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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희망버스, 군사독재보다 위험한 재벌독재 타도로

박노자 (오슬로대 교원 노동자, 노르웨이)( newscham@newscham.net) 2011.09.20 19:25

5차 희망버스는 10월 8일에 출발한다. 토요일인 그 날에 노르웨이에서 육아노동을 하느라고 국내에 가서 같이 참가할 수 없는 나로서는 그 불가피한 불참이 그저 너무나 미안하고 아쉬울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오늘날 “희망버스” 운동을 24년 전의 독재 타도 운동만큼이나 그 이상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역사적 현장에 있고 싶기 때문이다. 24년 전에 열사들의 자기희생과 수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파시스트적 군사 독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면, 오늘날 “희망버스” 운동은 어쩌면 군사독재보다 더 위험한 재벌독재를 상대로 싸운다. 이 재벌독재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 진정한 민주주의도 대다수의 생계보장도 없을 것이다. 이 재벌독재는 노골적인 파쇼성(性)을 과시한 군사독재에 비해 훨씬 더 은근하고 교묘하고, 겉으로는 매우 “선진적으로”, 깔끔하게 보인다. 그만큼 훨씬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국민총생산에서 소위 “10대 기업”, 즉 주요 재벌 왕국들이 보유하는 자산의 비율은 약 75%에 이른다. 그들이 한국을 소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들이 이 나라를 소유하기에, 자유주의 정부(김대중, 노무현)가 되든 극우보수주의 정부(이명박)가 되든 그들의 몫이 계속 불어날 뿐이다.

대기업 전체로 봐서는 지난 6년 동안 평균 영업이익률이 6,7%에서 7,6%로 늘어나는 등 “장사가 짭잘해진” 셈이다. 위기다, 공황이다라고 하지만, 이는 대기업들의 세계와 무관한 이야기다. “대기업의 꽃”이라고 할 10대 재벌의 계열사들 같으면, 지난 3년 동안 영업이익은 70%나 급증했다. 그 대가를 누가 치르는가? 재벌 이익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국내 전체 노동자의 거의 60%에 가까운 비정규직과 25%나 되는 저임금 근로자층, 국내보다 임금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의 한국 재벌과 그 하청기업들의 수백만 명의 피고용자들에 대한 착취가 그만큼 강화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극소수 약탈자의 전횡을 막을 수 없는 끔찍한 독재사회

극소수의 지속적 번영은, 다수에 대한 약탈로 뒷받침된다. 그 약탈이 가능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무리 24년 전에 군사독재가 물러났다고 해도 재벌 독재자들의 “경영 행위”, 즉 착취와 이윤 수취 행각에 대해서는 노동자들도 시민사회도 그 어떤 발언권도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을 줄여 대신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수법으로 노동을 불안화하고 약탈을 강화해도, 저임금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하청업체에 단가내리기 압력을 가해 쥐꼬리만 한 노동자 봉급을 더 줄게 만들더라도, 필리핀 같이 절망에 빠진 저임금노동자들이 많은 곳에서 몇 년 사이에 수십 명이 사고사를 당한 “죽음의 공장”을 차려 거기에다가 물량을 빼돌리고 국내 노동자들을 불법 해고한다 해도, 그 “경영상의 판단”에는 노동자와 시민사회는 물론 국회마저도 개입하지 못한다. 재벌들이 소유하는 나라의 정치구조상 국회가 그러한 개입을 효과적으로 하려는 의지마저도 물론 사실상 없다. 군사독재는 물러나도, 우리는 극소수 약탈자들의 전횡을 전혀 막을 수 없는 끔찍한 독재사회에서 계속 살고 있다.

이번 “희망버스”운동은 이 기업 독재의 횡포를 막아보려는 의거(義擧)이며, 과거 민주화 운동의 유기적 연장, 즉 기업 독재 타도 운동의 신호탄이다. 지금 이 운동이 통쾌한 승리를 거두어 불법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 복직돼야 대기업의 영업이익률이 늘어나는 만큼 국민총소득에서의 노동자 총임금의 비율(노동소득분배율)이 계속 줄어드는 이 사회의 퇴보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기업 독재를 본격적으로 타도할 수 있는 전망이 열릴 것이다. 이어서 노동자들의 기업 경영 참여권 확보, 비정규직의 양산을 본격적으로 막을 비정규직 고용 사유 제한 관련 법률 통과, 그리고 궁극적으로 주요 기업의 사회화 등을 이루어야 하겠지만, 한진중공업이라는 재벌독재 왕국의 불법 행각과 싸우는 지금의 이 운동은 기업 독재 타도의 중차대한 첫걸음이다.

이 첫걸음을, 아무리 물대포를 동원하고 아무리 무더기 입건, 기소 등 탄압을 자행해도, 재벌의 사병(私兵)으로 전락된 국가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다수를 위한 나라, 공공성이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운동은 역사의 커다란 진보의 흐름을 타게 될 것이고, 전두환의 독재가 물러났듯이 결국 이건희와 조남호의 독재도 붕괴되고 말 것이다.

(이 기사는 참세상에서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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