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여행의가치 7장. 과거의 무게와 현재의 책임

애로우타운과 와나카…금의 흔적과 생명의 숨결 사이에서

윤창영( icomn@icomn.net) 2025.05.22 21:07

20250306_115305 (1).jpg

<퀸스타운 와카티푸 호수의 모습>

 

오늘의 가치 조각

1. 우리는 풍경 속에서 삶의 태도를 배운다.

2.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시작이다.

3. 자연을 돌보는 것은 곧 나를 돌보는 것이다.

 

20250306_151310.jpg

<애로우타운에서 와나카로 가는 길에 넘어야 하는 산맥>

 

오늘은 테아나우를 출발해 와나카로 가는 날이다.

이동에만 4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하는 상당한 거리다.

와나카라는 곳은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남섬 제1의 도시라고 하는 크라이스트처치에서도, 오늘 우리가 거쳐갈 퀸스타운에서도 각각 2시간 정도 걸리는 장소.

큰 도시(타운)에서 빙하지대로 접근이 용이해 현지인과 여행객 모두에게 인기가 있을법하다.

남섬은 총 국립공원은 총 10개 있다.

이 가운데 빙하를 볼 수 있는 국립공원은 아오라키/마운트 쿡 국립공원에 대부분 속해 있다.

와나카는 어스피어링 국립공원 내에 빙하지대를 볼 수 있는 트랙이 롭로이다.

 

20250306_134754.jpg

<애로우타운 중국인 정착지>

테아나우 탑10홀리데이파크에서 9시에 출발했다.

오늘은 아시아마트가 있는 퀸스타운에 들려 김치찌게 재료를 구입하고, 관광지로 알려진 애로우타운을 거쳐 와나타로 들어간다.

4일전, 퀸스타운에서 이 곳 테아나우로 올 땐 잔득 흐리고, 비까지 내려 경관이 안개로 가득차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지금 돌아가는 길은 푸른 하늘이 방긋 웃으며, 모든 경관을 내주고 있다.

테아나우에서 출발해 와나카로 향하는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간이 겹겹이 쌓인 공간을 지나가는 여정이 되어 버렸다.

'와카티푸 호수가 이렇게 푸르다니!'

퀸스타운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기분좋은 드라이브 도로로 변했다.

날씨가 좋은 이유도 있었겠지만, 물 색깔이 '어떻게 저럴수 있지!'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

호숫가를 따라 이어진 도로는 비가 멎은 후 드러난 햇살과 물빛이 어우러져 평화로웠다.

그 고요하고 청명한 와카티푸 호수를 닮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수면 위로 내 마음도 가라앉는 듯했다.

지난번 비로 가려졌던 풍경들이 이번엔 큰 선물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어쩌면 기다림은 더 큰 선물과 은총을 주는 시간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아닌지 생각해봤다.

 

퀸스타운을 지나 도착한 애로우타운.

금광의 도시, 골드러시의 상징인 이 도시는 남섬에서 관광지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내가 마주한 이 작은 마을은 화려한 금빛보다는 어두운 역사의 그늘을 품고 있었다.

중국인 정착지를 둘러보며 느낀 건, 이곳이 다크 투어리즘의 공간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돌로 쌓은 움막 같은 집들, 사람이라고 살았다고 하기 어려울 만큼 열악한 환경.

'환대' 대신 '필요'로 불려온 이방인들의 삶이 이곳에 있었다.

생계를 위해 낯선 땅에 도착한 사람들. 그들이 겪었을 고단함을 잠시나마 상상해봤다.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희생과 침묵 위에 세워진 번영을 잊고 살아간다.

애로우타운은 그 기억을 되살려주는 장소였다.

또한, 그들이 울타리로 심은 외래종 식물들이 지금은 토착 생태계를 위협하는 우열종이 되었다는 사실도 상징적이었다.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위해 만든 것들이 결국 자연의 균형을 깨뜨릴 수 있다는 것.

애로우타운은 과거의 인간 중심 사고가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를 말없이 담고 있는 장소였다.

20250306_165611.jpg

<와나카 호수에서 사람들은 쉼을 즐긴다>

애로우타운을 지나, 험난한 커브길을 따라 도착한 와나카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와나카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쉼의 장소였다.

광활하게 펼쳐진 호수는 말없이 모든 것을 품어주고 있었다.

수면 위를 떠도는 수많은 요트들과 호수를 수영하는 사람들, 호숫가에 앉아 휴식을 즐기는 이들.

모두가 각자의 방식의 쉼을 이어가고 있었다.

문득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자연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존재.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호수처럼.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는 산처럼.

자연은 말하지 않지만, 항상 가장 깊은 위로를 주는 것 같다.

마치 우리의 삶에서 정작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일깨워주는 것 처럼.

자연은 나에게 가장 정직한 선생이다.

20250306_190413.jpg

<와나카 호수를 떠다니는 요트들 >

석양을 바라보며 와나카 호수변을 천천히 걸었다.

요트 선착장과 같은 곳에서 잠시 멈춰섰더니, 현지 할머니 분께서 말을 걸어왔다.

낯선 동양인이 와나카 호수를 바라보는 모습이 감동적이셨나보다.

그분은 와나카에 대한 인상을 물어왔고, 나는 아름다운 장소라고 극찬했다.

그분은 와나카에 대한 소개와 함께 어스피어링 국립공원에 대해 소개했다.

사실, 내일 어스피어링 국립공원 내 롭로이트랙을 다녀올 계획을 세웠기에 그분 말씀을 경청했다.

가는 길에 대한 말씀이셨는데, 생각보다 멀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움직이라는 조언이셨다.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따뜻한 눈빛과 여행자를 향한 마음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번 여행에서 마주하는 뜻밖의 위로다.

할머니의 마음. 그것은 여행자에게 주는 관심이라기 보다는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동반자라는 느낌이다.

20250306_192432.jpg

<와나카호수>

애로우타운은 우리가 저질러온 과오를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와나카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는 과거의 무게를, 하나는 현재의 책임을 안고 있었다.

오늘 나는 두 장소를 통해 배웠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되고, 돌보지 않는 자연은 멀어진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미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껴안는 자세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단지 풍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그 속에 사람이 있었고, 시간이 있었고, 삶의 가치가 있었기에, 오늘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하루가 되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