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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0월 8일, 희망버스가 다시 부산으로 출발한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낳으며 4차례에 걸쳐 이어져왔던 희망버스가 5번째 시동을 건다.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5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희망버스 운동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김진숙 동지의 기나긴 투쟁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냈고,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이후, 희망버스는 더 이상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운동만은 아니게 되었다. 희망버스는 노동의 문제를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로 만들어낸 것이다. 희망버스는 노동의 문제가 보편적인 문제임을, 그것이 저 높은 크레인에서 농성하는 김진숙이라는 한 노동자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각인시켰다. “우리가 김진숙이다!”라는 구호가, 그리고 “대한민국이 한진중공업이다!”라는 구호가 상징하듯 말이다.

 

▲<사진출처 - 참세상>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하라!”는 구호는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으로 이어졌다. 한진중공업 뿐만 아니라, 재능교육, 유성기업, 전북고속의 장기투쟁 사업장 역시 전국으로 알려졌다. 음지에서 투쟁하던 노동자들의 절규가 SNS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조남호라는 자본가가 청문회에 불려나왔다. 조남호는 청문회에서도 “정리해고 철회는 없다”고 했다. 한진중공업이라는 자본은 희망버스에 맞서 꿋꿋이 버텼다. 이것은 대중적 공분을 불러일으켰지만, 또 한편의 의구심을 자극했다.

 

▲<사진출처 - 민주노총 전북본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가능한가?’ 우리는 버스에 오르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시 질문해보자.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정말 가능한가? 논쟁이 벌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니 정리해고 철회 요구를 접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가 최소화되기 위해서 그렇게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98년 이전에는 정리해고제가 없었는데, 그렇다면 98년 이전에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었느냐며 받아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핵심은 그것이 아니지 않은가? 왜 다들 이 ‘자본주의 사회’를 넘어서서는 안된다라는 전제를 두고 생각할까? 박근혜 마저도 복지담론을 들고 나올 정도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가 너무나도 심각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정말 저들의 말대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이 자본주의에서 불가능하다면, 그놈의 자본주의 이제 그만하면 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할까. 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정리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만들어줄 ‘자본’과 ‘자본가’가 있어야만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남호라는 자본가는, “정리해고 철회는 없다”고 말했다. 파렴치한 발언이기 이전에 당연한 발언이다. 그는 한진중공업이라는 자본이 실제로 자본이기 위하여, 조남호라는 자본가가 실제로 자본가이기 위하여 당연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진보진영’의 학자라는 사람마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리해고가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는 판에, 자본가가 저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가 부산과 서울을 뒤덮었다. 그러나 이제 그 구호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자본주의는 영구불변’이라는 마음 깊은 곳의 전제를 바꾸어야 한다. 반복되는 투쟁에 조금 지치는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 피로는 단지 물리적 시간의 흐름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과연 인구의 절대다수를 정리해고와 임금삭감과, 비정규직화와 청년실업의 압력 속으로 몰아넣는 이 체제가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이미 투쟁은 국제적으로 발발하고 있다. 이집트와 시리아, 리비아에서,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지금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월가의 점거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파업뿐만 아니라 그들의 작업장을 집단적으로 점유하고 이를 민주적으로 조직하기를 호소한다.” “우리는 모든 도시, 모든 공공광장, 모든 마을에서의 사람들의 회의 조직을 제안한다.”

 

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점유하고 민주적으로 조직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회의하고 토론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세상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자본주의가 아니다. 그리고 ‘이미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을 자본주의 최강대국인 미국인들이 요구하고 있다.

 

▲<사진출처 - 민주노총 전북본부>

 

희망버스가 다시 한번 전진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당연하게 놓고 있는 전제와 싸워야 할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는 영원하며 그것을 넘어서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전제 말이다. 조남호는 다른 그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는 영원하며 그것을 넘어서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그 자체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조남호와 싸워 이기자. 그렇게 5차 희망버스에 오르자.

 

백종성(사노위 전북지역위원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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