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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건설노동자 목숨 빼앗는 체불임금

참세상 편집팀( newscham@jinbo.net) 2011.10.10 13:12

[참세상 편집자주] 오는 10월 22일 오후 3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수천 명이 모여 “생활임금과 노동3권을 모든 노동자에게! 비정규직 철폐 2011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를 연다. 이번 대회는 산업과 업종, 지역을 넘어 비정규직 노동자 전체의 공동 요구를 천명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물론 정부와 한나라당까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 비정규직 노동자의 절실한 요구와는 동떨어져 있거나 실효성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기획단'은 10.22 대회 구체 요구를 담은 비정규직 조합원의 릴레이 기고를 진행한다.

 

지난 2008년 3월, 강릉에서는 건설노동자 목수가 3개월치 임금 500여만원을 6개월동안 받지 못해 체불임금 지급을 달라고 찾아간 현장소장에게 맞아 죽었다. 경기도가 주거지였던 45세의 건설노동자가 먼 타지에 나가서 일요일도 쉬지 않은 채 하루 10시간 이상씩 3개월을 열심히 일한 대가가 죽음이었다.

 

2010년 10월에는 체불임금에 항의해 시너를 온 몸에 뿌리고 분신한 레미콘노동자가 끝내 생을 마감했다. 전북 순창군에 위치한 이 현장은 ‘한국도로공사’가 발주처인 공공 공사현장이었으며 시공사는 굴지의 대형건설사인 ‘현대건설’이었다.

 

죽어야 관심 갖는 체불임금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6년 19,826개 건설 사업장에서 1,837억 원의 체불임금이 발생했다. 2009년에도 8,601개 사업장에서 1,555억 원이 체불됐다. 사업장 수는 절반으로 줄어든데 반해 체불액수는 16%정도 줄어드는데 그쳐 건설현장 체불이 개선은커녕 고착화, 고질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적으로 임금체불이 적다는 건설노조 조합원도 2010년 한 해 동안 체불액수 만도 200억원에 달하였다. 하지만, 이처럼 만연하고 있는 임금체불이 죽어야만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건설노동자 임금체불의 원인은 크게 3가지이다. 건설현장에 불법다단계하도급이 첫 번째이다. 공사를 발주하는 시행사로부터 공사를 직접 시공하는 시공사, 그리고 협력업체인 전문건설업체로 이루어진 하도급 과정이 있다. 그러나, 불법적인 하도급이 훨씬 많이 끼어든다. 페이퍼 컴퍼니(공사 시공능력과 인력을 보유하지 않은 채로 존재하면서 공사만을 발주 받아 수수료를 챙기고 공사를 재하도급 하는 회사), 브로커에 의한 재하도급, 건설노동자 당사자에게까지 이뤄지는 강제도급이다. 건설노동자에게 전달되는 임금이 몇 단계를 거치고, 거기에 법적 관리의 대상이 아닌 불법적인 하도급업자들의 손을 거치게 된다.
 
다단계하도급은 2007년 건설산업기본법이 개정되어 발주처로부터 공사를 직접 시공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원-하청으로 단순화하고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강제도급, 노동착취가 그대로 드러나는 노무공급자나 장비알선업등은 모두 불법화 되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불법하도급이 성행하고 있다. 이유로야 많겠지만, 건물, 도로, 교량등의 발주자가 ‘적법한 과정을 통하여 적법한 품질로 만들어지는 것’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과 ’법을 집행하는 정부의 무관심‘이 불법적인 다단계하도급을 성행하게 하고 있다. 하도급 한단계가 줄어들면 상품의 품질이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지, 그리고, 최종생산자인 건설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이 개선되고 살림살이가 나아질 수 있는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유보임금만 없어도 살겠다"
 
두 번째는 임금은 노동을 제공한 달에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건설현장은 노동을 제공한 달에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임금 정산일이 31일인 경우 9월 1일~30일까지 일한 대가를 건설노동자들은 보통 11월이나 12월에 받아 첫 달치 임금을 2~3개월 지나서 받게 된다. 또한 건설노동자들 중 특수고용직에 종사하는 건설기계장비노동자들의 임금이 노동법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탓에 길게는 6개월짜리 어음을 지급받기도 한다. ‘유보임금-임금늑장지급’으로 건설현장에서 이를 두고 보통 ‘쓰메끼리’로 부르고 있다. 유보임금 기간이 길어지면 결국 체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임금이 체불되었다는 것을 일한지 3개월쯤에야 알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10년째 동결상태인 임금을 인상하자는 요구보다는 ‘쓰메끼리만 없어도 살겠다’는 말들을 하고있는 지경이다.
 
이러한 유보임금이 발생하는 원인이 뭘까. 하청업체가 한 달 치 작업물량에 대한 정산을 해 원청에 올리고, 원청은 이를 다시 발주처에 제출한다. 이후 발주처는 원청업체에 1개월 단위로 진척된 작업물량을 기준으로 임금이 포함된 기성(공사대금)을 지급하는데 원청업체는 이 기성금을 받아 5일 내지 10일 정도 지나서야 하청 협력 업체에게 작업물량에 대한 공사대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것이 재하청과 재재하청을 거치며 자연적으로 한 달 또는 두 달 이상의 임금이 연쇄적으로 체불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갖고 있는 셈이다.

 

공사대금 선수금을 70%이상 지급했던 4대강 공사현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이 여전히 임금이 2~3개월 후에 지급되고 임금이 떼이는 것은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건설노조는 발주처-원청-하청-재하청으로 연이어지는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LH공사의 경우는 유보기간을 14일 이내로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유보임금을 근절하기 위한 근본대책으로 기성 중 임금 부분을 따로 떼 발주처에서 임금을 직접 지급해 노동자들이 제때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명절 때만 반짝 관심, 전 사회적 관심으로
 
마지막으로 정부의 공식적인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임금체불이다. 흔히 임대료 체불로 불리고 있기는 하지만, 건설기계노동자들은 1인 1차주를 통해 직접 장비를 운전하여 특정 사업장에서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자간의 계약관계에 의해서 발생하는 임대료라는 명목으로 임금이 아주 쉽게 떼이며, 지금까지 노사 간의 문제가 아닌 개인 간의 문제로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정부와 사용자들이 져야할 부담을 개별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고용직인 건설기계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고 임금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법개선이 우선 해야한다.

 

건설노조는 전국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임금체불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오고 있다. 원청이 임금 체불에 대한 책임을 갖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도 이뤄내었다. 울산, 인천, 경남, 성남, 광주등 전국적으로 지자체에서 임금체불방지를 위한 조례도 활발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애초에 발주처에서 공사대금으로 설계된 임금이 입찰과정에서 삭감되지 않았는데도 최저낙찰제를 통해서 결국은 임금이 깍이고,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100원에 해야할 공사를 30~40원에 진행하는데 결국은 임금을 손을 대든 아니면 자재에 손을 대든 하는 방법으로 채워나갈 수밖에 없는게 너무 당연하지 않는가?”라는 건설업체의 항변도 있지만, 건설업체는 가장 손쉽게 임금에 손을 대는 방법으로 최저낙찰제에서 살아남으려 하고 있다. 최저낙찰제 아래서 건설노동자들의 적정임금이 보호되는 제도가 마련되는 것도 임금체불을 근절하는 방안중 하나로 건설노조는 내놓고 있다.

 

 2011년 정기국회에서 강기갑 의원이 ‘체불직불과 건설기계 유보임금 근절’을 주내용으로 하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을 발의 한 상태다. 하지만, 이법이 통과될 지도 미지수이다. 설 명절과 추석 명절 두 차례에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의 정부 대책이 계속되고 언론의 반짝 관심 때뿐이다.

 

건설노동자들은 다른 산업과 달리 사업장이 고정돼 있지 않아 수시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며 늘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당장 카드 값을 메우기 위해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사채를 써야하는 상황이 반복돼 건설노동자들 가운데는 신용불량자와 가정이 파괴된 노동자들이 많은 것도 임금체불이 주된 이유이다. 건설노조가 해마다 체불임금근절을 내걸고 총파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전사회적인 관심과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건설현장에서 임금체불만큼은 추방하는 행동을 함께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참세상 - 이영철 건설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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