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칼럼]노동자 정치 세력화와 통합진보당

이창석(민주노총 전북본부 사무처장)( 1) 2012.06.17 16:26

민중 대통령! 우리의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 노동자 정치 세력화


87년 6월 항쟁이 끝나고, 7~9 노동자대투쟁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노동자들은 “노동운동 탄압 분쇄, 민주노조 건설, 군부독재 타도”라는 슬로건을 걸고 말 그대로 목숨 건 투쟁을 시작했다. 민주노조를 건설해서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다. 민주노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많은 노동열사들이 배출되었고, 이런 고단한 투쟁은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선거에서 “백기완 민중 대통령”이 출마한다. 민중 대통령! 우리의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기완 당시 후보는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대중 전대통령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고 중도 사퇴한다. 이제부터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시작된다.

 

제도 정치를 통해 실질적인 평등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대통령 후보를 내야 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 세력화는 아니지만 제도 정치권과의 전면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제도 선거를 통해 우리의 정치적 입장을 개진해서 실질적인 평등 세상을 만들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이다. 이후 많은 투쟁이 전개되는 동안 소위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소위 지금 새누리당의 보수를 대변하고 있는 이재오, 김문수씨가 그랬듯이 “민중의 당”이 만들어지고 해산되는 것을 거듭했다.

 

민주노동당의 성장과 노동자 현장 투쟁


민주노동당!! 이 당의 성과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96-97년 노동악법 개악저지 민주노총 총파업의 성과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끊임없이 성장시키면서 국회의 개혁과 변화를 만드는 것을 넘어 보다 구체적인 사회 변화를 만들기 위해 투쟁의 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 민주노동당은 소위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다. 이것이 바로 문제였다. 모두가 바라 맞이했던 국회의원을 배출했는데 우리 현장은 급격하게 투쟁력을 하락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도 모든 투쟁은 국회를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그 어느 때 보다 광폭한 노동탄압과 열사들이 배출되기 시작되었다. 그 정권이 바로 노무현정권이다. 또한 노동악법도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소위 민주노동당 10명의 국회의원이 있어도 국회 다수는 보수와 자본의 편에 선 법이 통과된 것이다. 노무현 정권의 대한 노동자들의 피눈물 나는 사연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장 노동자들이 국회의원에게 매달릴 때 민주노동당은 이미 내부에서부터 속절없는 패권과 당권 경쟁에 한창이었다. 이제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곳곳에서 당권 경쟁에서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투쟁은 민주노총이, 정치는 민주노동당이”라고 하는 발언이 서슴없이 발언되기 시작했다. 결국 노동자 정치 세력화는 곧바로 정당 및 의회로 경도되었다. 모든 투쟁이 의회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시작되었다. 이런 노동자 정치 세력화는 노동자들의 현장 투쟁이 재단되고, 노동탄압에도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노동조합이 속출하게 되었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의미 퇴색이 시작되다


노동자 정치 세력화의 의미는 제도 정치 및 현장 투쟁을 변증법적으로 결합시키자는 것이다. 즉 제도 정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장 투쟁을 기반으로 하여 제도화 하고, 현장 투쟁을 지지·엄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회의원 몇 명 만들자고 모든 노동조합이 당권에 매달리거나 선거에 매달리는 웃지 못 할 일들이 생겨나게 된다.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고 나면, 지자체 선거, 지자체 선거가 끝나고 나면 또 다시 보궐 선거 등등, 오직 선거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요즘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 이런 일련의 문제점들이 다 드러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의 정신을 이어가야 했다. 많은 노동자들은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반대해 왔다. 그들은 역시 신자유주의 세력이며, 노동탄압에 최선봉에 섰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이 출범하면서 “전태일과 노무현의 만남”이라고 외쳤다. 우리는 이미 노무현 정권과 만나 보았다. 그들은 처참하게 노동자들을 무시했고, 한미FTA을 통해 농민을 짓밟았다. 그리고 부동산 투기를 조장함으로써 전국이 아파트 장사에 열을 올렸고,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전태일이 이런 세상을 원했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동자 정치 세력화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 버렸다. 또한 소위 명망가라고 불리는 출세주의자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인해 현장은 사분오열되었다.

 

통합진보당 태생부터 문제였다


바로 통합진보당의 태생이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 비당권파의 경쟁과 다툼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었다.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의 죽음의 대열 앞에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현장 투쟁 자체를 경시하며, 애써 눈 감아 온 것이다. 민주당 국회의원보다 못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은 투쟁 현장에 나타날 때마다 의전을 해야 했다. 이 얼마나 기막힌 현실인가? 이런 당 운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야권연대가 무너질 수 있으니 민주당을 상대로 투쟁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과연 이런 태도가 올바른 것인가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19대 총선은 결국 야권연대라는 어이없는 전술로 인해 현장 투쟁의 패배주의만 확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야권연대가 중요한 만큼 노동자들의 투쟁도 매우 중요한데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만난 통합진보당이었다. 그런데 대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고, 정체성 없는 당권 경쟁으로 인해 현장 조합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제 소위 진보 세력들은 주사파이거나 경기 동부 연합파로 전락하여 사람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한 현실을 말해 주고 있다.

 

노동자들이 정치 주체로 나서야 한다

현장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나서서 정치를 해야 한다. 거리에서, 국회에서, 지자체에서 말이다. 국민 절대 다수인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정치 말이다. 또한 통합진보당은 이런 어이없는 행보를 중단하고, 운동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을 먹어야 한다. 단순히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당 대표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정파를 잘 키워 권력을 향하는 것이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이 글은 열린전북 6월호에 실린 칼럼으로 글쓴이의 동의를 얻어 올립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