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댐 짓기 ‘혈안’ 국토부, 흐느끼는 지리산 용유담

최화연(지리산생명연대 사무처장)( 1) 2013.05.28 11:12

지리산반달가슴곰의 생태이동통로이자 수달이 뛰어노는 곳, 엄천강. 이 강의 상류에 자리한 천혜의 비경이자 아홉 마리의 용이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용유담(龍遊潭)’이 지리산댐 건설 계획으로 수몰위기에 처해있다.

 

▲억겁의 세월동안 선녀의 옷자락이 이 바위들에 몇 번이나 스쳤을까. ‘포트홀’이라는 특이한 지형과 아름다운 경관, 마적도사 전설, 김종직 선생의 기우제 등 생태 ‧ 역사 ‧ 문화적 가치를 가진 지리산 용유담을 이호신 화백이 그렸다.ⓒ이호신

 

용유담은 지리산 마지막 원시림인 칠선계곡과 한신계곡, 백무동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물이 모여 흐르는 강과 바위가 어우러져 신선이 노니는 별천지와 같은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용유담에 살던 마적도사가 아홉 마리의 용이 싸우는 소리와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 자연에 도취되어 장기만 두느라 생필품을 싣고 온 나귀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해 나귀가 그 자리에서 죽어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고 있기도 하다.

 

하나의 거대한 바위로 이어져 있는 기기묘묘한 기암괴석들은 시간의 흔적이다. 수많은 세월동안 휘돌아 흐르는 강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다. 용유담에는 예로부터 시인 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남명 조식, 일두 정여창 선생 등이 이곳을 찾았다는 기록이 넓직한 바위에 새겨져 있고 오직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의지해 농사를 지었던 조선시대, 함양군수를 지냈던 김종직 선생이 하늘에 비를 내려줄 것을 기원하는 기우제를 지냈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민초들의 농사를 걱정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김종직 선생의 당시의 시조는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시인과 묵객이 사랑했던, 전설의 비경

 

용유담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에서 휴천면으로 이어지는 곳에 있는데 말이 달려오는 것처럼 물이 기세좋게 흐른다 해서 마천(馬川)이라 이름 붙여졌고 이 물들이 우레같은 소리를 내며 용유담의 바위들을 힘차게 휘돌아 흐르면서 순해져 휴천(休川), 즉 물이 쉬어가는 곳이 된다. 이 물들은 산청의 경호강으로, 진주의 남강으로, 경남의 젖줄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용유담은 ‘국가명승’으로 지정예고(2011. 12.)되었다가 1년 5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정식 지정 절차를 밟지못하고 있다. 수자원공사와 함양군이 ‘홍수조절용 지리산댐 건설 예정지’라는 이유로 용유담의 명승 지정 심의를 보류할 것을 요구(2012. 1.)했기 때문이다.

 

이런 요구로 인해 문화재청의 명승 지정은 그 해 2월부터 국민과의 약속을 계속해서 어겨가며 심의보류를 최근까지 수차례 반복했고, 국토부는 용유담 대안조사 용역(남강유역 신규 수자원시설 대안조사)을 핑계로 10개월 이상을 끌어왔다. 지난 5월 22일 문화재청 천연기념물 분과 정기 회의에서 국토부 대안조사 보고 및 용유담 명승문제가 논의되었다고 한다. 국토부가 이 날 보고한 내용의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파악은 어렵지만 국토부가 내놓은 ‘대안’은 어떻게 해서라도 ‘지리산댐’을 건설하겠다는 안이다.

 

문화재청은 작년 6월 문화재위원회의에서 ‘문화재에 악영향을 미치는 위해행위가 있을 때에는 용유담의 명승 지정을 즉시 추진한다.’ 라고 분명히 공표한 바 있기 때문에 국토부의 대안 아닌 대안을 용인해줘서는 안될 것이고 대안의 불합리성을 지적, 거부하고 문화재청의 소신으로 용유담 명승 지정 절차를 즉각 추진해야할 것이다.

 

지리산댐 건설 위해 명승 지정 1년 반째 ‘제자리’

 

▲지난 2011년 명승 지정 예고된 용유담ⓒ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이 더 이상 용유담의 명승 지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 독립성과 문화재 보존의지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에서 4대강 사업으로 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어야만했던 환경부도 지난해 말부터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환경부가 국토해양부의 댐건설장기계획(2012~2021)에 대해 ‘전략환경평가서’를 낸 내용을 보면 지리산댐 건설문제에 대해 ‘신규 댐 건설 대신에 대안적 방법을 먼저 검토하고, 용유담은 보존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제시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환경영향평가법을 위반하고 불법 및 독단적으로 댐장기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지리산댐 계획은 국가 부처 내에서도 이렇듯 이견이 있는 댐건설계획이고 원래 계획했던 ‘식수용’ 댐이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자 급하게 ‘홍수예방용 치수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변경해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지난 4월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던 ‘국가 수자원 정책방향과 댐 건설’ 토론회에서 지역주민의 찬반의견을 듣는 순서가 있었다. 지리산댐 예정지에 산다는 한 주민은 자신의 친족이 홍수 때문에 죽었다면서 큰 목소리로 울분을 토하며 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실은 다르다. ‘함양지역 홍수 피해로 18명이 죽었다’는 수공의 주장은 왜곡, 과장된 것이다. 함양군의 정보공개 자료(2012)에 따르면 2002년 태풍 루사 당시에 산사태로 매몰되서 8명이 사망했으며 하천급류에 실족한 사람은 1명이었다. 인명피해는 댐건설예정지의 상류지역인 마천면 가흥리 등의 산간지역(산사태)과 댐예정지와 동떨어진 함양 서하면에서 일어났으며 2003년부터 2012년까지는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없었다. 댐이 필요하다고 토론회에서 주장한 주민은 함양군 혹은 수공이 섭외한 인물로 한 피해사례를 홍수피해로 과장한 것으로 보인다. 함양군과 수공, 국토부는 허위사실을 날조하고 유포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왜곡과 허위사실 유포가 문화재청에도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식수용 댐이라더니 이제는 홍수예방용 댐이라고?

 

부채가 8조원에 달하는 수자원공사가 살아남으려면 전국 곳곳에 댐을 지어야 한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댐 밀집도가 가장 높다고 하는데도 댐을 지어야 하는 국토부와 수자원공사는 목숨 걸고 댐을 추진하고 있다. 현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묻지 않고, 밀실에서 짬짜미로 댐계획을 구상해 은밀히 추진중인 것이다.

 

지난해 초 용유담 명승 문제를 계기로 건물 50층 높이의 댐, 1억 7천만톤의 저수용량을 가진 지리산댐을 계획중이란 것이 온국민에게 들통난 국토부와 수자원공사는 어떻게든 댐계획을 살려보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용유담 대안조사 예산 2억6천만원이 국회에서 전액 삭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용역을 선집행한 것은 예산의 출처가 어딘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국회 예산이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물 마피아’들의 지방 시 ‧ 군수등과의 권력유착과 로비, 뒷거래로 얼룩진 ‘묻지도 따지지도 마!’ 식의 댐건설 추진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물은 흘러야 한다. ‘홍수조절용댐’이라는 포장으로 추진하고 있는 인위적인 지리산댐 건설로 용유담의 물길을 막는 것보다 낙동강의 물을 근본적으로 살리는 길이 함께 사는 길이다. 지리산 용유담을 물속에 수장시키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은 댐 건설비용 1조원으로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천혜의 비경 용유담을 명승으로 지정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보존하는 일이다. 존재 자체로 빛나는 용유담을 물속에 영원히 잠기게 하는 어리석은 일은 일어나서는 안된다.

 

지리산 용유담이 수천년 세월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면 이곳의 주민들의 삶 속에도 용유담이 있었다. 소풍도 갔고, 용유담에서 풋풋한 데이트도 했고 물고기도 잡았다. 주민들이 수 대에 이어 살아온 역사도 용유담의 기억 중 일부이다. 주민들은 외친다. ‘여기서 그냥 이대로 살게 해주시오’ 라고.

 

※<민중의 소리>에도 기고된 기사입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