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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올해도 학생인권조례는 제정되지 못하나

송기춘(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 1) 2012.11.15 13:05

지난 10월 전라북도 의회 교육위원회는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기로 의결하였다. 작년에 같은 위원회는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제출한 학생인권조례(안)이 학교현장의 혼란을 일으키고 교권보호에 소홀하다는 점 등을 들어 부결한 바 있다. 이 위원회는 올해 다시 작년에 했던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제시하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이런 내용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학생인권조례를 시행하기에 아직 시기상조다. 둘째, 서울시에서 제정․시행하는 같은 내용의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대법원에 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므로 이 소송의 결과를 보고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을 논의하자. 셋째,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의 상당 부분이 초․중등교육법 및 그 시행령과 저촉되어 효력을 갖지 않는다.

 

▲지난 10월 12일 전북도의회 교육상임위는 학생인권조례안 심사를 마치고 의안 상정을 하지 않았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시행이 시기상조인가?


필자가 학생인권의 보장이 시기상조라는 말은 처음 들은 것은 30여년 전이다. 학생인권보장에 관한 규범은 이미 경기도, 광주시, 전라남도와 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고, 헌법에서도 보장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학생인지 아닌지에 따라 부인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도 가입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은 국경을 넘어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이 협약에 의하여 설립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청소년들의 척박한 인권현실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이를 개선할 것을 지난 10년 동안 모두 4차례 권고한 바 있다. 한편 지난 10월 1일에서 3일까지 스위스에서 개최된 UN사회포럼에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운동에 함께한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이 초청되어 학생인권조례 제정과 청소년인권 운동의 사례를 발표했는데, 다수의 참석자들은 한국 청소년 인권운동에 대한 관심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포럼을 주최한 UN인권이사회도 국제인권협약의 실현을 위한 사례로서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아직도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이 시기상조라는 말을 하는 것은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한 것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대법원에 무효소송을 제기하였으므로 그 결과를 기다려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제시된다. 나중에 무효가 될 규범을 서둘러 제정하는 것은 신중하게 하는 것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제정․시행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완전한 효력을 가지는 지방자치단체의 규범이며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기대하고 선전하는 것처럼 헌법과 법률에 위반되어 효력을 상실할 여지도 없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경기도의 조례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서울시의 조례만 무효라고 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설명한 방법이 없다.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무효소송은 아직도 심리중이고 인권조례는 이미 시행되고 있을 뿐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내용을 조례로 만들었는데, 이것이 헌법과 법령에 위반될 수 있는가? 전라북도 의회가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해 서울시 조례를 핑계로 하는 것은 논리적인 근거가 있어서기보다는 제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학생인권조례의 상당 부분이 상위법에 저촉되어 무효인가?


교육과학기술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시행하고 있는 또는 제정을 준비중인 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하여 초․중등교육법과 그 시행령을 개정하였다.

 

초․중등교육법 가운데 개정(2012. 3. 21.)된 부분은 교육감의 학교 학칙개정인가권을 폐지한 것이고, 같은 법 시행령 개정부분 가운데 중요한 것은 "1) 학교의 장이 학생 지도를 할 때에는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육·훈계 등의 방법으로 하되,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와  "2) 학칙으로 정할 수 있는 범위를 명시적으로 확대하고 특히 학생의 포상·징계, 용모·전자기기 사용 등 학교생활에 관한 사항, 학생자치활동, 학칙개정절차 등의 사항을 별도의 학칙인 학교생활규칙으로 정할 수 있다."이다.

 

1)은 도구, 신체에 의한 체벌을 금지하는 방식의 규정을 통하여 여기에 명시되지 않은 이른바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것을 노리고 있다. 2)는 학생인권조례에서 학생의 개성신장의 자유 보장과 관련하여 복장, 두발, 전자기기의 소지에 관한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무력화하고자 할 의도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형식적으로 조례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될 수 있으니 상위법인 대통령령에 위반되는 조례는 무효라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과학기술부의 의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적 인권의 실현을 오히려 저해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불순하며 그 의도대로 학생인권조례가 효력을 상실하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우선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서 간접체벌을 허용하는 듯한 규정을 두었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그렇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도구 또는 신체를 이용한 체벌보다 더 부정적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간접체벌이라고 한다면 간접체벌은 더 금지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매로 때리지 않더라도 운동장을 돌리는 벌은 육체적 고통과 함께 여러 사람 앞에서 명예를 해치는 것이다. 학생의 용모 등에 대해 학교규칙으로 정하도록 한 시행령 규정은 학교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하여 이에 대해 규정하라는 것뿐 학생인권조례의 내용과 다른 것을 당연히 규정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교육과학기술부가 조례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제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법령을 조례와 저촉되는 내용으로 개정하면 조례가 효력을 상실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나 이러한 입장은 옳지 않다. 지방자치는 교육과학기술부가 가지는 민주적 정당성보다 강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고 법령이 미비된 상황에서 이미 기본권 보장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였으면 국가에서 이를 무효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법령을 개정하여 조례를 무효로 하려는 것은 국가가 지는 국민의 기본권보장의무에 반한다.

 

전국적 기준을 형성하는 법률과 명령이 있다 해도 지방자치단체에서 기본적 인권을 강화하는 조례의 제정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조례에 의하여 보장되는 기본권은 이보다 보장의 정도가 약한 법령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력을 유지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의 내용이 헌법에 더 부합하는 내용일 때 조례의 내용과 충돌하는 대통령령을 만들었다면 조례가 무효가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령이 헌법에 위반되어 효력을 잃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효력을 가지는 자치단체의 규범이고 자치단체 안의 학교의 장은 이 규범도 준수하여 학칙을 제정할 의무를 진다. 교육감의 학칙개정 인가권은 폐지되었다 해도 교육감이 학교에 대해 가지는 지도권은 여전히 남아 있어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학칙 개정에 대해 지도할 수 있기도 하다. 위 법률 시행령은학칙으로 정할 사항을 정하고 있는 뿐이지 어떠한 내용일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제를 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10월 12일, 시민들이 전북도의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학생의 인권 보장은 교권을 침해하는가?


도 의회 교육위원회가 제시했던 터무니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위협받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학생인권조례와 함께 의회에 제출된 교사의 권리와 권한에 관한 조례(안)을 읽어보지 아니 하였다는 방증이다. 학생인권조례의 제정 과정에서는 교사의 교육권 또는 학생의 배울 권리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뤄졌으며 그 결실이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의 동시 성안과 제출이었다. 인권은 학생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타인에 대한 존중을 포함하는 것이어서 학교의 교육을 해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교사의 가르칠 권리나 학생들이 함께 공부하는 데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명백하다. 학생에게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교사의 가르칠 권리를 해칠 것이라는 두려움은 인권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단순한 걱정에 불과하다.

 

학생은 그대로 배운다


교육의 내용은 인간의 삶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한다. 어떠한 교육을 받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것은 믿는다면 교육에 관하여 진지한 성찰과 접근이 필요하다. 인권을 존중받고 자란 사람이 자신을 존중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의 인권도 존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학생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한다.

 

자율성이 존중되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익숙해지면 독립된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훨씬 유용한 교육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교육이라야 교육기본법에서 규정하는 바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권보장은 우리가 실현해야 할 헌법적 의무이면서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교육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인권침해와 관련하여 인권조례의 제정은 그 보장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그대로 배운다

 

꾸지람 속에 자란 아이 책망하는 법을 배우고,
미움 받고 자란 아이 싸움질을 배웁니다.
공포 속에 자란 아이 불안함을 배우고,
연민 속에 자란 아이 자기 자신을 불쌍히 여기게 되며,
조롱 받고 자란 아이 소심함을 배웁니다.


그러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관용 속에 자란 아이 참을성을 배우고,
격려 속에 자란 아이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칭찬받고 자란 아이 감사할 줄 알게 되며,
공정함을 보고 자란 아이 정의로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안전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 신뢰를 갖게 되고,
인정을 받으며 자란 아이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됩니다.
포용과 우정 속에 자란 아이 이 세상 어디나 사랑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도로시 로오 놀트(Dorothy Law Nolte), 아이들은 그대로 배운다)

 

편집자 주 : 이 글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소식지 <평화와 인권> 10월호에 실렸습니다. 송기춘 님은 전북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이며,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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