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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측은지심을 마음에 새긴다

지금여기( 1) 2011.01.20 17:15

성모동산에 불어오는 겨울 칼바람도 역시 매섭다. 한줌 햇빛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붙잡고 싶어도 햇빛은 사라진다. 오늘은 정릉에서 사는 자매님이 밝은 모습으로 신부님을 찾아 오셨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명동기도소식을 보시고 늦었지만 신부님의 사제서품 45년을 축하하기 위해 오셨다고 했다.

 

처음 뵌 분이지만 마음 쓰시는 것이 고맙고 또 고마울 뿐이다. 공감과 존중에 대한 마음을 나눌 때 느껴지는 행복감, 따뜻함은 사람들을 언제나 하나로 만든다. 차가운 벤취 위에 케잌을 놓고 축하의 노래를 부르며 야외 파티를 열었다. 그래서 우리는 춥지만 춥지 않다. 추위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녹일 수 있지만 자신의 욕망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만든 차가움은 추위보다 더 냉정하다. 이들의 차가운 마음은 무엇으로도 녹일 수 없다.

 

▲사진/평화바람

 

수십년만의 한파라고 하지만 세상의 비열함과 냉정함보다는 그래도 훨씬 낫다. 용산에서 떠나간 분들의 2주기 추모모임이 열린다고 한다. 아직 살아남은 이들은 감옥에 있다. 한진중공업에서 20년이 넘게 해고 노동자로 살아 온 김진숙씨는 자신의 동료가 죽어간 그 타워크레인에 올라갔다. 290여명의 해고노동자를 살리기 위해 35m 지상에 올라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보다 겨울 바람에 흔들리는 타워크레인이 훨씬 마음이 편해서 좋다고 말했다.

 

단식 한달이 넘고 대우자동차 정문위 고공에서 50일이 넘게 농성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늘밤도 추위와 싸운다. 평등한 노동권을 향해 그들은 세상과 싸우고 있다. 절망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희망은 저항하는 이들에게 있다. 이들에게 함께 하지 못한다는 값싼 동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이 하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으로 어설픈 위로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 연대의 마음과 진정함을 가진 사람이 사라져 가는 이 시대에 진짜 의인이 누구인가를 묻고 싶은 마음이다. 혹한 속에서 그들이 흘리는 눈물과 한숨이 누구를 향해 있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는가에 대한 답답함이다.

 

얼마 전 신부님과 나눈 대화가 생각이 났다. ‘사람은 누구나 측은지심이 있어야 해, 그런데 사람들과 교회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어’ 신부님이 오래전 목판에 새긴 글 중 하나가 ‘측은지심’이었다. 그렇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예의, 따뜻한 관심, 식지 않는 사랑과 함께 행동으로 연대하는 것이 측은지심의 결론이다. 그냥 일방적으로 던지는 그런 관심이 아니라 나도 가난하고 애절한 마음으로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이 측은지심이고 연민이다. 문신부님과 함께 한 세월에서 배우는 성찰의 목소리가 나에겐 늘 깨우침이다.

 

오늘 새로운 손님이 또 왔다. 다큐작가이다. 문 신부님에게 인터뷰를 하러왔다. 다음 주면 문규현 신부님의 은퇴미사가 있다. 형님 신부님의 목소리를 영상편지로 만들기 위해서다. 신부님은 동생 신부님이 건강이 안 좋은 것도 큰 걱정이다. 조금 더 신자들안에서 사목자로 남기를 바라고 싶지만 일선에서 떠나야 하는 것이 아쉽고 섭섭하다. 당신이 떠날때는 몰랐는데 동생 신부님이 은퇴미사라고 하니 마음이 안 좋은 것 같다.

 

평생 서로 한길을 걸었던 형제신부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져준다. 여의도로 가는 길에 어둠이 내린다. 여의도 앞 길거리 미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1200여일 넘게 텐트 농성을 해 온 비정규직 교수노조의 김동애, 김영곤 선생님이 서둘러 미사준비를 하고 있다. 신부님의 강론의 여운이 귀에 맴돈다. ‘한점의 불꽃’이 세상을 활활 태운다고 했다. 그렇다. 지금은 한점의 불꽂이 필요한 시대이다. 우린 무엇으로 남을까?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한상욱 통신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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