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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희망버스는 희망텐트로 이어진다

용석록(울산노동뉴스)( icomn@icomn.net) 2012.01.12 19:45

굴뚝에 포크레인에 송전탑에 크레인에 올라가서 싸워도 겨우 자본이 눈 한번 깜짝하거나 주요 일간지에 나온다. 그렇게 수많은 노동자가 고공에 올라갔었고 천막을 치고 싸우는 건 오래된 일이었으나 요즘은 더욱 길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이 많다.

쌍용차 공장 앞에 '희망텐트'를 치고 1차 쌍용차 포위의 날에 참석한 학생들 [출처: 울산노동뉴스]

길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인 학습지교사의 노동권을 인정하라는 재능교육이 그렇고, 전북고속이 그렇고, 정리해고 철회에 맞서 싸우는 부산의 풍산마이크로텍이 그렇고 비정규직 투쟁이 그렇고 한진중공업이 그랬고 쌍용자동차가 그렇다.

한진중공업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사람들은 왜 그렇게 그곳으로 달려갔을까.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2010년 1월 6일 크레인에 올라갔으나 처음부터 그곳을 지속적으로 갔던 이의 눈으로 볼 때 한진중공업도 여느 사업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에서 집회 박으면 사람이 모였다가 집회 끝나면 크레인은 외로웠다.

1월 8일 크레인에 처음 갈 때 공장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내심 걱정하며 정문에 섰으나 쉽게 들어갔다. 그때 몇 번의 경험으로 한진 자본은 외부인(?)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2월 어느날은 크레인 아래 조합원이 50명도 모이지 않은 가운데 저녁집회가 열렸다. 집행부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고, 정리해고 대상자만 모여도 그럴 수 없다는 생각에 조합원들의 무관심 내지는 이기심 혹은 자포자기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혼자 화가 나서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 내려왔으면 좋겠다는 일기를 쓰며 사람들을 미워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던 정문이 막힌 건 1차 희망버스가 가기로 예정돼 있던 6월부터였다. 회사측이 용역경비를 크레인 가는 길목에 세우는 날부터 한진 자본은 외부인(?)을 막기 시작했다.

1차 희망버스 이후 6.27 행정대집행으로 공장에서 밀려난 한진의 노동자들은 그날부터 노숙투쟁을 시작했고 수많은 이들이 그들과 노숙을 같이 했다. 5차 희망버스에 이르기까지 한진의 조남호 회장은 국회 청문회까지 서야 했고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김진숙, 85크레인, 희망버스'는 세상사람들에게 익숙했고 관심사였다.

크레인에 올라가서 5개월은 외롭게, 6개월은 희망버스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11월 김진숙은 크레인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5개월은 무기력하게 그곳 소식을 밖으로 알리는 데, 6개월은 희망버스를 타며 함께하는 투쟁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희망버스가 만든 희망

한 사업장의 노동자를 조직할 수 없는 개인으로서 '희망버스'는 그래서 말 그대로 '희망'이 되었다.

조직노동자가 연대파업을 조직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기는 하다. 만약 그랬더라면 희망버스가 생겼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여전히 노동은 일반사람들에게 머리띠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조직노동자는 '내 것'을 넘어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희망버스에서 누구보다 마음을 무겁게 했던 건 쌍용자동차와 유성기업 노동자들을 만날 때였다. 유성기업은 용역들에게 다쳐 피흘리는 싸움을 하고 있을 때였고,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2009년의 옥쇄파업 이후 많은 동료들이 목숨을 끊어 아픔과 분노가 몸에서 읽혔는데 그들을 만날 때마다 미안했다.

한진 투쟁 사이에도 쌍용차로부터는 열 여덟, 열 아홉... 죽음의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쌍용차가 '희망텐트'를 치지 않았더라도 자연스레 사람들 마음은 이미 쌍용차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았을까.


12월 23~24일 1차 쌍용차 포위의 날(와락 크리스마스) 에 참석한 울산 희망텐트 참가자 [출처: 울산노동뉴스]

한진 투쟁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쌍용차지부는 12월 7일 평택 공장 앞에 희망텐트를 쳤다.

더 이상의 죽음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노동자의 단결과 사회적 연대의 힘으로 쌍용차를 포위.압박해 실질적 공장 복귀의 길을 만들어나가자고 했다.

쌍용차에 가해진 열 아홉 명의 사회적 타살

쌍용자동차는 2009년 2646명의 노동자를 강제 정리해고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77일 동안 공장점거를 통해 투쟁했고 2009년 8월 6일 비정규직 복직 및 무급휴직 후 복직, 징계 철회 및 원직복직 등을 합의했다. 하지만 96명의 구속과 72명의 징계, 44명 징계해고, 240억 손배가압류 구상권이 진행중이다. 그리고 열 아홉 명이 죽었다.

그러나 합의서에서 작성한 1년 후 무급휴직자 현장복귀는 단 한 명도 하지 못했다.

'해고는 살인이다'라고 한다면 열 아홉 명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울산 희망버스 희망텐트로 이어져

희망버스가 3차, 4차, 5차, 6차... 쌍용차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희망텐트로 이어지고 정리해고 문제를 넘어 더 큰 투쟁 '비정규직 철폐'로 나아가게 된다면 과연 '희망버스'는 새로은 투쟁방법, 새로운 희망, 새로운 연대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지 않을까.

울산 희망버스는 12월 23일 1차 쌍용차 포위의 날(와락크리스마스)에 몇 사람이 참여했고, 1월 13일 2차 쌍용차 희망텐트에도 참여한다. 스무번째 죽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마음들을 전한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10일부터 서울 양재동에서 노숙투쟁을 진행하고 있으며 13일 평택으로 내려올 예정이고, 금속노조는 13일 오전 8시에 울산서 출발해 서울 양재동 집회에 참석했다가 평택 '2차 쌍용차 포위의 날'에 합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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