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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는 초라해도 우리는 희망차게 살 것입니다. 이 겨울이 아무리 추웠어도 봄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 법원에서 지난주에 통보받은 ‘벌금 10만원’, 항소 안하고 ‘노역’ 하려 합니다. 게다가 코앞에 있는 제 선고 공판만 3건, 소환장은 다섯 건. 이것들은 꽤 크게 두드려 맞을 것 같으니, 올해를 사법 탄압을 잘 이기는 해로 선포해봅니다. 새해 개인 전망치고는 좀 고약하지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을 경축하는 날입니다. 본당을 떠나 있으니 세례 줄 일도 없습니다. 해마다 꼬박꼬박 세례를 주고 새 신자를 만들어냈던 그 시간들이 새롭습니다. 

 

종교의식인 세례는 형식적으로는 신앙입문 절차이지만 본래의 내적 의미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습니다. 세례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가운데 선이 아닌 것, 하느님 뜻이 아닌 것은 모두 씻어내고 새로운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겠노라 맹세하는 의식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며 세례를 주었습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참회와 단절, 철저한 쇄신과 변화가 세례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공적 생활 첫 걸음을 세례 받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도 나름대로 세례의식을 갖습니다. 인생에 새로 눈 뜨고 새로 살게 해주는 큰 사건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줍니다. 대체로 좋은 일보다는 아픈 일들 속에서 새로운 통찰과 성장의 계기를 갖습니다. 상처의 시간들이 세례식인 것입니다. 이번 대선 패배가 진실로 아프고 고통스러웠다면 우린 집단적으로 세례의식을 치른 것입니다. 새로운 안목과 각오, 거듭남과 새로남의 결정적 계기가 될 테니까요. 

 

대선 패배 속에서 누구보다도 좌절했을 밀양 촌로들. 다들 눈물 뿌리고 힐링제를 찾아 방황하던 그 시간에 그분들은 그랬답니다. 괘안타, 훌훌 털고 다시 싸우면 된다, 7년은 더 싸울 수 있다! 그리고 이제 ‘희망 순례단’의 이름으로 고통 속에 있는 젊은 노동자들을 찾아 위로방문을 한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우리 밀양 찾아준 사람들 고마우니까 답례 방문해야 하고, 가진 놈들은 없는 놈들 생각 안 하니까 없는 사람들끼리, 피해보는 사람들이 서로 알아줘야 하고, 젊은 사람들이 저래 힘들어하니 늙은이들이 가서 힘내라 안 해야겠나, 이겁니다. 정작 자신들도 힘든 분들이 이렇게 민중의 어버이요 치유자가 되고 계십니다. 우리들도 이리 살면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이룰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밀양 촌로들을 통해 역시 선은 위대하다는 것을, 그 역사는 반드시 전진한다는 것을 가슴 벅차게 확인합니다. 이분들이 이 시대 세례자 요한이 되시어 우리를 새롭게 하고 계십니다. 송전철탑 농성 노동자들, 강정, 용산, 쌍차 해고노동자들도 변함 없습니다. ‘우리가 하늘이다’ 2012년 생명평화대행진의 구호는 계속 됩니다. 희망의 길,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오던 길을 계속 가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대의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직접 요르단 강으로 가셔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공적 생활을 완전히 바닥에서부터 시작하고, 기초부터 튼튼히 하셨으며, 군중과 더불어 군중들 눈높이로 사셨습니다. 

 

우리도 밑바닥부터, 기초부터 다시 튼튼히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치인들만 변화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도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5년 10년보다 더 멀리, 내 지역보다 더 넓게, 지금 꿈보다 더 크게 삶과 관계, 활동을 재구성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통찰력과 지혜, 시야와 역량을 가질 수 있게 해주십사, 쇄신과 창조로 이끄시는 성령께 간구합니다. 

 

1주기를 맞은 밀양 고 이치우 어르신을 비롯한 주민들. 나아가 오늘도 변함없이 생명과 평화, 정의의 여정을 함께 가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이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드리며 큰 절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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