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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친구와 치고 박고 오면 대학 못간다?

오동선 전교조 전북지부 정책실장( 1) 2012.09.20 00:45

교과부의 학교폭력 가해학생 생활기록부 입력과 관련하여 학계, 교육계, 법조계가 논란을 벌이고 있다.

 

사실 교과부의 방침은 법의 시각에서 볼 때는 위법한 명령이고, 교육의 시각에서 볼 때는 교육의 보편타당성과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지침이기에 논란이랄 것도 없다.

 

교과부 방침(사실 법도 아니고 훈령에 의한 지침일 뿐이다.)의 요지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고 그 사실을 학생생활기록부에 입력하여 5년간 보관하고 대학입시 및 취업에 불이익을 주는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교과부의 지침에 대해 일부 언론과 보수적 시각에서는 “왜 학교폭력문제에서 가해자의 인권만 보호하려 하는가? 강력한 처벌은 학교폭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런가?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지 않은가?

 

현재 우리의 가정에서는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면 벌점을 주거나 때리거나 장기적으로 괴롭히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양육하지 않으면서, 학교에서는 내 아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내 아이를 제외한 모두를 적대시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단순 사실 몇 가지만 톱아보자

 

첫째.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지 않겠다는 것이 가해자의 인권만 보장하고자 하는 것인가?

 

결론부터 말해보자. 오해하지 말고 자세히 살펴보자. 교육은 보편적이고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 소수 가해학생을 보호하자는 게 아니라 다수의 피해 학생을 양산하지 말자는 것이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왕따, 학생 자살, 심각한 학교폭력은 인간의 영혼에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상처를 주는 것이며 이는 묵과할 수 없는 범죄행위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과부의 지침은 아주 작고 단순한 다툼이나 사소한 실수마저도 용납하지 않고 기록하여 처벌하겠다는 방침이다. 즉 학교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교육적 지도의 단계를 과감히 생략하고 사건화하여 기록 한 뒤 처벌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교과부 지침에 따라 기록한 결과 서울에서만 초등학생의 학생부에  표시된 게 102명이다. 그 징계의 대부분도 서면사과 수준이다. 그런데 이 내용은 향후 5년간 지속적으로 표시된다. 소위 말하는 '빨간줄'이다. 이건 학생에게 낙인 찍어버리는 것에 다름 아니기에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가해학생만 옹호한다는 식으로 본말을 전도하는가?

 

얼마 전 서울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동네 놀이터에 낙서한 것에 대해 학생부에 학교폭력으로 기록하였다. 또한 대전의 모 초등학교는 저학년 학생들끼리 벌어진 사소한 다툼에도 예외 없이 학생부에 기록하였다. 이게 상식적인가? 이게 교육적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런 방식이 학교폭력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학생을 지도하다보면 사소한 다툼은 늘상 일어나게 마련이고, 그러한 다툼을 스스로 풀어가고 합리적으로 조율하는 것 역시 성장과 교육의 한 과정이다. 또한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다툼과 혼란에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모든 다툼행위마저 학교폭력으로 규정하고 학생부에 기록하여 지속적 불이익을 준다면, 공교육 12년간 성장하면서 대다수의 학생이 이 교과부의 지침을 빗겨가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형사범죄 수준의 학교폭력에는 엄정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성장의 과정으로 봐줘야 하는 것은 그 수준에 맞게 교육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당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친구와 사소한 시비로 다투고 온 뒤 주먹질 몇 번 오간 것과 관련하여 학생부에 기재가 되어 인생에 불이익을 받는다면 합리적인 교육행정이라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 실례가 바로 교과부 지침이 시행되고 난 후 서울과 경기에서만 작년에는 한건도 없던 행정심판이 올해 들어 현재 39건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학교가 또 다른 싸움판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료사진>

 

둘째. 강력한 처벌은 학교폭력을 감소시키는가?

 

교육심리학과 범죄심리학에서는 일관된 연구 결과를 통해 이 분풀이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강력한 처벌이 범죄의지를 감소시키지 못한다. 오히려 교화가 더 범죄 예방률을 높인다“라고.

 

사건화되는 학교폭력에 대해 보복적 심리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심정적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전인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교육문제라면 좀 더 냉철히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근본적으로 폭력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없듯이 폭력 없는 학교는 상상할 수 없다. 다만 어떻게 하면 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피해자를 원래의 상태로 돌리기 위한 치유나 돌봄을 할까? 모든 폭력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으로 학교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것이 좀 더 교육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학교폭력은 왜 생기는가?

 

그렇다면 학교폭력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학교폭력문제를 줄일 수 있는가의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돌아봐야 한다. 원인에 대한 진단이 다르다면 그에 따라 추구하는 정책 또한 달라 질 테니 말이다.

 

우리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은 경쟁교육, 개별화된 학교문화,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기인하고 거기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누구나 알고 있어 상식적이지만 우리 모두가 이 문제의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으려 하고 있지 않은가 되짚어야 한다.

 

마치 동물 사육하듯 한 교실에 수 십 명 씩 몰아넣고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할 것을 강요받는 아이들에게 ‘착해지라고, 차분해지라고’말하는 것이 가능할까? 에너지가 넘치고 욕구가 분출하는 시기에 오로지 대학만이 지상명제라며 모든 활동을 차단시키고 있으면서, 학생 간 폭력이 발생하지 않을 것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OECD국가 중 학생자살률이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학생 자살의 주요 원인이 ‘성적비관’과 ‘입시스트레스’ 때문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폭력” 문제에만 천착하여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 현재 교과부의 대책이다. 병의 원인에 맞는 적절한 처방이 필요하듯 최소한 입시 스트레스와 과도한 학력지상주의 문제만 해결해도 학교폭력은 상당부분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학교 폭력 해결. 방법은 있는가?

과연 명징하고 깔끔하게 처리할 방법은 있는가?

 

교육문제에서 정답은 없다. 다만 정답을 찾아가는 합리적인 과정이 있을 뿐이다. 교육은 실험이 아닌 까닭에 단기적이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먼저 학교 내의 폭력적 학교문화를 되짚어 봐야 한다.

 

교과부의 폭력적 정책집행방식은 자연스레 교육행정 자체를 폭력적으로 운영하게 되며, 학교를 강압적이고 성과 중심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학교장의 제왕적 권한행사가 가능한 학교시스템에서는 학교장과 교사가 위계적 관계를 가지게 되며 교사를 복종만 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교사와 학생의 수직적 관계는 상대적 강자인 교사에게 상대적 약자인 학생이 무방비로 폭력을 당하는 구조이고, 교사와 학부모와의 불통의 관계는 학교폭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처벌중심 갈등중심으로만 전환하게 하고 있다.

 

이렇듯 학교를 둘러싼 폭력적 학교문화는 자연스레 학교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학생들 간에  힘의 우위와 약육강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교구조는 이렇게 폭력적인데 단순히 학생 간 폭력의 숫자만 줄이고자 한다면 그 어떤 대증요법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논란의 초점은 “학교폭력 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느냐 마느냐” 에서 “학교폭력의 원인이 무엇이고 교육적인 해결방법이 무엇인지”로 옮아가야 한다.

 

학교폭력문제는 과거에도 있어왔고, 현재도 존재하며 미래에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대증적 처방은 병을 숨길 수는 있어도 치료할 수는 없다.

 

이제 학교는 장기적으로는 학교문화개선이라는 큰 줄기 속에서 단기적으로는 학교가 합리적 배움과  돌봄이 그 중심에 자리 잡는 기능을 하도록 역할 지워져야 한다.

 

그 어떤 폭력도 거부하고 나의 인권이 보장받기 위해서는 타인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교육과정과 교육행정이 운영되어야 한다. 그것이 책임감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키워내는 교육의 역할인 것이다.

 

또한 우리가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대책을 수립할 때 언제 한번이라도 학생중심에서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되돌아봐야한다. 학생들이 왜 아파하고, 어디서 신음하고, 어떻게 죽어 가는지를 생각한다면 학생 처벌 중심의 대책을 읊조리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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