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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고문과 체벌의 사이는 멀지 않다.

채민(전북평화와인권연대 상임활동가)( 1) 2013.01.04 01:05

故 김근태 전 장관이 1985년 경찰에 연행되어 서울의 남영동 대공분실에 감금된 채 고문수사를 당한 사건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영화<남영동1985>. 개봉 전부터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는 작품이었다. 정신과 육체가 파괴되는 고문이 적나라하게 화면을 채울 것임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문장면의 끔찍함보다도 영화 속 고문 가해자 중 한명인 이두한의 모델인 이근안이 영화를 보고 한 말이 더 충격적이었다.

 

이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처럼 호스로 얼굴에 물을 퍼붓지 않았고 그저 물수건으로 호흡을 곤란하게 했을 뿐이다’라며 영화적 연출이 과장됐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근안은 자신이 저지른 고문의 강도가 영화처럼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는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국제적 인권협약은 ‘정보나 자백을 얻어내거나 협박을 하기 위해 개인에게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가하는 것’을 고문이라고 규정하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 하고 있다. 공권력이 자신들이 준비한 수사‘각본’을 완성하기 위해 한 심신에 상처를 남기며 행해졌던 그 행위들 모두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 것이다.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고문은 있어서는 안 되는 폭력이다. 지금에 와서는 많은 이들이 공권력의 고문행위에 분노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가슴 아파했다. 그런데 아동과 청소년에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가해지는 다른 형태의 고문인 체벌은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이미 예전부터 유엔 고문방지위원회는 체벌을 “공포에 기대어 자신의 양심에 반하게끔 만드는 고문의 일종”이라며 단호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체벌이 없으면 어떻게 교육이 가능하냐고 묻거나 학교폭력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교사 혹은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체벌이라는 폭력이 교육이라는 이유로 일상화되고 허용되는 사회에서 약자에게 심부름을 시키거나 괴롭히는 게 학생들에게 심각한 폭력으로 비춰질까.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힘을 갖도록 하고, 사람 사이의 힘의 차이를 인식하고 그 힘의 차이를 타인 위에 올라서는데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인권감수성의 교육이다. 고문의 대안이 간접고문이 아닌 것처럼 체벌의 대안은 간접체벌이 아니라 체벌을 없애는 것이다.


누군가는 체벌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이제 체벌은 없어진 거 아니냐고 되묻는 사람들도 있다. 초중등교육법과 지역별 학생인권조례가 체벌을 금지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체벌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올해 4월에 서울지역 중고등학생 127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지만 체벌이 존재한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의 48.8%였다는 소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폭력이 아닌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를 위한 정책과 인식개선 사업이 하루빨리 필요하지만 지난 기간 정부는 이를 외면해왔고, 오히려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을 중지시키려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대선 기간인 이즈음, 교육으로부터 폭력을 단절하고자 하는 시대의 흐름에 훼방을 놓는 몰지각한 정부가 아닌 고문의 역사에 부끄러워하고 인권의 교육을 만들어갈 새로운 정부가 만들어지길 조금이나마 기대해 본다.

 

* 이 칼럼은 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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