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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고] 집에 산다는 것, 집을 산다는 것

강문식( smallaction@gmail.com) 2012.12.14 12:49

두 해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왔다. 집을 알아보고, 이삿짐을 모두 나를 때까지도 대O산업에서 걸어놓은 설 축하 플래카드(현수막)를 보지 못했다. 짐을 나르고 함께 밥을 먹으로 나가는 길에야 골목길 어귀에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발견했다. 무채색 골목에 화려한 색감의 플래카드가 영 어색했던 게 기억난다.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여서 ‘대O산업개발’이라는 여섯 글자가 더 눈에 밟혔다. 그때는 집들이를 하면서 ‘재개발 시작되면 오늘 집들이 온 사람들은 다 소주병 들고 옥상에 올라와야 한다’며 서로 농을 던지며 가볍게 넘겼었다.

 

이 동네는 누가 봐도 쇠락해간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곳곳에 문 닫은 가게들이 있고, 큰 길을 건너기 전에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그냥 오래된 동네이다 보니 그러려니 생각했었는데, 몇 년째 살다보니 꼭 그래서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이사 오고서 몇 달이 채 지나기 전에 이 동네 재개발추진위에서 보낸 우편물을 몇 개 받아봤고, 주민 총회를 하니 나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세입자도 나가야 하냐고 물으니, 세입자는 오지 말라며 돌아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발조합이 설립되었고, 대O개발과 현O개발이 재개발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금방이라도 집이 허물어질 것 같고, 소주병 들고 옥상에 올라가야할 것 같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 부동산 좀 안다는 사람들, 지역 돌아가는 소식에 빠른 택시/버스 노동자들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뒤적거려보니 2006년부터 이 일대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올해로 벌써 햇수로만 7년째. 재개발하겠다는 얘기만 무성하지 실체가 없다.


전주는 곳곳이 개발 중이다. 아파트가 도시 바깥을 모두 에워쌓아 인공적인 분지가 된 덕분에 여름 일기예보에는 매일 대구보다 더 더운 도시로 등장한다. 도심 바깥만 그런 게 아니라, 도심에도 재개발을 추진 중이었던 곳이 올해 20곳을 넘었었다. 이 중 18곳이 하도 사업추진이 안돼서 올해 11월 재개발지구에서 해제됐다.

전주 신시가지에 지어진 새 아파트도 분양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전주 외곽에 들어오면 을씨년스러운 유령도시처럼 보이게 만드는데, 도심을 허물고 고층 아파트를 지어서 누구에게 그 집을 넘기겠다는 것인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도리가 없다. 이게 인구 60만을 겨우 넘는, 그리고 인구가 늘 일은 없이 갈수록 줄어들 예정인 지방 소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게 더 기가 찬다.

 

▲전주 서신동 바구멀1구역 재개발 조감도

 

 

이 동네에서 변하는 것은 플래카드 밖에 없다.

 

1년이면 몇 번씩 재개발 관련한 공지가 나붙다 보니 이곳에 사는 누구도 집을 고치지 않는다. 내가 사는 집은 국민주택인데 주공(현 LH)에서 5층짜리 주공아파트보다 먼저 지었던 3층짜리 건물이다. 연식이 있으니 찬바람은 송송 들어오고 손봐야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하지만 애써 돈 들여 고쳐놨는데 몇 년 안에 다 허물어버린다면 헛돈 쓰는 것이 되지 않는가. 그러니 다들 참고 산다. 이런 사정을 아니 세입자도 집주인에게 뭘 고쳐달라고 얘기하기가 송구해 그냥 참고 산다.


언제 재개발할지 모르는 곳에 새로운 가게가 생길 리도 만무하다. 있던 가게가 문을 닫고 나면 그 자리는 그렇게 비어있는 채 무엇도 다시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동네는 휑해지고 낡은 간판만 덜렁거리면서 무채색으로 변해간다.
언제 이사가야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은 동네를 꾸미는 것도, 동네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도 어렵게 만든다.

 

동네가 무채색인 것은 오래돼서가 아니라, 미래의 삶을 기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개발 조합을 만들고, 헛바람을 불어넣어서 이득을 보는 건 재개발 투기꾼 밖에 없어 보인다. 내가 사는 동네는 오래 전에 마을이 만들어진 곳이라 집주인들이 세를 놓지 않고 직접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 집주인들 중 다수는 재개발조합에 참여했을 터이지만, 기약 없는 재개발사업 때문에 집도 못 고치고, 공동체도 못 이루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기는 매한가지이다. 정작 재개발을 마치고 나면, 전주에서 가장 오래돼 값싼 집을 갖고 있던 원주민들이 재개발 된 삐까번쩍 아파트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집은 살 것이 아니라, 살 곳이라고 그랬다. 산다는 것은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는 현재를 말하는 것이지 않을까? 재개발로 꼭 집을 빼앗지 않더라도, 미래를 기약하지 못하게 되는 것 자체가 현재의 삶을 빼앗는 것이지 않을까? 건설자본이야 재개발 추진해보다가 안되면 손 떼면 그만이라는 심보겠지만, 그런 자본의 탐욕에 그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은 뿌리째 흔들린다.

 

얼마전 아침에 나오면서 보니 전주시에서 재개발사업 시행을 확정했다는 플래카드가 붙었다. 곧 집을 빼야 한다면 지금 전세금으로 전주 시내에 옮겨갈 만한 곳이 있을까. 아니면 그 처절했던 용산도 여태껏 빈 땅으로 남아있는 마당에 정말 재개발이 시작되긴 할까, 이런 플래카드 몇 장 더 붙고 말지 않을까. 생각과 한숨이 많아진다.

 

* 필자는 바구멀에 애정을 갖고 있는 서신동 주민입니다.

* '바구멀'은 거북바위가 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입니다.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식지 '일터'에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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