이 와중에 2022년 3대 먹거리 사업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일이 벌어졌다. 3대 먹거리 사업이란 임산부 친환경 농식품 지원사업, 초등 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저소득층 농식품바우처 사업을 말한다. 그런데 9월 1일 발표된 내년도 정부예산안에서 이들 사업의 예산이 깡그리 사라진 것이다. 사업비 총액은 569억 52백만 원이었다. 문제는 이 3대 먹거리 사업이 모두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사업이라는 점이었다. 이 사업들은 임산부, 어린이, 저소득층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국내농업을 보호하는 효과까지 있었다. 이런 사업들을 관련 조사 등이 부족하여 예비 타당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공중분해시키겠다는 것이 이번 정부 예산안의 골자다.

 

경제개발이 지상의 목표가 된 이래, 한국은 도시 노동자의 생활안정을 위하여 농업 생산물의 가격을 제어하는 정책을 유지해왔다. 21세기가 되고 국민소득 3만 불 시대가 도래했다지만 근본적인 구조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3대 먹거리 사업처럼 조금이라도 농업에 기여할만한 정책들은 천대받기 십상이다. 이것이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러면서 지방소멸과 농촌인구소멸을 걱정하고 있다.

 

2022년 정부 예산안은 이제 국회의 심의를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3대 먹거리 사업이 다시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깎인 예산이 다시 부활할지 어떨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거대한 예산 규모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일 수도 있지만, 3대 먹거리 사업의 예산이 갖는 일종의 상징성을 염두에 두면 재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나라가 농업에 대하여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도도 담보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면, 이젠 경자유전이라는 말을 아예 헌법에서 빼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윤현식/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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