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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혼 유감

성장현( icomn@icomn.net) 2021.04.10 10:29

오늘은 첫 재판을 이혼 사건으로 시작했다. 원고가 2017. 12.경에 이혼 소송을 제기한 사건인데 재산분할과 관련하여 복잡하게 감정이 이루어지고 있어 상당히 재판이 오래 계속되고 있다. 오후에는 작년에 제기한 이혼 사건으로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과 현재 1심에 계속되고 있는 이혼 사건의 합의를 이뤄냈다. 오늘은 종일 이혼으로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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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필자가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하던 시절 만난 대학 선배가 생각나는 하루다. 그 선배가 말했다. “나는 사랑이란 것의 존재를 안 믿는다. 우리가 개념 짓는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할까.” 철학과를 졸업한 선배가 말하니 왠지 더 철학적인 질문 같아 보이고, 그 선배가 대단히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 선배가 말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한동안 길을 걷다가도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울었다.” 그 말을 들으니 “사랑”은 정말 있구나 싶었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이혼할 때도 그 사랑한 마음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는 없을까. 서로 원수가 돼서 이혼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재판은 증거에 의하여 판결하는데, 이혼 소송의 경우에 상대방이 이혼의 원인을 제공한 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혼 생활 내내 불행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결혼 생활 내내 이혼 재판에 사용할 증거를 수집하는 경우는 드물다. 간혹, 이혼을 결심한 사람이 상대방의 불륜이나 폭행 등의 증거를 수집해서 재판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이혼 사건에 제출되는 소송자료에는 ‘증거 없는 주장’만 있는 경우가 많다. 이혼 소송이 오히려 갈등을 부추겨 화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

 

대법원은 이혼 소송에 있어서 갈등을 부추기는 것을 방지하고, 소송의 당사자가 원만히 합의하여 이혼 소송을 종료하거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갈등 저감형 소장’을 제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필자도 이혼 소장은 갈등 저감형 소장으로 제출하고 있다. 오늘 합의에 이른 1심 이혼 사건도 갈등 저감형 소장으로 제출한 사건이며, 위 소장에 상대방을 비난하는 내용이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빨리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항소심 계속중인 사건은 당사자가 재산분할과 양육비 청구에 있어서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합의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필자가 쌍방 합의를 이끌어 항소심 재판부에 ‘화해권고결정’을 요청하여 재판부가 화해권고결정을 하였음에도, 의뢰인이 합의안에 이의를 제기하여 재판부가 ‘화해권고결정’을 다시 하였다. 위 결정문에 대하여 이번에는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여 다시 약 2주간 쌍방 합의 과정이 필요했다.

 

예전에 비하여 분쟁을 합의나 조정으로 끝마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재판부에 따라서는 소가 제기되면 일단 조정에 회부하여 당사자 쌍방이 합의하여 사건을 끝내도록 유도하기도 하고, 재판 중에 조정을 유도하기도 한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누가 알리오. 그것은 사건의 당사자가 제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3자인 법관이 당사자의 분쟁을 ‘일도양단’으로 결정하는 것보다는 당사자들이 서로 합의하여 원만히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당사자에게 유익한 일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합의된 조정안에 약간의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전부 패소하지는 않지 않는가.

 

사건이 당사자의 화해로 끝나는 것이 ‘변호사에게는 별로 유익하지 않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1심에서 판결로 끝나면, 패소한 일방이 항소할 것이니 항소심 사건을 또 수임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1심에서 3심까지 3번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사건이 1심 조정으로 1번의 수임으로 그치니 말이다.

 

그러나 조정으로 ‘최소한 전부패소하지 않은 의뢰인’은 언제가는 다른 사건으로 다시 그 변호사를 찾아오지 않을까.

 

어제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 의뢰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역시, 이혼 사건의 의뢰인이다.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 얼마나 분한지 설명한다. 그리고 이 말로 끝맺는다. ‘변호사님.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세요.’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품위 있게 헤어질 수는 없을까. 이혼 사건의 변호사라면 최소한 품위 있는 이별을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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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현은 법무법인 광안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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