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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32편_사모스의 조달마을 트리아카스텔라

갈리시아 지방은 올레길과 비슷하다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2.0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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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시아 지방에서 만나는 성당들. 종탑의 모습이 보다 간소해진다.>

 

오늘은 비교적 짧은 거리를 간다.

오세브레이로에서 트리야카스텔라(Triacastela)까지는 20여km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었다.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서 느낀 것은 이제 평탄한 길이 없다는 것이다.

길의 대부분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분위기는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까?

 

우리는 어젯밤 오세브레이로 공립 알베르게에서 잠을 잤다.

이 알베르게는 한 방에 100명은 수용할 정도로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이날 우리는 3층에 배정 받았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3층에 입소시키는 것 같다.

3층이 찰 무렵 2층에 있는 방이 열렸다.

2층은 3층보다는 작아보였지만, 수용인원은 거의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건물도 새로 지어진 것으로, 전반적으로 깨끗했다.

샤워실은 지하 1층까지 내려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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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오 고개에서 본 풍경.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길을 통해 계속 올라온다.>

 

어젯밤에 이 알베르게에서 3가지 사건이 동시에 터졌다.

 

첫째는 도난사건이다.

새벽 3시쯤 2층 침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순례자들의 배낭을 열고 귀중품을 훔쳐 가려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누군가 어두운 가운데 소리치면서 알게 된 것이라고 한다.

2층에 숙박했던 한 흑인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가 범인으로 지목 받았다.

사실, 그날 저녁 이탈리아 순례자 프레도로부터 그녀에 대해 조심할 것을 주의받은 바 있다.

프레도와 알베르게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프레도가 내 말을 가로막고 그녀를 쳐다보라고 조심스럽게 손짓한다.

프레도는 그 흑인 여성이 부엌에서 나가자, 그녀에 대해 ‘페이크 페레그리노(Fake Peregrino_거짓 순례자)’ 같다며 조심하라고 한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소지품을 조심해야 한다는 원칙은 알지만, ‘페이크 페레그리노’가 있다는 정보는 처음 알게 됐다.

그때 프레도의 말에 크게 귀를 기울이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그날 밤에 도난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한국 순례자인 최영화씨에게 물어보니 그녀도 배낭이 활짝 열렸다고 한다.

다만 귀중품은 따로 보관하고 있어서 잃어버린 물품은 없었다.

다행이다.

‘이제부터는 페이크 페레그리뇨도 조심해야 한다.’

 

두 번째는 독일 여성의 추락 사건이다.

이날 그 순례자는 엄청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왔다고 한다.

한밤중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온 방을 울렸단다.

2층 침대에서 떨어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그녀는 괜찮다며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술김에 떨어졌기에 불행 중 다행이다.

아직까지 2층에서 떨어진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이 알베르게에서 보게 됐다.

2층 침실은 오늘 고난의 밤이다.

 

셋째는 프레도의 침실문제다.

새벽 3시 이후로 2층 침실은 그야말로 비상이었다고 한다.

프레도는 순례길을 떠나야 하기에 침대 매트리스를 아예 부엌으로 옮겨서 잠을 잤다.

내가 아침에 내려갔을 때 매트리스 위에 있는 프레도를 보고 놀랐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프레도의 상황이 이해됐다.

프레도는 침대 메트리스를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매트리스는 상당히 무거웠다.

‘이 무거운 것을 혼자서 들고 나왔다니.’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서니 순례자도 사건도 늘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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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들어서서 기념촬영.>

 

오늘의 길을 요약하면 전반부는 산기슭을 오르는 부분이 많고, 후반부는 내리막길이 많다.

포이오(Alto de Poio) 고개에 오르면 그 이후는 내리막 구간이라 수월해진다.

이 고개에서 보는 풍경도 멋지다.

순례자들은 이 고개에 있는 카페(알베르게도 동시에 하고 있는 곳임)에서 모두 쉬어가는 것 같다.

그만큼 오르는 데 힘이 들었다는 반증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올라왔다.

자전거를 탄 중국인 부자(아버지와 아들)도 카페에 들어왔다.

재밌었던 기억은 중국인 아들이 자신의 국적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어디서 왔냐고 물었을 때, 아주 크게 자신은 ‘치노(중국인)’라고 소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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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들도 자주 만난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고마웠던 것 가운데 하나는 나를 보면 처음부터 ‘꼬레아노(한국인)’라고 물어 준 것이다.

나에게 ‘치노’라고 했다면 무척 기분 상했을 것 같다.

어쩌면 그 꼬마가 ‘꼬레아노(한국인)’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크게 소리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 꼬마의 행동으로 한참을 웃으며 커피를 즐기고 있는데 벨이 도착했다.

잠시 후 프레도도 들어왔다.

이제 4명이서 한참동안 ‘카미노 스토리’를 나눴다.

어젯밤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프레도가 하나씩 정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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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야카스텔라 마을이 생긴 이유가 사모스 수도원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나무의 일부는 800년이 넘었다는 내용이 있다.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영어로 된 부분을 읽어시면 된다.>

 

점심시간이 지나 트리야카스텔라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빨리 들어왔다.

이규석씨와 김홍경씨가 우리는 어느 알베르게에서 머물 것인지 물어온다.

나는 아트리오 알베르게(Albergue Atrio)를 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두 분도 그곳에서 머무르시겠단다.

우리 모두 아트리오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마쳤다.

나는 샤워 후 책을 읽기 위해 정원으로 나왔는데, 최영화씨도 우리 숙소를 잡았다.

내 기억으로는 지금까지 머물렀던 숙소 가운데 5명의 한국인은 처음 일이었다.

 

나는 오늘 최초로 알베르게 주인에게 세탁물을 맡겼봤다.

세탁물을 맡기는 비용은 세탁과 건조로 나눠서 낸다. 모두 5유로정도 했던 것 같다.

 

3시간이 지난 후에 맡겼던 세탁물이 돌아왔을 때 만족도는 무척 높았다.

정갈하게 옷들이 개어진 모습에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옷 냄새도 너무 향기롭다.

‘이렇게 입고 다니고 싶다!’

 

한국인 5명이 모이니 일이 벌어진다.

갑자기 이규석씨가 바비큐파티를 하자고 한다.

이 알베르게는 정원 근처 외부 창고에 삼겹살을 구울 수 있도록 요리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나는 재료를 사기 위해 근처 슈퍼마켓으로 갔지만, 지금은 ‘시에스타(낮잠)’ 시간이라 닫혀 있었다.

오후 4시 이후에 다시 재료를 구입해 오겠다고 하니 최영화씨가 가지 말라는 ‘도리도리’하며 눈치를 준다.

대충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65세 이상의 어르신 3분이 방관자처럼 있는 것에 불만인 듯하다!

나도 최영화씨에게 끄덕끄덕하며 뜻을 전했다.

‘삼겹살 먹고 싶었는데!’

바비큐 파티는 다음기회에 하자.

 

우리가 머무르는 이 마을 트리야카스텔라는 사모스 베네딕도수도회와 관계가 깊다.

사모스 수도원에서 필요한 재료를 이곳에서 수급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오래된 나무가 있다.

이 나무와 건물에 대한 소개글을 보면 사모스 수도원의 보급창고 같은 역할을 했다고 쓰여 있다.

이 마을 산티아고성당(Iglesia de Santiago de Triacastela)은 공동묘지였다.

재밌는 점은 성당 건너편에 불상과 동자승이 모습이 있다는 점이다.

동자승에게 성당 앞에 잠든 신자들에게 성불하도록 불경을 잘 외워달라고 말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숙소는 너무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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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과 산티아고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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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아카스텔라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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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메뉴는 이렇게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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