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순례길 37편_천사를 느끼게 된 오 페드로우소
단순함이 곧 거룩함이라는 깨달음
<오늘 출발한 아침의 모습이 신비롭다. 마치 운해가 끼어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너무 멋지다.>
내일이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이다.
이제 곧 800km의 여정이 끝난다는 것이 몸속 깊이 실감된다.
지금 기분이 복잡하다.
곧 순례의 여정이 끝난다는 기쁨이 아니다.
뭔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이다.
생장을 넘어 오면서 왜 내가 여기를 걷겠다고 했는지 후회가 많았다.
사발디카에서 '순례자의 행복'을 읽고 마음을 잡고 다시 걸었다.
프랑스길 첫 도시인 팜플로냐에 도착했을 때는 전날 수비리에 놓고 온 약을 다시 찾기 위해 우왕좌왕했다.
푸엔테라레이나를 지나 용서의 언덕에 올랐을 때는 순례길이 나를 바라보는 길임을 알았다.
산토도밍고와 오르테가에서는 기적을 만났고, 어머니의 수술까지 잘 돼 축복의 날이었다.
부르고스에 들어와서야 순례길이 순례자들의 삶과 신앙의 증거가 뿌리깊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됐다.
메세타평원(고원)과 레온평야를 지나면서는 자연의 위대함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레온과 아스토르가와 철의 십자가, 폰페라다에서 경험한 '세마나 산타'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오 세브레이로와 사모스수도원, 사리아를 지났던 갈리시아 지방에서는 이 길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기있는 길인지 실감난다.
제주도 아니 청산도 돌담길을 걷는 분위기가 순례의 의미를 떠나 걷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을 주는 시간임을 느낀다.
이제 거의 다 왔다.
내일이면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들어간다.
<목적지까지 37km 남았다.>
나는 내가 이 길을 걷는 목적을 이뤘을까?
단단해지기 위해서.
성장을 위해서.
내 삶을 성찰하기 위해서.
필요한 가치를 찾기 위해서.
우유부단한 모습을 버리기 위해서.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
미래를 생각하고 싶어서.
지금 이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마치 아무 생각 없이 40여일을 걸어 온 것 같은 기분이다.
<순례길을 가는 동안 사망한 사람들을 기리는 비석이 많다. 이 비석 위에 사람들의 슬픔과 기원도 함께 놓여져 있다.>
나는 장 회장님은 어떤 상태인지 궁금했다.
“회장님? 많이 비우셨어요?”
“응! 많이 가벼워졌어! 한국 가서 나머지를 버리면 될 것 같아.”
"어때요? 여기 잘 온 것 같아요?"
"윤 국장 아니었으면 어떻게 왔겠어. 윤 국장이 있어서 이런 경험도 하게 되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오실꺼에요?"
"당연하지. 살면서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거든!"
내가 느낀 장종혁 회장님은 정말 한결같은 분이시다.
순례길의 여정도 비우기 위해 오셨고, 지금 많이 비우셨다.
순례길의 역사도 서민과 농민들의 착취와 슬픈 노동의 현실을 우선 바라보신다.
순례를 온 함께 걸었던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지 않으셨어도 나름의 은총을 차고 넘치게 받으신 것 같다.
회장님과 대화하면서 깨달음이 와 닿는다.
'단순함이 진리(거룩함)라는 것을!'
나는 '회장님 최고!' 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장 회장님도 함께 따라 웃는다.
지금 우리의 웃음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무엇을 찾는 길이 아닌, 무엇을 덜어내는 길이었음을 공감하는 웃음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회장님처럼 그저 버리면 되는 것을!
순례는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의미가 막연하게나마 알 것 같다.
<오솔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오랫만에 하늘과 숲을 함께 담아봤다. 이렇게 올려다보면 느낌이 또 다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천사를 만나는 길’이라고 한다.
그 길의 끝에서 천사를 만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어떤 천사를 만났을까?
나 역시 그 길의 끝에서 천사를 만났다.
함께 걷는 모든 순례자들이 천사라는 사실이다.
아니, 처음부터 천사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장 회장님을 비롯해 내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묵상 도중 나에게 강하게 전해오는 메시지가 있었다.
'너는 무엇을 보고 있느냐?'
더불어 '너의 앞을 걷고 있는 그를 보아라!' 라는 음성을 강하게 느꼈다.
이 것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보통 '관찰'이라는 말로 많이 쓰인다고 생각한다.
다른 순례자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들이 참 많다.
오늘의 고민은 오 페드로우소를 넘어 몬테 도 고조까지 갈 지의 문제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 서책에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도착 전 4km 지점인 몬테 도 고조에서 하루를 머물러 가야 한다고 강제성을 부여했다.
그 이유는 산티아고대성당에 10시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10시에 순례자들이 도착하면, 빵파르를 울려주었다고 한다.
이어 순례자 미사가 시작되는데, 그 안에는 향로예식(보타푸메이로)이 진행된다.
코덱스 칼릭스티누스를 따르자면 오 페드로우소와 몬테 도 고조에서 각각 하루를 더 쉬어가야 한다.
장 회장님과 상의한 결과 오 페드로우소에서 쉬고 다음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칼릭스티누스 서책에 꼭 맞게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멋진 풍경을 눈에 담고 간다.>
오늘 목적지인 오 페드로우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가까이 됐을 즈음이다.
순례자의 일상(빨레와 샤워)을 마치고, 숙소 안쪽 정원에 나와 햇빛을 쬐며 누워있었다.
한참동안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더니, 스페인 여성이 다가온다.
같이 담배를 피우다 이름을 물어보니 아마고이아 란다.
“Amagoia? Could you listen to this music with me” -아마고이아? 이 노래 함께 들어볼래요?
기꺼이 듣겠다고 한다.
나는 태블릿에서 유튜브를 열어 이적이 부른 ‘말하는대로’를 함께 들었다.
아마고이아가 노래가 좋다며 관심을 보인다.
다음 노래는 '나는 문제없어'를 함께 들었다.
슈가맨에서 나온 황규영이다.
아마고이아가 열정의나라 스페인사람처럼 썬글라스를 끼고 머리를 흔들어댄다.
'스페인사람은 한국노래를 좋아한다.'
이날 내가 가져간 동시통역 이어폰(스페인어 – 한국어)를 끼고 오랜시간 그녀와 얘기를 나눴다.
아마고이아는 나보다 더 영어를 못한다.
동시통역 이어폰은 정말 제값을 하는 기기다.
저녁에는 나의 순례길 스승이자 친구인 벨에게 연락해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나눔의 기쁨을 크게 느끼는 순간이다.
꿈을 이루고 싶다면 싶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을 확실하게 하나하나 해 내면 된다.
자유롭고 싶다면 천천히 가는 나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나머지는 하느님께 맡겨 놓으면 채워주실 것이다.
<오 페드로우소에 거의 도착했다. 내일이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