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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은 누구인가?

이창석(민주노총전북본부 사무처장)( 1) 2013.05.29 12:20

미국 방문 중 박근혜 대통령 방미단의 불미스러운 일은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성폭력과 진상 떨기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얘기로 밀어가고 있다. 그 와중에 노동자들의 통상임금에 관련된 발언도 용감하게(?) 했다. 대법원 판결을 무시한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보란 듯이 산업부장관이 통상임금에서 상여금을 빼야 한다고 말하고 나섰다. 즉 정부가 법원의 판결과 상관없이 통상임금 적용 범위를 축소하여 입법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통상임금 산정방식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해 왔다.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 고용노동부의 행정 해석을 바꾸라고 요구해 온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고용노동부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행정 해석을 바꾸지 않고 있다. 그래서 산업 현장은 통상임금 적용에 대한 논란이 많아지고, 소송으로 비화되고 있다. 많은 노동자들은 이런 소송으로 물적,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

 

GM회장의 말 한마디가 우리 대법원 판결보다 중요한가?


재밌는 것은 결국 소송으로 간 통상임금 문제가 미국 방문 이후 확실하게 기업 편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듯하다. GM회장이 한국에 80억 달러를 투자할 테니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그랬더니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은 이 문제를 해결할 테니 투자하라고 했다는 기사다. 노동자들이 말할 때는 귀띔으로도 듣지 않던 박 대통령이 외국기업 사장 한마디에 모든 것을 뒤집으려고 한 것이다. 벌써 노동부는 이를 입법화하기 위해 노사정협의를 시작한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있는 입법을 할 것이 뻔하다.

 

항상 정부는 이런 식이다.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 편에 서서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방식이다. 또한 정부는 늘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걸 넘어, 기업과 정부의 유리한 판례는 적극적으로 행정 해석으로 사용하고, 기업과 정부의 불리한 판례는 철저히 행정 해석으로 버티기로 일관했다. 이런 행태로 인해 노동자들은 노동부를 믿지 않고 있다.

 

그런데 방미 중 아예 외국 기업 사장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결단을 하는 것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은 대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기간 동안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몰랐다. 그런데 과연 대통령이 통상임금이 무엇인지 알고 대답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GM은 자신의 이익이 창출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본을 철수할 수 있는 그런 기업이다. 금융권에서 투기 자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도 투기 자본이 난무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통상임금 범위를 명확히 한 대법원 판결

 

또한 통상임금이 줄소송이 걸리는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통상임금은 노동자들의 시급(1시간당 임금)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각종 수당에도 영향을 준다. 즉 통상임금이 우리 노동자들의 시급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사실이다. 실제 한국 노동자들의 임금 구조가 매우 복잡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소위 기본급-기본급과 통상임금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기본급을 포함하여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일부 수당을 포함하여 통상임금이라고 하는 데, 설명하기 쉽게 기본급 예를 들어 본다-을 인상하면 각종 수당이 많아지니까 이를 억제하는 방식을 취했고, 새로운 수당을 신설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는 것이다.

 

현재 대법원에서는 통상임금에 대해 “정기적, 일률적, 고정적인 경우”에 대해서는 모든 수당과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지난 2010년 버스 노동자 투쟁의 촉발이 되었던 통상임금 소송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통상임금 범위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고 있는 행정부의 태도는 그야말로 기업을 위한 행정부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GM사장 말 한마디로 자국민이 얼마나 많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고, 외국 자본을 위한 대통령의 발언이 얼마나 경솔한가를 볼 수 있는 지점이다.

 

대한민국의 3권 분립도 없다


현재 정부가 진행하려고 하는 통상임금 범위는 이미 대법원에서 확정된 결과이다. 행정부는 이런 대법의 판결을 존중하여 법을 재정비해야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행정부는 아예 대법 판결을 무시하고, 통상임금 범위에서 상여금을 빼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왜곡된 임금 체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고, 여전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자국 노동자들의 애환은 왜 모르는가? 즉 장시간 노동은 곧바로 통상임금과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장시간 노동을 하지 않을 경우 월 임금이 너무 낮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잔업, 특근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당시 15년차가 100만원 조금 넘는 임금을 받았다- 이렇게 됨으로써 많은 노동자들은 과로로 죽거나, 과로로 인한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OECD국가 중 가장 많이 일하는 나라이면서도 노동생산성을 28위인 나라가 다시 통상임금 범위를 개악하려고 한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얼마나 용납할 수 있겠는가?

 

먼저 대법 판결부터 존중하라!

 

더불어 대법 판결을 난 이후로도 노동부는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현재의 통상임금 산정표만을 고집해 놓고, 이제 와서 범위를 줄이겠다는 태도가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그 동안 통상임금은 항상 사측의 편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이 통상임금의 의미를 정확하게 판결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기업의 부담이 늘어난다고 난리가 난 것이다. 그러나 그 동안 통상임금을 낮게 주고, 장시간 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기업이다. 더 나아가서는 당장 지금 기업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라면 그 동안 기업은 통상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음으로써 얻었던 많은 이익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장시간 노동으로 지친 노동자들은 또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 법원의 판결을 통해 정부는 통상임금 범위에서 상여금을 빼야 하는 등의 얘기를 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그 다음에 해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아예 노동자들에게 비수를 꽂는 일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동자 대통령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라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막 가자는 얘기다. 산업부 장관의 오버도 볼 만하다.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서도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시한 경제민주화가 가능한가를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라도 통상임금 산정방식을 대법원의 판결대로 수정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그리고 그 동안 통상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던 관행을 바로잡고,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도 끝을 내야 한다. 그래야 일자리도 늘어나고, 노동자의 삶, 즉 국민의 삶의 질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통상임금이란?

법 시행령 제6조의 규정에 의거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소정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하여 지급하기로 정하여진 시간급금액·일급금액·주급금액·월급금액 또는 도급금액을 말한다.

 

※이 기사는 열린전북 6월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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