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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53일간의 명동기도를 마친 문정현 신부가 서각 전시회의 마지막 일정도 마치고 급기야 군산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평화유랑'을 떠날 예정이다. 

 

▲사진/ 한상봉 기자 [출처= 카톨릭뉴스 지금여기]

 

서각 전시회를 마치며 지난 4월 25일 오후 5시에 간담회를 가지면서 문정현 신부는 평소 즐기던 '부용산'을 불렀다. '부용산'은 1948년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노래가 섧고 애달파 문 신부의 뒷끝을 느끼게 했다. 누구는 이 노래가 감옥살이를 하던 장기수들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고 전한다.

 

"부용산 오리 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이 자리에서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 차원에서 국회 앞 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김동애 씨는 "용산에서 매일미사를 드릴 때 그저 머릿수가 되며 신부님을 처음 가까이 뵈었다"면서 "그 때 뵌 신부님의 하루 하루가 '가난한 이들의 고난'에 함께 신음하시고 용산은 바로 당신의 십자가인듯 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 천막농성을 하면서도 "동지들이 모두 떠나가는 좌절 속에서 신부님의 헌신과 사랑을 뵈며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김동애 씨는 문정현 신부와 마찬가지로 길 위에 살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전했다. 사진/ 한상봉 기자 [출처= 카톨릭뉴스 지금여기]

 

한편 김동애 씨는 명동성당에서 문 신부가 기도를 하고 있을 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는 다른 사제들의 인색한 모습을 보면서 "한 겨울 눈보라 치는 성모동산에 계신 신부님께 다른 사제들이 묵묵부답하는 것은 바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를 근원적으로 거절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실체를 확인하는 과정"이라며 분노했다.

 

명동성당 기도 중에 늘 함께 해 왔던 김덕희(소피아) 씨는 틈틈이 적어 둔 일기를 꺼내며, 지난 해 12월 원로사제 정진석 추기경의 발언을 문제삼아 용퇴를 주장하던 즈음에 문정현 신부가 지난 4개월 간의 명동생활을 회고하며 "나, 그동안 힘들었어. 온갖 수모와 멸시 참느라 힘들었어. 젊은 신부님까지 외면하고, 일하던 청소부까지도 째려보더라. 그래도 난 그들에게 90도 각도로 인사했어"하던 말을 기억해 냈다.

 

김덕희 씨는 "그때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며 "그분을 지탱하게 해주신 주님께 신부님 기도 들어달라"고 기도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명동에 다녀간 이들을 생각하며 지난 설에는 "그동안 여기서 만났던 많은 인연들을 생각한다. 영혼이 맑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  여기서 지낸 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앞으로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알려준 한 해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문 신부가 처음엔 교회의 심장을 향해 칼을 겨누셨지만, 묵상을 하면서 칼끝이 자기를 향해 겨누어졌다고 고백한 것을 인용하면서, "나 역시 묵상하면서 그동안 못 만났던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신부님은 추운 겨울에도 한 자 한 자 꾸준히 날마다 말씀을 새겨 넣었다. 그러나 그 흔적들은 말씀을 칼로 새긴 것이 아니라 가슴에 그 말씀들을 품으셨다가 뱉어내셨던 것이다. 이 흔적이 큰 울림이 되어 신자들에게 남겨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참석한 소설가 지요하 씨는 조지훈의 '낙화'라는 시를 문정현 신부에게 헌정했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유영숙 씨는 최근에 영세를 받고, 자신과 같은 이웃을 찾아가는 길에서 의미 있는 선물을 받았다. 사진/ 한상봉 기자 [출처= 카톨릭뉴스 지금여기]

 

서각 전시회 마지막 날이라, 제일 좋은 글귀를 적어낸 이들에 대한 추첨이 있었다. 이날 추첨에는 이미희 씨와 유영숙(루시아) 씨가 당첨되어서각을 선물로 받았다. 용산 유가족인 유영숙 씨가 받은 서각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여서 뜻 깊은 선물로 기억되었다.

 

한편 문정현 신부는, 용산에 머물 때 서각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면서 "용산에서 경찰들과 늘 신경전을 벌였는데, 자칫 칼질을 하다가 일 치렀을까봐 두렵다"면서 다행히 용산에서 나온 뒤에 지리산에서 4박 5일동안 서각을 정식으로 배운 뒤에 명동성당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명동에서 매일같이 쭈그려 앉아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다 방문객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오후엔 서각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노라고 소개했다. "여기서 성경묵상 참 많이 했다. 영적 독서하면서 마음에 와 닿는 귀절을 메모해서 서각을 했다. 그런데 글씨가 마음에 안 들어. 지금도 서각 전시회 한 것 내 의지 아니다. 전문가들 올 때마다 쑥스러웠다"고 고백하며, 그래도 "이것은 마음에 새겨진 것이니 계속하시라"고 해서 용기를 얻었다고 전했다.

 

문정현 신부는 무엇보다 "오랜세월 길에서 살면서, 함께 해 준 눈물겨운 형제자매들이 있었다"면서 고마움을 표시하고,  명동성당에 들어오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진/ 한상봉 기자 [출처= 카톨릭뉴스 지금여기]

 

"4대강 사업 관련해서 사제들이 명동에 텐트를 쳤다고 '왜 영업방해 하냐'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가 명동성당이냐 명동주식회사냐, 오장육부가 뒤집히더라. 사목위원들이 '신부님들, 옷을 벗고 미사하라'는 말도 들었다. 이런 말이 어디 있냐. 사제복은 누구도 벗을 수 없다. 그래서 명동에 들어왔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창끝이 나에게 향하더라고. 정 추기경님은 입학 3년 선배이고, 졸업 2년 선배다. 명동성당 신부는 5년 후배다.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했던 사람인데, 너 문정현 저 사람들에게 뭐라 말할 수 있냐, 정말 자신있냐, 생각하니 기가 죽더라고. 그게 저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문정현 신부는 명동성당 기도와 전시회마저 끝냈지만, "지금도 자나깨나 걱정"이라 했다. 4대강 문제도 해결되지 않앗고, 그밖에 산적한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하게 된 것이 '평화유랑'이다. 문 신부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열심히 살겠다"고 전하고, 이어 국회 앞에서 봉헌되는 시국미사에 참석하러 자리를 총총히 떠났다. 다시 길에서 길로 나간 것이다.

 

[덧붙임] 카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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