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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산티아고순례길 36편_뿔뽀의 멜리데와 아르수아

먹는 것에 빠져 예수님을 잊은 날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2.12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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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도 카페들이 많이 열려 있다. 이제는 아침 걱정 없이 순례길을 떠나도 된다.>

 

오늘은 아르수아까지 30여km를 걷는다.

보통 20km를 걷지만 오늘은 늘어난 거리가 10km다.

목적지까지 도착하기 위해 견뎌야 하는 고통은 두 세배는 더 클 것이 예상된다.

다행히 아침에 비는 내리지 않았다.

비만 오지 않아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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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이뻐서 한 컷 담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순례증명서를 받기 위해서는 100km이상을 걸어야만 한다.

그 시작점은 사리아라는 도시다.

순례자여권(크레덴시알)의 주의사항을 보면 사리아부터 매일 도장(세요)을 2개 이상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왜 이런 규정이 있는지는 생각해보면, 지역상권활성화를 도움을 주기 위한 행위가 아닌가 싶다.

 

 

‘베드버그’ 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다.

사리아에서부터는 베드버그가 숙소에 출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스페인 청소년들이 여기저기 풀밭에 누워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낭은 고사하고, 옷도 벗어 던져 놓고 누워있다.

‘이제부터는 베드버그를 정말 조심해야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폰세바돈의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에 도착까지 죄 묵상을 거듭해 왔다.

지금은 죄 묵상이 아닌 나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느님께 묻고 있는 시간이다.’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문제는 새로운 직업에 대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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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기념품(스브니어)샵. 사고 싶어도 배낭 무게만 늘릴 뿐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이와 관련된 생각이 정리된 상태다.

마태오복음 6장 25절이 생명처럼 다가왔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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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두아들. 우리에게 정말 잘 해준 분들이다. 나를 아는 채 했을때 나는 처음 만난 사람처럼 행동했다. 얘기를 하다보니 어제 만난 분들이다. 저분들이 상처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어 7장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아들이 빵을 달라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는 악하면서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나는 더 이상 미래를 걱정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절실함이 왔을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이라 확신한다.

모든 걱정이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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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데에서 먹은 뿔뽀. 역시 뿔뽀예찬을 할 만 하다. 유리컵에 담긴 것은 파울리가 사 준 스페인 전통주다. >

 

어느덧 멜리데에 들어섰다.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바로 뿔뽀 맛집을 찾아갔다.

반가운 얼굴이 앞서 이곳에 들어와 있다.

파울리 산드라 부부다.

이들 부부 옆에 앉아 뿔뽀를 시켰다. 가격도 12유로로 저번에 먹었던 뿔뽀보다 엄청 저렴하다.

이 집의 뿔뽀는 부드러우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식감이 느껴진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 있지!’

진정 뿔뽀예찬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너무 맛있었다.

옆에 있던 파울리가 뿔뽀와 함께 먹는 술이라며 스페인 전통주를 한 잔 가져다 준다.

‘아 저것이다! 레디고스에서 한번 마시고 당했던 술이다!’

마시기 전부터 강하고 쓴 맛이 온 몸을 감싸온다.

파울리가 건배를 제안하기에 어쩔 수 없이 한 입 털어넣었다.

‘역시! 엄청나다.’

파울리는 내 헐크처럼 찡그린 모습이 좋은가보다. 큰소리로 웃어댄다.

산드라도 옆에서 함께 웃고 있다.

산드라가 안 웃었다면 파울리에게 욕해줬을성 싶다.

아무튼 뿔뽀와 관련, 이 집은 추천하는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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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데의 모습. 앞에 보이는 성당이 한쪽 팔이 내려져 있는 십자고상이 있는 베드로성당이다.>

 

이곳 멜리데에서는 봐야 할 십자가상이 있다.

십자가상이 있는 성당이름은 베드로성당(Iglesia de San Pedro de Melide)다.

이 십자가는 예수님의 오른팔이 못에서 빠진 채 밑으로 내려져 있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신자가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받았다.

그 신부는 사죄경을 외워주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말라고 당부했다.

다음에 또 그 신자는 고해성사를 통해 똑같은 죄를 고백했다. 신부는 사죄경을 외워줬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는 매번 습관적으로 똑같은 죄를 고백하는 이 신자의 회심 진정성을 의심했다.

급기야는 사죄경도 외워주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당신의 오른손을 내려 그 신자에게 직접 사죄경을 그어줬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신부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권한(사죄경의 권한)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성당을 들어가지는 못했다.

순례길을 걷은 여정 동안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성당 문이 열려 있고, 순례자들이 드나드는 것까지도 확인했는데, 그 순간 다른 생각에 빠져 그냥 성당을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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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진작가가 찍어준 사진. 내가 길을 가는데 멈춰보라고 하더니 말과 함께 사진을 찍어 준단다.>

 

오늘 도착지 아르수아는 스페인 북쪽길과 만나는 장소다.

산티아고 콤 포스텔라와 가까워지니 숙소에도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우리 숙소도 벌써 사람들이 들어차 만실이다.

보통 알베르게는 남녀가 함께 한방을 쓴다.

오늘 장 회장님과 나는 창가 2층 침대를 배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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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 산드라 부부와 함께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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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을 넘으면 아르수아가 나온다.>

 

우리 앞에는 대만에서 온 청년 순례자(팔라스 데 레이에서 같은 알베르게에 머물렀음)가 자리 잡았다.

그 옆으로는 20-30대 외국인 여성들이 자리를 잡았다.

샤워를 마치고 다니는 모습이 쳐다볼 수 없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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