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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동자위원은 판정권한이 없어요

 

필자는 며칠 전 전북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군 부당전보 및 부당해고 구제신청 사건” 심문회의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런 해고 등의 정․부당성을 판정하는 심판회의에서 필자같은 노동자위원(근로자위원)이나 사용자위원은 사건 당사자에게 ‘심문’하고 사건의 ‘의견’ 제시만 할 수 있다. ‘판정’은 공익위원 3명이 한다. 그래서 노사위원은 의견을 제시하고 회의장을 나와야 한다. 이때 노동위원회 관계자들은 정말 재빠르게 배웅한다. 기분이 좋지 않다. 뭐 싸고 밑 안 닦은 것처럼.

 

눈치빠른 분들은 알아차렸겠지만, 노동위원회라는 공공기관에서조차 그것도 위원들 사이에 차별이 있다. 그런데 원래는 차별이 없었다. 1953년 노동위원회제도가 처음 입법되었을 때에는 노사위원에게도 판정권한이 있었다. 노동위원회제도 도입 취지가 노동관계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법 전문가와 노동관계 전문가가 함께 노동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이 점점 개악되어 일반사업장 조정 사건에 대한 결정권만 남게 되었다. 노동위원회에서 한때 노동관계 전문가로서 참여가 보장된 노사위원이 이젠 들러리나 다름없이 되었다.

 

출근시간 1시간이 멀다구요?

 

아무튼,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군은 환경미화원인 신청인을 출근시간이 1시간정도 되는 거리의 구역으로 전보조치하였고, 신청인은 이번 전보명령은 부당하다며 해당 근무지로 출근하지 않았고, 결국 해고조치되었다.

 

사건 개요를 보는 순간 가슴이 갑갑해졌다. 이기기 힘든 사례인 것이다. ○○군은 ‘인력의 적재적소 배치’ 등등 전문적인 용어를 써 가면서 그리 멀지 않으니 정당하다고 주장했고, 신청인은 1급 장애인인 아내가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3시간 이내로 병원에 데려 가야 하니 그 곳은 너무 멀어 갈 수 없으니 사정을 봐달라고 한다. 그러니 ○○군은 신청인이 자가용이 있다. 성년이 된 아들이 있다 등등의 주장을 하였고, 신청인은 그동안 억울했던 심정들을 토로했다. (노동자의 경우 대부분 회의장의 위압적인 분위기때문에 말실수를 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데 이번 신청인 역시 마찬가지였음)

 

어느 공익위원이 그래도 출근은 하고 전보가 부당하다고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점잖게 타이르니 신청인은 이번에도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다가 “안사람이 1급 장애인인데 혈관 수술을 잘 못해서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3시간이내에 병원을 가야하는데, 나 밖에 데려갈 사람이 없다. 그래서 못 갔다”라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출근시간 1시간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다.

 

1급 장애인인 안사람을 두고 출근할 수 없습니다.

 

심문회의가 끝나고 친절하게 배웅하는 노동위원회 사람들을 뒤로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기각”이라는 문자가 왔다. 역시 노동위원회는 출근시간 1시간을 단순한 거리상의 개념으로 밖에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 눈으로 확인을 하니, 너무 우울했다. 한동안 우울해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내를 간병할 수 있게끔 집에서 가까운 지역으로 일하게 해달라는 것도 받아주지 않는 행정관청의 척박함을 노동위원회가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로써 또 다시 노동위원회는 노동자 보호를 위한 기관임을 스스로 포기한 사례로 남게 되었다.

 

신청인이 필자의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어떻게 이럴수 있냐’라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말에 무단결근사유로 해고되어서 받기 힘들다라는 답변을 할 때쯤에는 돌에 맞은듯 정신이 멍했다.

 

며칠 전 필자에게 날라 온 돌이 노동위원회로 날라 갈 수 있다. 노동위원회가 빨리 깨닫기 바랄뿐이다.


[덧붙임]  이장우 님은 민주노총 전북본부 법률지원센터 소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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