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1년 반에 걸쳐서 온 인류가 고통받고 있는 역병의 시대에 뭔가 초자연적인 힘이라도 빌리고 싶은 마음에서 ‘호신부(護身符)’라는 주제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이 주제 역시 수년 전에 논문으로 발표했던 내용을 칼럼 형식에 맞게 다시 추리고 엮은 것이다.
호신부는 인간의 신변을 지켜주고, 현재나 미래의 재앙을 막아주며, 복을 부르는 기능을 하는 일체의 주술적 물체, 즉 부적을 말한다. ‘부적(符籍)’은 악귀나 잡신을 쫓고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특정 상징 내지 글자를 그린 종이 혹은 인조 모형, 자연물 등으로 현세이익과 안녕을 목적으로 하는 주술적 물체를 말한다. 이러한 부적이 우리나라에만 전승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의 힘이 닿지 못하는 것에 대해 초월적인 힘을 빌려 이루고자 하는 믿음을 형상화하고 있는 보편적인 신앙과 연계된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인터넷에서 유행한 코로나 부적,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이 ‘부적’은 구한말에 만들어진 용어로서 일반적으로는 ‘부(符)’로 쓰며, 고려시대에는 간혹 ‘도부(道符)’라고 쓰이기도 했다. 1570년에 간행된 도교 경전인 『옥추경(玉樞經)』에는 ‘부전(符篆)’으로 쓰였으며, 구한말에는 ‘부적(符赤)’으로 쓰이기도 했다. 사료에 보면 『영조실록』과 고종 재위시기의 『승정원일기』,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부작(符作)’으로 쓴 용례가 등장한다.
호신부에 속하는 부적 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종이부적이며, 그 밖에도 나무, 비단 등의 섬유류, 다라니, 염주, 불보살상 등의 다양한 소재들이 존재한다. 나무 종류로 제작되는 목부(木符)인 경우 벼락 맞은 대추나무나 복숭아나무, 천금목(千金木) 등을 쓰고, 종이부적인 경우에 괴황지(槐黃紙)를 쓴다. 괴황지는 회화나무 열매로 물들인 누런색 종이를 말하며, 괴황지를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계피와 감초를 달인 물을 부어 말려서 노란색으로 만들어 쓰기도 한다. 불교부적의 경우에는 여기에 향료를 주입하거나, 때로는 먹을 사용하기도 한다. 향의 종류에도 육향(陸香), 목향(木香), 침향(沈香), 안식향(安息香), 백교향(白膠香), 전단향(栴檀香) 등 수십 종에 달한다.
종이부적은 누른 빛깔을 띠는 괴황지(槐黃紙)에 붉은색 경면주사(鏡面朱砂)를 사용하여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비싼 경면주사 대신에 황토를 기름에 개어 쓰기도 하며, 최근에는 붉은색으로 인쇄하여 제작하기도 한다. 부적에 그려지는 문양으로는 용, 호랑이, 매 등의 동물과 해, 달, 별 등의 천체를 상징하는 문자나 그림, 그리고 글자로는 범어의 옴(唵) 등 육자진언과 천수다라니 같은 밀교주문이 많이 쓰였다.
이러한 종이부적 외에도 호신부의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 있는 물질로는 염주, 휴대할 수 있는 크기의 작은 불보살상(호지불), 다라니 등을 넣은 경갑, 불보살이나 신장을 새긴 호신패, 만달라나 옴자, 진언들을 날인한 의류 등 다양한 형태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염주나 호신패, 경갑, 호지불, 의류의 경우에는 몸에 밀착된 상태로서 수시로 접촉하는 형태의 호신부라고 할 수 있다. 종이부적의 경우에는 문설주 위나 방문, 대문, 벽처럼 눈길이 자주 닿는 곳에 붙이는 것은 역시 인간의 시각을 매개로 하여 재앙의 근원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결계를 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종이부적 등에 향을 가하는 것 역시 후각을 이용한 정화(purify)기능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청각을 이용하여 벽사와 공간 성화의 기능을 갖는 물질 매체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사한 후나, 가위에 시달릴 때 유튜브나 미디어 파일 등을 이용하여 공간에 천수경 독송 소리가 울리게 하는 의식이 그것이다. 사람들의 삶에서 그 증상은 존재하되, 실체성을 증명하기 힘든 현상 중의 하나로 ‘수맥’이 있는데, 속설에서 수맥을 방지해준다는 이유로 상당수의 가정에서 붙여두고 있는 달마도 역시 넓은 범주에서는 호신부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삶의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이나, 잠재적 위험, 그리고 인간의 힘을 넘어서는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사용되는 것이 호신부이지만, 때로는 죽음 이후에도 망자를 수호하고 천도하려는 목적에서 사용되기도 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모리스 꾸랑의 『한국서지』에서는 구한말의 부적문화에 대해, 범어로 쓰여진 기도문과 마귀를 좇는 주문의 형식이며, 붉은색으로 인쇄한 용지들이 관속에 매장된다고 적고 있다. 이 자료를 통해 목판으로 인쇄된 부적들을 망자와 함께 관 속에 매장했던 것이 구한말의 상장례 풍습이었으며, 또한 당시 강화 전등사에 종이부적 인쇄목판들이 있었던 것도 알 수 있다.
호신부로 사용되는 물질 중에서 먼저 염주의 사례를 살펴보면, 염주알에 범자로 ‘옴’을 새기거나, 벽사의 기능이 있는 벽조목, 즉 벼락 맞은 대추나무 혹은 침향목으로 만들어서 종교적 힘에 주력을 더하고 있는 사례들도 눈에 띈다. 또한 착용자의 해당 띠에 맞추어 염주를 따로 제작하는 12지 염주도 있다. 현대에 이르러 팔목에 차는 염주의 경우에는 장신구 역할까지 겸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석 등의 소재를 채택하여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교단마다 각자의 교의와 정체성에 따라 다른 상징을 염주 안에 새겨 넣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조계종의 경우에는 반야심경이나 육자진언, 천태종은 관음보살과 금강령, 원불교는 청정주(淸淨呪)를 새겨 넣는 방식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성물과 부적의 전통적인 역할이 뒤바뀌거나 기능과 효과가 변모되는 양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염불수행의 보조도구인 염주나 기도의 도구인 카톨릭의 묵주가 자동차 안에 걸려서 안전운행을 지켜주는 수호부적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또한 기독교의 십자가 같은 경우는 행운의 마스코트 내지 치장을 위한 장신구의 역할을 겸하기도 한다. 이처럼 수행도구에서 호신부 내지 장식성의 기능으로까지 의미가 확대된 염주 역시 항상 인간의 몸에 부착하거나,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을 때라야 호신부로서의 존재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은 다른 물질과 다르지 않다.
부적을 눈길이 자주 닿는 개인적인 공간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는 것 외에, 태워서 복용하는 이른바, 부적소식법(符籍燒食法)이라는 방식도 있다. 이 부적소식법은 근대의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에서도 실천했던 의례 중의 하나로서, 민족종교 계열 신종교들이 태동하던 19세기에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유행하던 일이 잦아서 자연스럽게 치병(治病)과 관련된 의례와 수련법이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방식은 도교와 불교(특히 밀교)에도 존재했던 수련법이기 때문에 유불도 삼교융합을 주창했던 신종교에 수용·전승된 것으로 생각된다. 동학의 경우에는 부적이 대중을 위한 영험한 도구로서 수용되며, 특히 영부(靈符)는 질병과 구마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서, 그 주문의 글자를 태워서 마시게 되면 질병이 사라지게 된다고 믿는다.
밀교 경전에서 이 부적복용의 효과를 적은 내용을 보면 역시 치병 내지 장수에 관한 것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부적을 태워 물에 타서 마시는 것은 곧 부적이 가진 주력을 직접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신속하고 강력한 치병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부적을 태워서 복용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상상해낼 수 있는 범주 내에서, 부적의 주력을 몸과 최대한 가깝게 접촉할 수 있는 수행의례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부적, 즉 종이에 뭔가를 쓰고, 그려 넣은 호신부도 존재한다. 이러한 호신부에는 범자로 ‘옴’이나, 대명왕육자진언(훔 마니 파드메 훔), 마하반야바라밀 같은 문구를 써넣거나, 불보살의 모습을 그려넣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팔만대장경에 수록된 밀교경전에 부적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대장경 목록판에도 부적이 수록될 정도로 부적문화가 융성했던 시기였다. 경판으로 부적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종이에 인쇄하여 개인이 휴대하기에 편한 부적이 대량으로 제작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시대에는 재앙을 예방하여 신변을 보호하고 소원 성취를 기원하기 위해 이 다라니를 서사하여 몸에 지니고 다녔다. 사찰에서는 판본을 만들어 대량으로 인쇄해서 신도들에게 보급했으며, 조선시대에는 그 발행량이 더 많았다.
이처럼 호신부 역할을 하는 호부다라니는 필사나 인쇄의 방식으로 제작되기도 하고, 형태면에서는 낱장이나 두루마리, 절첩(折帖) 등 다양한 모양이 존재한다. 호부다라니 중에는 항상 소지하는 물건에 넣거나, 옷에 날인하는 형태로도 제작되기도 한다. 망자의 관에 함께 넣어주는 부장물 의류를 포함하여 각종 섬유류에 원형(圓形) 만달라를 다량 날인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다라니 외에도 휴대하기 좋은 사이즈의 호지불(護持佛)이나 호신패(護身牌)를 지니고 다니는 것이 유행했다. 금속제 호신패에는 보살상이나 비사문천왕, 사천왕 같은 수호신장상이 새겨져 있으며, 걸고 다닐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 있다.
다라니를 넣는 호부용기를 경갑, 경합 또는 경통이라 하고, 5센티 내외의 작은 불상을 넣었던 용기는 소불감(小佛龕) 혹은 호지불감(護持佛龕)이라한다. 고려시대에 제작되어 사용되었던 경갑(經匣)과 소불감(小佛龕)은 대부분 금속제로서 다라니 등의 법사리와 호지불(護持佛)을 넣어 보관하거나 호신용으로 휴대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호지용 불감이나 경갑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패용했거나 요대 혹은 과대(銙帶)에 연결하여 패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밖에 속이 비어있는 형태의 은제 팔찌 안에 목판본 부적과 다라니를 넣는 경우도 있었다.
다음으로, 한국인이라면 다 한 번쯤은 보았음 직한 삼재부적에 대해 살펴보자.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통되고, 활용되는 이 삼재부적의 기원이 언제부터인지는 지금으로서는 명확치 않다. 조선시대에는 남녀 공히 나이가 삼재(三災)가 드는 해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노란색 괴황지에 붉은 경면주사로 ‘머리 셋에 다리가 하나 달린 매(三頭一足鷹)’를 그려 문설주에 붙였다. 이 삼재라는 것의 계산법은 생년을 기준으로 하는 것으로, 십이지지 중에 뱀, 닭, 소띠(巳酉丑)에 해당하는 사람은 돼지, 쥐, 소(亥子丑)해에, 원숭이, 쥐, 용띠(申子辰)는 호랑이, 토끼, 용(寅卯辰)해가 삼재년에 해당된다. 돼지, 토끼, 양띠(亥卯未)는 뱀, 말, 양(巳午未)해, 그리고 호랑이, 말, 개띠(寅午戌)는 원숭이, 닭, 개(申酉戌)해가 삼재년이다. 삼재는 3년 동안 들게 되어있으며, 모든 이에게 9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보편적인 사이클의 개념이다.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아직도 민간에 삼재에 대한 속설이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도 그 영향력이 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이에게 주기적으로 닥치게 되어있는 미지의 불안과 두려움은 삼재를 막는 호신부에 대한 수요를 불러일으켰고 그에 부응하여 사찰에서도 불교 교의와 관계없이 무속적인 성격이 강한 삼재부를 발행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사찰에서는 다양한 삼재풀이 의식 외에 문 위에 붙이는 방식 혹은 개인이 소지 가능한 호신부 형태의 삼재부를 써서 보급하기도 한다. 삼재부 역시 삼두일족응 뿐만 아니라 호랑이를 그리거나, 상형문자 옆에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혹은 ‘불불재칠(佛佛財七)’ 등의 문구를 써넣기도 한다. 지금도 사찰에서는 다양한 부적을 발행하고 있으며, 자체 제작을 하기도 하고, 인쇄된 부적을 구입하여 배포하기도 한다. 사찰에서 주로 배포하는 부적은 삼재부적, 입춘부적, 입시부적 등이다. 이 중 특히 입시부적 같은 경우는 현대의 세태에 따라 새로이 생산된 종교문화라 하겠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신발이나 장신구 등 몸에 착용하는 다양한 일용품에 다라니나 진언, 경문, ‘옴’자 등의 불교적 상징을 디자인하여, 감각적으로 성스러움을 향유하고, 결과적으로는 종교적 힘을 내 몸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자 하는 욕망을 호신부의 형태로 발현시키는 사례들도 볼 수 있다. 이들 호신부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감각을 의식하고 만들어진 것이며, 그 공간에 인간이 존재했을 때, 나아가 인간이 그 호신부들을 오감으로 인지했을 때 비로소 그 존재의미를 확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대에 따라 호신부의 형태나 물질의 측면에서 다양한 변용이 이루어져 왔지만, 그 과정 안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호신부를 늘 소지하는 자의 ‘몸’ 가까이 두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는 결국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물질에 종교적 상징을 도입하여 감각을 통해 접촉함으로써 종교적 힘을 내 몸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보호받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호신부라는 형태로 발현된 것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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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순: 동국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