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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BC를 걷다 [트레킹 2일차] 셀파의 본고장 남체에 들다

팍딩→몬조(2,700m)→조르살레(2,740m) →남체 바자르(3,440m)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4.04.19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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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딩마을을 벗어나면 바로 만나는 두드코시강>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어보니 창문에 얼음이 얼어서 간유리처럼 변했다.

그 모습을 보며 예전에 그 누구와 나눴던 한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사람은 옛날 30살을 앞두고 안나푸르나 산군을 볼 수 있던 푼힐 전망대에 다녀왔다.

“옛날 그 시간을 생각하면 상상 그 이상의 추위만 떠올라!”

그의 기억은 추위로 도배돼 있었다.

이번에 에베레스트 트레킹에 오르면서 50만원짜리 고급패딩을 구입했다.

그 이유는 나 역시 추위가 너무 싫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느끼는 추위는 상상 이상의 정도는 아니다.

‘날씨야 고마워.’

아침에 세면을 한 후 롯지 다이닝룸에서 식사를 하며 가이드와 시간 계획을 논의했다.

내가 제안한 것은 6, 7, 8이다.

6시 기상, 7시 식사 그리고 8시 출발.

오늘 두드코시강을 거슬러 올라 3440m에 위치한 남체로 간다.

두드코시강은 에베레스트산이 발원지로 전 세계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강이다.

출발한지 10여분 지나자 팍딩브릿지에 도착했다.

나는 출렁다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출렁다리에 대한 기억은 불안감과 무거움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출렁다리를 건너면서 불안한 기분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래에서 밀려 올라오는 빙하 계곡물 소리는 무서웠다.

함께 갔던 일행 중 한 명은 즐거운 듯이 출렁다리를 ‘쿵쾅쿵쾅’ 대며 건너고 있다.

뒤따르는 나에게는 공포가 밀려온다.

마침내 견딜수 없어 소리쳤다.

“하지마세요!”

어떤 사람에겐 즐거운 경험이겠지만, 역시 나에게는 불쾌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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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트레킹에서 첫번째로 건너는 팍딩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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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딩브릿지를 건너면 저 멀리 탐세루크를 보며 계속 걷게 된다.>

일찍 출발해서인지 이곳의 짐꾼들인 말들과 소떼들을 피할 수 있었다.

아침 트레킹길은 매우 편안하고 쾌적해 히말라야의 대자연 속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평화와 안정감을 느꼈졌다.

고요한 분위기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라는 같다.

몬조로 향하는 길은 탐세르쿠(6608m)를 바라보며 걷는다.

설산을 보며 걷기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어느새 몬조에 도착했다.

몬조에 도착하면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입산 허가를 받아야 했다.

루클라에서 작성한 입산 신고를 이곳에서 다시 확인한다.

앞서 도착한 외국인 팀들도 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머뭇거리고 있었다.

몇몇 사람은 쿰부 지형을 축소한 모형도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트레킹 루트와 롯지 위치 그리고 고도에 대한 얘기였다.

어떤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거나 스마트폰을 이용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덧 입산 허가를 마친 가이드가 다가와서 우리에게 준비가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확인하는데만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것 같다.

모든 절차를 마친 후에 가이드에게 오래 걸린 이유를 물었다.

“여기서는 카드를 발급해서 그랬어요.”

이름 적어서 플라스틱 카드에 스티어를 붙여주는 정도였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더 복잡한 이유가 있겠지. 없어도 여긴 일처리가 느리다고 생각하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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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조 체크포인트에 있는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모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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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들이 입산허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우리 가이드는 4번째로 서 있는데 흰색 모자만 살짝 보인다.>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가이드는 우리를 조르살레 마을에 있는 식당 한곳으로 안내했다.

가이드가 그 식당으로 안내한 이유는 식당주인과 인연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 여주인이 가이드의 고향 동생이란다.

점심을 주문하자마자, 한국에서 온 60대의 남성분이 포터와 함께 이곳에 들어왔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행선지를 여쭤보니 그분은 임자체에 오른다고 한다.

임자체는 로체샤르의 남릉인 아일랜드피크라고 불리는 산으로 6,367m다.

‘엄청난 사람이다.’

“여기 사람들에게 라면을 시키면 면과 국물을 따로 끓여서 맛이 나지 않아요.”

그분은 한국 라면을 시켰는데, 직접 주방으로 들어가시며 요리를 직접하는 이유를 설명하셨다.

또 볶음김치를 가져오셨는데, 식당에서 우리에게도 맛보라며 조금 나눠주셨다.

김치는 최고의 반찬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시간이다.

점심식사 후 그분에게 안전한 산행과 즐거운 트레킹을 바라며 다시 길을 나섰다.

지금 도착한 곳은 힐러리브릿지다.

힐러리브릿지는 히말라야와 관련된 대부분의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2015년 개봉했던 영화 '에베레스트'에서 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다리를 건널 때는 영화에서처럼 경치를 감상할 틈도 없이, 계곡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흔들리는 몸을 지탱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힐러리브릿지에 대한 추억은 ‘휘청대며 앞만보고 건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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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 다리 힐러리브릿지.>

다리를 건너고 나면 이제부터 700m의 고도를 올리는 시련의 길이 시작된다.

고산병 예방을 위한 안전수칙에는 하루 400m 이상의 고도를 올리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남체로 가기 위해 700m를 올라가야 한다.

'비스타리 잠잠(천천히 가자)'을 외치며 한 발 한 발 내딛였다.

나에게 700m를 오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더욱이 천천히 오르다 보니 체력 소모도 적어 길도 편안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컨디션도 좋은 상태가 계속 유지되고 있었고, 산소포화도를 측정하니 90% 이상이라는 정상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르다 보니 어느새 남체바자르에 도착했다.

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웅장한 설산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남체 마을의 오른편에는 탐세르쿠가, 왼편에는 콩데가 우뚝 서 있다.

나는 왼쪽 산 '콩데'를 가리키며 함께 트레킹을 온 장종혁 회장님을 놀렸다.

이 산은 회장님을 상징하는 산이라고.

“회장님은 꼰데시잖아요. 저 산 이름도 회장님과 같은 꽁데에요.”

“난 꼰데 아냐.” 회장님은 웃음지으며 자신은 꼰데가 아니라고 부인하셨다.

남체바자르는 쿰부 히말라야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마을의 집들은 층층으로 계단식으로 지어져 있는데, 이 큰 마을의 특징은 산에 안겨 있는 형상으로 입구에 들어서기까지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남체에 들어서면 먼저 네팔의 여성 영웅 파상 라무의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저는 우리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서 산에 올라요. 히말라야는 우리 산이잖아요. 왜 여자는 못오르나요?” 파상 라무가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이유다.

당시 히말라야 산들은 오랜 기간 금녀의 영역이었다.

셀파족들은 히말라야가 신들의 거처이기에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신들의 가호가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월경 중인 여성이 오르게 되면 신을 진노로 산다고 한다.

파상 라무는 이 말에 분노했고, 셀파족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삶을 보여주고 싶어 에베레스트에 도전했다.

그녀는 프랑스를 비롯해 다른 나라에 온 등반대에 셀파로 합류했지만, 정상 정복조에서는 탈락되기 일쑤였다.

결국 1993년 네팔 여성들을 모아 팀을 꾸려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서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하지만, 하산 도중 동료 한명이 체력이 고갈돼 내려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파상 라무는 그 동료를 혼자 두지 못했고, 그 곳에서 보살피다 함께 산을 내려오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

그녀의 삶을 더 깊이 알고 싶다면 '파상: 에베레스트의 그림자'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그녀의 동상을 보며 잠시 영원한 안식과 그녀가 원하는 세상이 되기를 묵념과 함께 기도했다.

더불어 내가 실천해야 할 삶의 가치 가운데 ‘지도력과 용기’에 대한 생각도 가졌다.

지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내와 봉사, 겸손뿐만 아니라 행동을 위한 결단과 타인을 이끌어 가는 강한 압력과 의지가 결합되어야 가능하다.

나의 기대수명은 83세다. 지금의 나이로 보면, 나에게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은 33년이다.

33년의 여정 동안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다.

후회하지 않는 삶이란 가치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치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파상 라무의 응원을 빌며 오늘 머물 롯지 ‘티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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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바자르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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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본 콩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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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체바자르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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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여성 국민 영웅 파상 네무 셀파의 동상. 셀파의 본고장이기에 그녀의 동상을 입구에 세워놓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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