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C를 걷다 [3일차]에베레스트와의 첫 만남 감동의 순간이었다
남체(3,440m)→사나사(3,600m)→풍기텡가(3,250m) →텡보체(3,860m)→디보체(3,710m)
<정면으로 로체가 우뚝 솟아 있ㅁ고, 왼편으로 눕체가 톱니같은 이빨을 드러낸다. 눕체 뒤로 에베레스트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침 6시. 창밖을 보니 벌써 마을이 환해졌다.
그런데, 머리가 심하게 아파온다. 그 순간 올 것이 왔음을 직감했다.
내 손에 차고 있는 워치로 산소포화도를 재봤더니, 아뿔사 70%대로 떨어져 있다.
워치가 검사 후 결과를 알려주는 ‘속히 의사를 찾아 가라’는 조언이 마음에 걸린다.
이 곳은 일교차가 심하기에 기온이 낮아지는 밤에 고산병이 올 확률이 크다.
어제까지 몸 상태가 좋았었기에 안일했나보다.
함께 온 장종혁 회장님이 걱정됐다.
“회장님 몸은 어떠세요?”
“응. 괜찮아”
“저는 고산병 왔어요. 두통이 너무 심해요.”
“난 한국에서 비아그라 처방해왔어. 그리고 카투만두 출발하면서부터 먹고 있어.”
회장님은 이미 약을 복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다행이라는 말을 전한 후 고산병 회복에 좋다는 산책을 시작했다.
고산병에 대한 해결책으로 방에 누워있기보다 천천히 산책하기를 권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남체마을 위로 올라서니, 장 회장님을 알려주는 산 ‘꽁데’가 흰 옷을 입고 나를 반긴다.
나는 헬기 이착륙장까지 천천히 걸었다. 두통은 사라지지 않고 더 아파왔다.
여기가 아침 6시면 지금 한국은 오전 9시.
막내 누나와 카톡을 하며 남체의 모습을 담은 셀카를 보냈더니 첫 마디부터 걱정 한 가득이다.
“많이 아퍼. 너 입술도 시퍼래.”
내 모습을 다시 확인하니 정말 아픈사람 모습이다.
고산병이 더 심각한 상태로 변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이런 경우라면 하산이 답이기 때문이다.
아침식사 시간인 7시가 됐다.
티벳 롯지라는 이름의 우리 숙소 2층에 있는 다이닝룸에서 가이드와 얘기를 나눴다.
“텐징? 나 고산병 왔어요. 두통이 너무 심해요.”
“다이아목스(고산병약) 가지고 있어요.”
“응”
“그것 절반 쪼개서 아침과 저녁에 반개씩 나눠 드세요. 그리고 주의해야 할 점도 있어요. 한번 먹기 시작하면 절대 좋아졌다고 중간에 끊으면 안되요. 내려올 때까지 계속 먹어야 해요.”
사실, 어제 1,000m 가량의 고도를 올린 탓에 고산병이 올 확률이 높았다.
저녁때까지도 컨디션이 좋아 내일 바로 다음 이동장소인 3,800m 고도의 디보체까지 올라가기로 결정했었다.
보통은 남체까지 올라오면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정도 쉬어 간다.
하지만, 가이드가 보기에도 우리의 상태가 괜찮은지 디보체로 가는 것을 동의했다.
다이아목스를 복용한지 한시간 정도 지났을까? 언제 아팠냐는 듯 두통이 깨끗이 사라졌다.
네팔 현지에서 파는 고산병약이 최고라는 얘기는 익히 알았지만, 실제 복용해보니 정말 그렇다는 것을 실감한다.
몸이 좋아지니 보이는 모든 풍경도 내 맘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남체에서 사나사까지 가는 길은 감동의 도가니이다.
<숙소에서 보는 꽁데의 모습.>
<남체바자르의 또 하나의 뒷산 탐세루크의 모습>
<꽁데리에 올라오는 금빛햇살>
<남체 헬리포트에서 보는 콩데와 저 멀리 설산들>
<남체곰파>
남체를 벗어나 산을 빗겨 돌자 저 멀리 정면에 로체와 눕체 그리고 눕체 뒤로 살짝 고개를 내민 에베레스트가 우리를 반긴다.
‘드디어 에베레스트가 나에게 왔구나.’
너무 큰 감동이 밀려왔다.
내가 에베레스트를 보러 왔음에도, 마치 에베레스트가 나에게 온 것 같은 아이러니는 ‘축복의 메시지’라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저곳 Top of the World 에 더 가까이 갈 생각을 하니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이 있다고 한다.
누가,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세계 3대 미봉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다.
하나는 스위스의 있는 마테호른으로 높이는 4,478m다.
다른 하나는 힌두교의 최고신인 시바가 살고 있는 산으로 불리는 마차푸차레며, 높이는 6,993m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아마다블람(6,812m)이다.
아마다블람은 어머니의 진주목걸이라는 뜻이란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과 함께 주변을 감싸고 흐르는 빙하수가 목걸이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가이드인 텐징은 아마다블람이 부처님이 앉아 팔 벌리고 있는 모습이라는 또 다른 내용을 소개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있든, 부처님이 앉아서 팔 벌리고 있든지, 아마다블람 위에 겹쳐서 상상해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사나사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며 한동안 아마다블람을 바라봤다.
‘왜 3대 미봉이라 불릴까? 무슨 매력을 가진 것일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꼭대기에 올랐을까?’
특별히 아마다블람이 아름답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고 있다.
아마다블람뿐 아니라 로체, 눕체, 에베레스트, 타보체 등 주변에 보이는 모든 설산이 똑같이 그냥 이뻤다.
사나다부터는 계곡을 향해 내려가는 길의 연속이다.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내리막을 만나면 그다지 반갑지 않다.
한참 내려가는데 뒤따라 오던 장 회장님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왜 자꾸 내려가. 이렇게 내려가면 또 올라가야잖아.”
함께 오던 가이드가 회장님께 던진 말에 웃음이 났다.
“우리요, 돌아올 때도 이 길로 와요.”
돌아올 때 다시 이 높이를 올라올 생각을 하니 아찔하긴 했다.
한참을 내려오니 계곡 아래로 마을이 하나 있었다.
이 마을 이름은 풍기텡가다.
풍기텡가.
함께 떠오른 단어가 ‘풍각쟁이’다.
‘오빠는 풍각쟁이’라는 노래의 가사는 오빠는 풍각쟁이야, 오빠는 심술쟁이야~이런 내용인데, 이 마을이 마치 심술쟁이 같은 느낌이다.
풍기텡가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남짓.
이른 점심을 먹고 텡보체를 향해 길을 올랐다.
어제 남체로 올라가는 길이 첫 난코스라면 오늘 오르는 이 코스가 두 번째 난코스다.
3,200m에서 3,800m까지 600m 고도를 한순간에 올리는 장소다.
지리산 천왕봉은 1,915m로 최단코스인 중산리탐방지원센터 500m의 고도에서 출발하면 1,400m정도를 3시간정도에 오르게 된다.
‘지리산도 올랐는데, 이런 곳이야!’ 이렇게 생각을 하며, 텡보체까지 600m를 올라가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아냐’라고 내 마음을 다잡았다.
고도 3,000m에서 올라간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3,000m이상의 고도에서는 몸에 무리를 주게 되면 고산병으로 직결된다는 점이다.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천천히 올라야만 한다.
트레커든지, 가이드든지, 포터든지 모두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내용이다.
하루 400m이상의 고도를 올리는 것부터가 몸을 무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현지인들도 하루에 1,000m이상 올라가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하루 2,000m이상 오르는 것은 생각지도 않는다고 한다.
이 길을 오르면서 가장 내 눈에 띈 사람은 100kg정도 될 듯한 뚱뚱한 미국인이었다.
너무 뚱뚱해서인지 지금 텡보체로 오르는 상황을 너무 버거워했다.
함께 뒤따르던 포터들이 보다 못해 그의 모든 짐을 지고 천천히 뒤따라 간다.
그 분의 숨소리가 장난 없다.
“흐~헉, 흐~헉.” 너무 걱정된다.
높이 올라갈수록 숨을 쉬는 방법은 ‘길게 깊게’다.
헉헉되는 순간 고소가 웃으며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곳에 올 준비가 되지 않는 자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미래가 걱정됐다.
안타깝게도 이분은 내일 가게될 딩보체라는 마을이 마지막 일정이 됐다.
텡보체로 오르는 길은 말라 죽어있는 흙먼지길이다.
수많은 사람과 동물들이 다니다 보니 ‘똥먼지’를 먹으며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쉼터에서 쉬고 있으면, 다른 트레커들이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올라온다.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쉬어가(Take a rest)’라는 말뿐이다.
<세계 3대미봉 아마다블람의 모습>
<쿰중이라는 마을과 마을 뒷산 타보체. 타보체는 쿰부지역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는 신령님 산이다.>
<텐징노르가이초르텐 앞에서 앞으로 내가 갈 에베레스트 배경을 담아봤다.>
<눈이 가는 곳마다 절경이 가득이다.>
<텡보체 올라가는 길. 이렇게 휴식처가 있으면 항상 사람들이 붐빈다.>
<텡보체 올라가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장종혁 회장님(오른쪽)과 가이드 텐징 보테.>
드디어 텡보체에 다달았다.
쿰부지역에서는 가장 큰 곰파로,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텡보체곰파다.
내가 보았던 수많은 에베레스트 등반 영화에서도 이 곳 곰파에서 스님이 등반가들에게 타카(목에 걸어주는 천)를 걸어주는 장면을 보았다.
곰파 내부는 우리나라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들과 비슷하게 부처님상이 앉아 있다.
내부 가장자리로 사람들이 앉아 있기에 나 역시 그들과 같이 따라 앉았다.
10여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어린 스님 한분이 불을 붙인 후 중앙에 있는 자리에 앉아, 큰 담요를 얼굴까지 뒤집어 쓴다.
잠시 후 나이 많은 스님이 오더니, 가장 앞자리에 앉아 담뇨를 뒤집어쓰고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몇몇 스님들이 다 들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앉았다.
자꾸 머릿속에 무협소설 ‘영웅문 2부 – 양과와 소용녀’에서 나왔던 금륜법사가 떠오른다.
금륜법사는 최종보스급 악당이다.
아미파의 시조인 곽정의 딸 곽양을 납치해 자기 제자로 삼으려 했던 금륜법사가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30여분 앉아 있었더니 한기가 온 몸을 파고들어, 자리를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이분들 담뇨를 얼굴까지 뒤집어쓰는 이유를 알겠어.’
오늘 목적지인 디보체는 텡보체에서 30여분만 더 걸으면 된다.
디보체까지 가는 길목에는 네팔의 국화인 낭리구라스 나무가 한가득이다.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아쉬웠다.
디보체에 도착하니 살짝쿵 비가 내린다.
‘숙소에 도착하니 비가 오네.’누군가 우리를 보살피고 있는 뜻이리라.
오늘도 참 좋은 하루를 보낸다.
여장을 푼 후 다이닝룸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히말라야-내가 작아지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꺼내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곰파로 들어가는 입구>
<곰파 내부가 사각형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에 있는 마당이 나온다.>
<디보체 롯지 다이닝룸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