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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누구나 한 번씩은 어릴 적에 버스 타면서 생긴 추억거리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주 오래전에는 만원버스 때문에 생겨났던 이야기 중에는 도시락이 뒤집혀 김치 냄새가 진동했다던 이야기, 타야 할 사람이 많아서 안내원이 꾸역꾸역 사람들을 밀어 몰아놓던 이야기, 안내원을 짝사랑했던 이야기 등 말입니다.

 

 

장애인의 씁쓸한 대중교통에 대한 기억

 

장애인은 버스에 대한 추억들이 있을까요? 제 경험으로 처음 버스를 탄 건 1986년 서울에 갔을 때였습니다. 구로구에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업혀 탈 수 있었지만, 시내로 갈수록 많아지는 승객 때문에 정작 내려야 할 곳에 도착하자 내릴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득이 내려야 하는 통로를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버스기사는 연착을 우려해 어려움을 말했고 급기야는 쌍소리가 오갔습니다. 주변 승객들의 배려로 겨우 목적지에 내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버스로는 장애인이 승차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저처럼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버스는커녕 택시 이용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10km 정도는 친구들의 다리품을 팔아 1시간 이상을 걸어서 목적지로 이동했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0년 전쯤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갑작스런 폭설로 불과 2시간 남짓한 시간에 많은 눈이 쌓였고 혼자서 택시를 타야 됐습니다. 그러나 1시간이 넘도록 택시를 잡았지만 수많은 택시가 승차를 거부했고 온몸에 하얀 눈이 수북이 쌓일 정도가 됐습니다. 마침 1시간 전에 지나가던 부부가 1시간 동안 한 곳에서 택시를 잡던 제 모습이 측은했던지 집까지 데려다 줬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으로 일부 얻어내기도 

 

그래서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절실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저였기에, 2008년 전주시를 상대로 교통약자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5일간의 버스 타기 운동과 완산경찰서 서장실 점거, 9일간의 전주시청 앞 천막농성 등을 통하여 전체 전주시내버스 중 30%를 저상버스 도입, 장애인 콜택시 50대 도입을 2013년까지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성과를 이뤘습니다.

 

▲[출처=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

 

시민의 이동권 보장해야 할 시가 본연의 역할 못해

 

요사이 버스파업으로 지방언론들이 연일 기사들을 다투어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동의 권리는 비단 장애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민 누구나 다 이동의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지자체와 버스사업자는 이러한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의무를 이행할 의무의 주체들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시민의 불편이 이만저만 아닌 것 같습니다. 중증장애인이 요즘 자주 하는 소리는 “버스파업으로 활동보조인이 약속한 시간에 제대로 오지 못해 그 피해를 우리가 고스란히 지고 있다! 전주시와 버스회사는 뭐하는 거야! 우리 세금 제대로 쓰고 있는 것 맞아?”라고 많이 분개한 목소리들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어디 장애인뿐이겠습니까? 학생들이며 새벽부터 직장으로 가야 하는 많은 노동자들, 고된 몸을 깨워 아침 일찍부터 삶의 현장으로 떠나야 하는 많은 시민의 불편함을 그 누구도 말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 때문에 하루빨리 버스 운행이 정상화되길 시민은 간절히 바라는 것 같습니다.

 

[덧붙임] 강현식 님은 전북시설인권연대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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