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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과와 회귀

 

지역 전체에 2011년을 버스파업의 해로 기억하게 만든 전북버스파업은 복수노조 시대의 주도권을 둘러싼 계급간 이해가 충돌한 전국적인 투쟁이었다. 정부는 처음부터 개입해 사측을 비호하고 지원했다. 노동부는 지금까지도 불법파업이라는 주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의 적은 버스 자본가들과 정부만이 아니었다.

 

파업은 지역의 버스 토호자본가들의 가혹한 착취와 사회에 대한 기생성, 그리고 이들을 비호하고 유착한 지방정부와 민주당의 추악한 실체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물론 그 때문에 파업이 장기화됐고, 주체적으로도  대체인력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오랜 교착상태를 맞으면서 그 영향력도 약해졌다. 그럼에도 이 투쟁은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역할이 누구에게 주어져있고, 이를 가로막는 자들이 누구인지를 시 도민으로 하여금 알게했다.

 

그 때문에 4월 덕진 도의원 보궐선거에서 급조된 진보진영 후보가 35%라는 초유의 지지를 받기까지 했다. 민주당은 자신의 조직조차 결집하지 못했다.

 

 

토호자본가들을 편들던 저들의 일부는 이런 분위기에서 미약하나마 버스에 대한 공공적 통제, 보조금지급내역 요구, 요금통 교체 등을 추진했다. 이를 강제한 것은 파업노동자들이었지만, 진보 정당의 의원도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를 진보진영은 적극적인 대책위 구성과 연대를 통해 뒷받침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전북도는 전북고속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전주시는 부당 청구한 유류보조금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환수하겠다고 해야 했다. 노선문제도 논의되기 시작했고, 형식적이나마 시민 참여를 제도화하겠다고 해야 했다.

 

그러나 시내버스가 잠정합의를 통해 현장으로 복귀하고 전북고속만 남게 돼, 투쟁 동력이 점차 사라지고 연대세력도 집중력을 잃어가자 저들은 내뱉었던 약속들을 하나씩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최근 그나마 시의회를 통과해 행정부가 도입하기로 하고 예산까지 책정된 버스요금통 교체조차 무위로 돌려질 상황이다.  노선개편을 비롯한, 버스운행에 대한 공공적 통제 등 무엇 하나 바뀐 게 없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 말 전북고속 조합원들과 시민 사회 대책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결국 지급된 전북고속 지원 보조금 문제도 투쟁의 성과를 무위로 돌리려는 저들의 노력이 거둔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여전한 투쟁의 여파때문에 비록 소폭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사회를 착취해 배를 불려온 체제의 대표적 표현인 요금인상도 결국 이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버스문제의 핵심이랄 수 있는 보조금문제는 어떨까. 보조금 투명화가 조금이나마 이뤄졌을 리 만무하다. 전북고속과 시민사회대책위의 보조금 지급 반대활동 때문에 도가 자체 조사해 올 보조금을 6억 가량 삭감하기로 했다는 것이 전부다. 전주시의 경우 작년 파업 때문에 일시적으로 줄었던 보조금이 올해 어떤 근거도 없이 다시 큰 폭으로 인상돼 지급되는 일이 눈앞에서 다시 벌어지려 하고 있다.

 

전주시는 매년 정경유착에 의한 특혜가 아니라며 설명되지 않는 액수의 보조금을 해마다 크게 인상시켜 지급해 왔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간 듯하다. 2004년 33억 66백만원에서 2010년 123억 47백만원까지 무려 3.7배 인상됐다. (같은 기간 전주시의 전체예산은 1.67배 인상되었을 뿐이다.)  2011년 운동의 압력 때문에 106억 81백만원으로 떨어졌지만, 올해 140억이상 지급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것은 분명히 저들의 자신감이 상당부분 회복된 것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성적 평가

 

새롭게 조직된 민주버스 전북지부는 전주시내에선 이미 한국노총을 압도하는 조직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측은 임단협을 맺음으로써 민주버스가 현장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임단협 교섭을 불응하고 버텼지만, 2개월여의 강도 높은 준법투쟁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사측의 악질성과 지역의 고착화된 유착관계를 볼 때,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결코 토호 버스자본가들의 기득권과 이를 유지시켜주는 저들의 협조체제를 그대로 놔두고 현실의 어떤 진정한 변화도 이룰 수 없다는 것도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시내버스 조합원들은 5개사 사주들과 지부 임단협 교섭을 3개월째 해오고 있다.  그러나 누구도 실질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사측이 교섭을 하고 있는 이유가 어떻게든 지연시켜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4월이면 개정노동법에 의해 교섭권 단일화를 해야한다는 조항 때문에 일부 사업장은 교섭권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비록 인정은 했지만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중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사측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 개별 사업장별로 불균등한 조건과 결합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부분 사업장은 조합원들이 강력한 조직력을 이용해 일정한 양보를 받아내고 있고 사주들은 더이상의 양보를 하지 않기 위해 사주들의 연합에 기대 버티는 형국이다. 그러나 호남고속에선 전혀 양상이 다르다. 일부 양보도 하지만 탄압을 병행해, 노동조합 내부에 대한 이간질과 온건화를 유도하고 있고,  주도적인 투사들을 표적 탄압해오고 있다.

 

사측은 준법투쟁 결행에 대한 보복으로 많게는 70만원 이상의 임금을 삭감했고, 대의원들을 본기사에서 대기로 강등조치 했다. 심지어는 파업 중 일어난 문제로 징계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깨고 분회장을 해고하려 시도했다.

 

이러한 조건에서 이를 전 지부와의 공동투쟁으로 돌파하지 못한 것은 정말이지 아쉬움이 남게 한다. 그렇게 된 데는 어렵게 만들어진 교섭이 사측의 사보타지에 의해 진행되지 않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던 듯하다. 실제로 일부 조합원들의 요구로 성실교섭 자세로 호남문제가 교섭에서 제기되었지만, 단사문제는 소 노사 협의회를 통해 풀면된다는 기만적인 사측 주장을  지도부가 실용적으로 수용해버렸다.

 

비록 힘들게 얻은 교섭이다. 그렇다고 교섭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여 사측이 꺼리는 의제를 다루지 말자고 할수록, 역설적으로 교섭을 통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노동운동의 기본이다. 일부 지도부의 태도는 무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계급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이미 훨씬 전에 다른 데서도 나타났던 것으로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시내버스 현장 복귀 후 같은 지부로서 남은 전북고속투쟁에 시내버스가 이후 책임 있게 연대하겠다는 애초의 약속과 결의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지도부는 이를 포기할 수 없는 산별정신으로서 강조하고 연대투쟁을 조직했어야 했지만 여기서도 실용적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전북고속은 호남고속과 마찬가지로 지부전체의 성공의 향배를 가를 만큼 전략적인 사업장이다. 지역 버스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만큼 자본가들의 강력한 구심이다. 전북고속 사장은 버스 전반에 인맥을 가지고 있고, 차명으로 가지고 있는 다른 회사 지분도 적지 않다고 한다. 또한 노동자들이 호남고속처럼 노동자가 3백명 이상이고, 대부분 여전히 한국노총 소속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수단인 한국노총의 아성인 것이다.

 

이런 상태로 버스 전체가 크게 진전된 성과를 거두기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어렵지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개별 사업주들 상대로 한 각 분회의 강력한 힘을  지부 차원으로 강력하게 결집하지 못하는 문제가 핵심에 있다.

 

그리고 버스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연대해온 단위들과 지역 진보진영의 집중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문제다.

 

그와 달리, 버스 자본가들은 각 개별 사업장마다 다르지만 여전히 호남고속과 전북고속 등 강력한 힘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고, 이를 비호하는 정치와 행정관료들, 그리고 이를 덮어주는 언론이 다시금 같은 이해관계로 회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조합원들의 투지가 없어서일까. 진보진영이 허약해서일까? 다시 말해 역부족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파업 이전보다 지금, 육안으로 불안해 보일지라도, 지옥 같은 과거로 회귀하지 않으려는 조합원들의 투지는 여전히 강력하다고 봐야한다. 지역의 부패고리를 깨고 있는 자신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특별한 투쟁기금이 없이, 임금조건자체가 낮아 장기적 파업을 하기 어려웠던 이들이 오랜 파업으로 인한 심화된 생활고 속에서도 대오를 유지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훌륭하게도 지부 임단협을 위해 불균등한 상황을 넘어 공동으로 두 달여 동안 무려 2만건 이상의 결행을 단행하는 강도 높은 준법투쟁을 전개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런 조합원들이 변한게 없고 심지어 과거로 후퇴하는 것을 용납할 리 없는 것이다. 혹시라도 조합원들의 잠재력을 믿지 못하겠거든 가장 힘들었던 파업 때를 돌아보면 된다. 

 

과거에도 오랜 교착국면이 지속되면서 심신이 지쳐갔고 이를 비관적으로 본 일부 지도부가 4월을 넘기지 못하고 대오가 무너질 것이라고 오판해 부적절하게도 사측을 만나 거의 항복문서를 받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조합원들은 이를 즉석에서 이를 찢어 버리지 않았던가.

 

당시나 지금이나 사기와 규율이 약해진 측면은 있지만 그것은 적절한 리더쉽이 제공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지도력

 

직접 투쟁본부 내부를 보지않았더라도, 지난 보궐선거 때 손학규 낙선운동과 같은 전술을 결정하는데 논란이 없었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투쟁의 불가피성을 도출하고 이를 설득하고 과감히 시도하는 민주적 리더쉽이 제공되었기에 조합원들의 투지는 제대로 발휘될 수 있었고 효과적 투쟁을 벌일 수 있었다.

 

민주당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정치적 압박이 가해지자 사태해결을 위해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동안 눙치고 있던 민주당이 사측을 압박하는 시늉에 그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한 조건에서 정부의 지원까지 받아 무려 3차례 공권력을 투입해 파업을 파괴하려 했던 사측은 물러나게 되었다. 적어도 지역차원의 자신들의 확고했던 기반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됐고, 자칫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됐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전북고속은 버티기로 나왔지만, 전북고속 사주라고 위협을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북고속 투쟁은 사주 스스로 판돈을 키운 것이었다. 지금도 사주는 노조인정을 하지 않고 어떤 신분보장 없이 선복귀만을 반복하면서 조직을 깨는 데 혈안이다. 지금까지 과정에서 이것이 단지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전체 버스 조합원들은 투쟁을 통해 얻은 산별조직을 사수하기 위해 공동으로 투쟁해야 했다. 전북고속이 무너지면 다음은 자기 차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역 진보진영 전체와 조합원들은 노조인정과 함께 불법적인 사주에 대한 사법처리와 사업권 환수, 보조금 전면 지급금지의 요구를 강력하게 투쟁으로 뒷받침해야 했다.

 

한마디로 키워진 판돈에 맞게 시내버스와 책임있는 단위들, 그리고 지역 진보진영이 하나되어 보다 강력하게 싸웠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엄청나게 큰 것을 잃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전북고속을 남긴 것은 아쉬웠지만, 더 아쉬운 것은 복귀 후 전북고속 투쟁에 나의 투쟁으로 여기고 함께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제 지리한 교섭을 끝장내고 더이상 투쟁을 미룰 수 없는 객관적 상황에서 시내버스 5개사 조합원들이 다시금 투쟁을 결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할까.

 

지난 투쟁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반성속에서 책임지고 강력한 연대투쟁을 건설하려 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일이 결코 아니다.

 

 

전북고속 공대위

 

바로 지금 신속하게 현재의 전북고속투쟁을 전사회적 쟁점으로 재점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해야한다. 이 속에서 시내버스의 투쟁도 구심을 갖추고 성공적으로 준비될  것이다. 이를 위해 버스전북지부와 공공, 나아가 민주노총전북본부의 책임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한다. 버스보조금 지급을 막고 지연되고 있는 투명화를 위해 사회감사를 강제하는 문제 등 그동안 역할을 해온 시민 사회단체(대책위)의 책임 있는 결합도 요구된다.

 

다시 말해 공동투쟁을 위한 책임 있게 공대위를 결성하고 이를 통해 연대투쟁을 시급히 건설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버스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전주 덕진의 경우, 전북고속 투쟁이 있는 지역이고, 이미 지난 해 버스파업이 드러낸 정경유착의 문제를 시민들 사이에 상당부분 각인시킨 만큼 민주당에 대한 공세를 통해 투쟁에 정치적으로 연대하고 여기서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선거와 현실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분리시키는 선거중심주의적 태도로는 기성 정치판을 흔들지도 못할 것이며, 그동안 투쟁에서 얻은 성과에 기초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이후 총선에서도 우리는 파업노동자들과 함께 정치의 공간에서 싸워야 한다. 악질 사주로부터 사업권을 환수와 공영제 요구도 과감히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은 전적으로 사주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민주당과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행정관청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들의 기만과 위선을 폭로하고 전시민적 요구인 시민사회의 버스에 대한 독립적 통제(감사기구, 계획기구 등)를 설치할 것을 주장해야 한다. 민주당이 아니라 진보세력이 이를 실현할 수있는 세력임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날이 풀어졌다, 다시 얼어 붙었다 하지만, 누구나 겨울이 곧 봄으로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3월 개학과 4월 총선이 투쟁에서 봄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많은 일들이 이뤄지게 하기위해 모두가 주체로 나서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자칫 기회를 놓치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미완의 버스 파업을 완성하기 위한 2차 투쟁은 그만큼 지역을 바꾸는 싸움이다.  이 역사에 많은 동지들과 함께 토론하고 함께 투쟁을 건설했으면 한다. 시급히 말이다!

 

이병무 (노동자연대 '다함께' 전북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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