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장 속 생명과 평화의 깃발이 나부끼다
새만금 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 후기
2024년 9월 20일 금요일 잔뜩 흐린 오후 2시즘, 전북 군산시 예술의 전당에 삼삼 오오 사람들이 몰려든다. 제복 입은 사람들이 안내하여 출석부에 서명을 하고 입장을 시킨다. 공연장 안에는 벌써 사람들이 어느 정도 들어차 있었는데, 무대 앞에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참, 1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먼저 얘기해야겠다.
예술의 전당 입구에서 새만금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고 그 예정지인 수라갯벌을 지킬 것을 외치는 일단의 사람들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나도 그 무리 속의 하나로 회견문 낭독에 참여했다. 전북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나름 중요한 행사라고 생각해서인지 공영방송 등 몇 개 언론사에서 취재를 하러 나왔다.
<군산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새만금신공항 환경영향평가 초안 주민설명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다시 공연장 안이다,
무대 앞 중앙부분 우리가 흔히 관계자 석이라고 부르는 곳에 건장한 남자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고, 그 옆 통행로에도 쭉 서 있다. 함께 기자회견을 했던 새만금 신공항 백지화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 대원들이 이 남자들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시비가 붙는다. 이들은 주로 사복 경찰들이었고 공무원도 일부 있었던 것 같다.
경찰들이 너무 많아서 설명회 진행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 나가달라고 공동행동 대원들이 거칠게 요구한다. 그렇지만 경찰들은 들은 체 만 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회의가 시작할 시간이 되자 공동행동 대원들이 일제히 단상쪽으로 나가 피켓을 들고 외치기 시작한다. 앞서 기자회견에서 했던 내용을 주민들도 알아 들으라고 외친다. 통로에 있던 경찰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방어벽을 친다.
<단상 앞 피켓 시위와 발언>
그리고 사회자가 진행 발언을 한다. 뭐 이런 상황에서 설명회를 강행하냐고 꾸짖기라도 하려는 듯 백발의 문정현 신부가 단상으로 올라가려고 하자 방어벽을 친 경찰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선다.
진행자 측은 무대용 빔 프로젝터를 켜서 자료화면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공동행동 대원이 치켜 든 피켓으로 메인 화면이 가려지자 진행자 측은 차선책으로 보조 프로젝터를 켜서 자그마한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간다.
<환경영향평가 초안 설명 장면>
이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아수라장이다.
나는 주로 객석에서 관중들의 동태를 살폈다. 몇몇 나이든 남자 분은 큰 목소리로 ‘당신들이 누구냐, 설명을 들으러 왔으니 일단 진행 내용을 들어보자’며 공동행동 대원들이 요란 떠는 모습을 못마땅해 하기도 하였고, 나이든 여자 몇 분이 내 뒤편에 있었는데 ‘도요새도 주민이다’라고 쓴 공동행동 대원의 천 피켓 내용이 별스럽다는 듯 연신 중얼대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진기한 아수라장을 신기한 듯 쳐다봤고, 끝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다가 떠난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진행자가 본인들의 설명은 꾸역꾸역 다해 놓고는, 정작 중요한 주민들과의 질의 응답은 장내 소란을 이유로 생략해 버렸다.
주민설명회가 공청회로도 불리는 이유는 질의응답을 통해서 주민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것 역시 인내심을 가지고 진행해야 될 터인데, 쉽사리 이를 포기한 것은 본인들에게 질의응답 과정은 형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게 아닌가도 싶었다.
진행자가 행사 종료를 선언하자 주민들은 하나둘 떠나가고 출동했던 경찰들은 팀별로 일사불란하게 철수하는 풍경이 드러났다.
또한 떠나는 마당에 끝까지 궁시렁 대는 한 주민이 있었는데, 그에게 한 공동행동 대원이 다가가 사연을 물으니 설명회장에 와서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을 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것이었다.
이후 공연장 밖으로 나와서 정리하는 자리를 가지면서 그 주민으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청해 들었다. 이 분은 군산시 옥서면 선연리 주민으로서 현재 군산공항 옆에 살고 있어서 늘 전투기 소음으로부터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국방부로부터 논밭을 임대해서 농사도 짓고 있는데 먹고 살며 지내기가 어려우니 이전을 해달라고 애원해도 해당사항이 없다며 안 된다고 한단다. 소음 피해를 하소연하러 시청에도 찾아가고 방송국에 출연해서 호소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옆에 또 공항을 짓는다고 하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목소리를 내려고 했다는 것이다. 질의응답이 생략되어 비록 공개적으로 말하지는 못했어도 그래도 남은 공동행동 대원들에게라도 응어리를 풀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분이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져 이런 하소연을 공개했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진행자의 환경영향평가서 설명 내용과 방식을 들어보건대 아마 이렇게 대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음 피해 상황에 대해 더 꼼꼼히 점검하고, 문제가 최소화 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입니다.”
원론적으로 답변하고 책임을 회피해가는 하나마나한 답변이 아니었을까 싶다.
10여 년 전 대한민국을 방문했던 교황 프란치스코는 ‘인간적 고통 앞에 정치적 중립은 없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오늘 사건에 이 말을 다시 새기고 싶다.
공동행동 대원들은 함께 고통을 느끼고 그 아픔에 연대하고자 기꺼이 귀한 시간을 내었고, 또한 귀한 시간을 내서 왔을 주민들과 혈세로 동원된 경찰과 공무원들에게 그 고통에 눈감지 말고, 부디 함께 아파하자고 호소를 하였다.
그럼 이것이 과연 ‘인간적 고통에 해당되는가?’ 라는 질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적 고통이라는 것이 인간이 당하는 고통도 말하겠지만, 다른 생명체의 고통으로 인하여 함께 느끼는 동병상련의 아픔 역시 그 범위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명들이 죽어가고 평화가 깨지는데 이를 못 본 체 무시하고 넘어가는 인간이라면 그게 사람이라 하겠는가?
이것을 이해관계의 틀로서도 살펴야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어민이 아닌 이상 갯벌의 생명들이 죽는 것과 이해관계가 크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는 작다고 하더라도 생명들의 죽음과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이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 신공항 건설 백지화를 외친 것은 바로 연대와 사랑의 힘이 작동한 것이리라.
그럼 갯벌을 매립하고 공항을 짓는 데에 이해관계가 또 걸린 이들은 누구인가?
얼핏 생각해보면 토건자본가, 군산복합체 등이 떠오르는데, 군사공항을 민간국제공항으로 호도하여 민심을 왜곡하는데 기여하는 정치인과 언론들은 어떤 득을 보는 건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거짓말이 드러나면 본인들은 상처를 크게 입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또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건설 추진연합’이라는 단체가 있다는데, 전북상공회의소 등 200여개 단체가 가입해 있다고 한다. 오늘 참석을 예고하며 전날에 발표한 이들의 성명서 내용을 보면 전북특별자치도가 선전하는 바와 같은 맥락의 소리를 하고 있어서 관변단체들로 주로 이루어져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들은 전북 경제 발전 운운하지만 실제로 공항 건설사업 국가예산으로 본인들 밥줄 부풀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기에, 그 왜곡된 논리를 그대로 투사하여 그게 마치 전북 민심인 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생각된다.
즉 이해관계 논리에 의해 공항건설 추진을 찬성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하면 생명체들의 고통 앞에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함께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으로서 아무런 죄책감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아픔이 경미하여 이해관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해관계를 쫓는 인간이기에 앞서서 생명의 고통과 죽음에 함께 아파하고 공감하는 한 존재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동행동에 제언을 한 가지 하자면, 신공항 건설의 허구와 망상에 대하여 주민설명회를 자체적으로 개최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다.
그간 거리 선전전을 하는 등 여러 시민들에게 알리고 다가서기도 하였는데, 아직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전부로 착각하는 도민들이 여전히 많은 실정이다. 주민설명회 또는 공청회 형식을 빌되 효과적으로 홍보하고 나눌 수 있는 방법으로도 접근했으면 한다,
또한 ‘새만금 국제공항 조기건설 추진연합’ 측과도 맞짱 토론회도 열어서, 신공항 사업의 진실을 알리고 쟁점을 이슈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수라갯벌을 지켜낼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각성이 들꽃처럼 피어나기를 두손 모아 간절히 기원한다,
필자소개 : 김근오(kimkeunoh@hanmail.net)
새만금 신공항의 허구를 도민들에게 알리고픈 마음이 간절하며, 전북녹색연합 새만금갯벌복원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