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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보면 뭐하나 마음만 아프지. 그저 나와 내 이웃이 무기력해 보일 텐데. 방관자로서 역사의 증인이라도 되어 보자고 하는 건 다큐 <두 개의 문>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서 보지 않으려 제작두레 참여자 시사회도 안 갔는데, 결국은 봤습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영화에 '진성반도체'만 등장하지 않으면 이 영화가 왜 고초를 겪어야 하는지 모를 정도로 영화 자체에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장르를 검색해보면 가족드라마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관객의 공포심을 유발하여 극을 전개하는 '공포 스릴러물'에 가까워 보입니다. 사직서 쓰면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회사의 감언이설과 막상 사직서 쓰니 그 감언이설이 협박으로 바뀌는 것.

 

'윤미'가족을 뒷조사하여 '윤미'와 관계된 사람(친척)들에게 피해 주고, 헛된 소문을 만들어 '윤미'가족을 이웃들과 분리시키고, 결국에는 가족들 사이도 분열시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것.

 

'윤미'의 어머니를 미행하고, 또 다시 감언이설로 속이고, '윤미'의 동생을 '진성반도체'에 취업 시키고 투쟁하는 아버지를 막게 하는 이런 비열한 짓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모두 합법이라는 점이 더욱 무섭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진성반도체'는 영화 <스크림>의 고스트페이스,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처럼 영화 내내 주인공을 괴롭히고 린치를 가합니다.

 

난 왜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오싹오싹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영화가 현재의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투영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은 저런 비열한 짓을 용인하는 사회이고, 그 피해자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결국 저 무서운 일들이 언제든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공포심과 불안감이 저를 오싹하게 만든거죠. 아무튼 이 시대의 노동자의 현실과 기업들의 횡포를 지루하지 않게 잘 담아준 감독, 스텝 그리고 배우들이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의 '노무사'2천여 명 노무사 가운데 노동사건만 수임하고 노동자를 위해서만 일을 하는 100여명의 '노동자 노무사'임이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노무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모든 노무사가 저리 노동자를 위해 애를 쓸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 속 '동행'스러운 노무사보다 노조파괸 전문 노무법인이었던 '창조컨설팅'스러운 노무사가 더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노동자가 '동행'스러운 노무사를 만나려면 꽤나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죠. 이래저래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참 살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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