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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청년을 소비하는 정치

윤현식( icomn@icomn.net) 2021.04.22 10:10

지난 4월 7일, 서울과 부산의 시장을 비롯한 주요 선출직 공직의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야당의 압승이었고, 여당의 참패였다. 야당은 이번 보궐선거의 승자는 국민이라고 평가했다. 야당이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겸손한 자세였다. 반면 여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불과 1년 전에 있었던 총선에서 여당은 위성정당을 포함해 무려 180석이 넘는 의석을 확보했다. 개헌만 빼고 뭐든 할 수 있다는 60% 이상의 의석비율이었다. 그로부터 겨우 1년 만에 반전된 이 상황은 여당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와중에 투표 당일 출구조사가 입길에 올랐다. 언론사에서 공개한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일 출구조사 성별 및 연령대별 분석의 결과 때문이었다. 이 조사분석에서 20대와 30대 남성들은 압도적으로 야당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이하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준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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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 성별 및 연령대별 분석 ⓒKBS 화면 캡쳐)

 

1년 전 제21대 총선만 해도, 20대 청년의 투표경향은 남녀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20대 이하 청년에서 남녀 모두 현 여당에 대한 지지가 과반이상을 넘었었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비율로 여당을 지지했지만 남성 역시 60%에 가까운 비율로 여당을 지지했던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경향과 비교할 때, 이번 보궐선거의 결과는 20대 청년층은 덜 보수적인 정치세력에게 친화적일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부정한 결과였다.

 

20대 남성의 변심이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그런데 이 결과를 놓고 나온 정치권의 평가의 뜬금없는 것이었다. 20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반발했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청년 남성들이 정부의 부당한 ‘성차별’적 정책에 분노했다는 것이다. 패배의 당사자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공공연하게 이런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을 편 것에 대해 남성들은 역차별 당했다고 생각한다”(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 “청년 여성만을 위한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것이 선이다, 이것이 옳은 것이다’라고 주장하면 공감도 얻지 못하고 반감만 크게 살 뿐입니다”(정한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 등등이 대표적인 발언이다.

 

이러한 기류에 편승한 정치인은 여당에만 있는 건 아니다. 거대 여당은 물론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정의당에서조차 이런 류의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하다가 참패했다”(이준석 국민의힘 최고위원), “성평등이란 특정 성별을 우대하는 조치가 아니다”(박창진 정의당 부대표) 등이 그러한 입장의 예이다. 성별에 의한 갈등을 해소하고 전망과 경로를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을 진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다. 정치인으로서의 책무에 대한 인식이 없는 발언들은 한국사회의 정치수준이 전반적으로 퇴행일로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이 와중에 급기야 군 복무자에 대한 형평성을 운운하며 군가산점제 부활이 주장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공기업 · 공공기관 승진평가시 병역의무 이행 경력을 반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대군인지원법’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같은 당 김남국 의원 역시 전국 지자체 채용 시 군에서의 전문경력이 인정될 수 있도록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특히 전용기 의원은 1999년 헌법재판소의 군 가산점 위헌 결정을 언급하면서, 헌법이 문제라면 개헌을 해서라도 군 복무자들에게 보상하겠다고 호언했다.

 

게으른 정치인들의 편의적인 사후합리화

 

실제로 4월 15일 국민의힘 소속 이채익 의원은 발빠르게 ‘제대군인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의안번호 2109519). 취업지원실시기관이 채용된 제대군인의 승진에도 군복무 경력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며, 사기업이나 사적 단체에서 군경력 인정을 하려 할 때는 국가가 재정지원을 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이다. 사기업이나 사적 단체에까지 군경력 인정의 범위를 넓혔다는 측면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제시한 안보다도 더 확대된 개정안이다. 20대 남성들의 호감을 얻기 위한 여야의 노골적인 손짓이 점입가경으로 치달리고 있다.

 

기본적으로 20대 남성이 정부여당으로부터 등을 돌린 결정적 이유가 페미니즘 때문이었다고 하는 건 근거가 없다. 오히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에서 더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20대 이하 여성 유권자 중 15.1%가 거대 양당 소속이 아닌 다른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20대 이하 여성 유권자 역시도 절반을 훌쩍 넘는 사람들이 여당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되면 20대 이하 남성이 페미니즘에 반발해서 여당으로부터 돌아섰다고 하는 건 적절한 해석이 아니다.

 

결국 선거결과를 젠더갈등에 의한 것으로 분석하는 행위는 사후합리화에 불과하다. 여당 패배의 결정적 원인을 페미니즘때문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당장 20대 남녀의 투표율 차이가 선명하게 보이니 이걸로 편리하게 사태를 정리하려는 것일 뿐이다. 사회심리학자인 로랑 베그가 지적하듯, 이런 식의 사후합리화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밝혀주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아예 판단을 흐리게 만들어버린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헌법의 원리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개헌을 운운하는 무책임한 발언을 함부로 하는 건 판단이 흐려졌기 때문일까?

 

더불어민주당의 전용기 의원이 언급했듯, 군가산점 제도의 문제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다루어진 바가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공무원 및 공공기관 채용시 군 제대자에게 가산점을 주도록 한 제대군인지원법의 규정을 위헌이라고 결정했다(1999.12.23. 98헌마363). 헌법재판소가 해당 규정을 위헌이라고 판단한 결정적인 이유는 제대군인에게 부여되는 가산점이 여성 및 장애인을 차별함으로써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원천봉쇄하는 제도는 위헌

 

헌법재판소는 결정문에서 “가산점제도는 실질적으로 남성에 비하여 여성을 차별하는 제도”라고 규정하면서, “여성들과 같이 가산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6급 이하의 공무원 채용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거의 배제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고 명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가 “공직부문에서 여성의 진입이 봉쇄”되는 효과를 가져오며 이것은 “공직선택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라고 파악했던 것이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군가산점 제도는 또다른 형태의 평등권 침해를 야기하고 있었다. 바로 제대군인 간의 처우 차별이었다. 제대군인에게 군복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실시하던 군 가산점 제도는 그 취지와는 전혀 별개로 모든 제대군인에게 효과가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이 제도는 오직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 취업하려고 하는 전역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공무원 시험이나 공공기관 시험에 응시하지 않는 거의 절대 다수의 전역자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제도였으며, 공적분야에서 취업을 하려고 하는 소수 전역자에게만 제공되는 특혜였다.

 

사기업에 취직을 하거나 유학을 가거나 자영업을 하거나 기타 특별한 직업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군복무를 했다고 해서 어떠한 보상도 돌아오지 않는다. 만기제대하면 세금을 깎아 준다거나 통신비를 감면한다거나 건강보험 적용범위를 넓혀주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군복무를 했다고 해서 별다른 혜택이 따로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이와 관련하여 병역이 “국가의 존속과 활동을 위하여 불가결한 일인데, 그러한 의무를 이행하였다고 하여 이를 특별한 희생으로 보아 일일이 보상하여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관여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해당 규정을 위헌이라고 결정하였다. 반대의견이 없었던 것은 물론 별도의견조차 없는 전원일치 결정이었다. 그만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평등의 원리에 비추어 군 가산점 제도는 이에 부합하지 않음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은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표에 눈이 어두운 일부 정치인들이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며 역사를 되돌리려 하고 있다. 개헌을 운운하면서 말이다.

 

정치인인가, 간신 모리배인가?

 

지금 정치권은 남녀갈등과 세대갈등을 조장하면서 편의적으로 지지기반을 만드는 따위에 몰려다닐 시간이 없다. 당장 청년들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고용문제만 보더라도 심각한 지경이다. 3월 통계자료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은 10%가 넘어간다. 실직상태의 잠재구직자와 초단시간 취업자를 의미하는 확장실업률은 2월에 26.8%에 달했다. 다시 말해 청년의 4분의 1일 실업자이거나 극도의 고용불안정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한 비상시국임을 감안하더라도 상황은 비상하다. 청년디지털 일자리 사업에만 2020년 3차 추경으로 5,611억원을 배치하는 등 재원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청년들이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

 

책임감을 느끼는 정치인이라면, 상황을 보다 분명히 인식하고 본질적인 문제가 뭔지를 따져서 정확하고 올바른 대안을 내야 한다. 불안정한 청년의 현재를 보살피고 이들이 미래에 대한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정치의 책무다. 그러나 군가산점제 부활 논란에서 보듯, 정치인들은 청년문제의 본질적 해결은커녕 남녀로 갈라치고 서로 적대하도록 만들면서 당장 이목을 끌 수 있는 허황된 이야기를 대책이라고 내놓곤 한다. 이들 정치인에게 청년은 선거철에 반짝 소비할 대상일 뿐이다. 편의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가르고 갈등을 유발하면서 그 갈등을 통해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라 간신 모리배의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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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식

한국미래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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