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여행의가치 8장. 회복의 방향으로 돌아서기를

롭 로이 빙하 트래킹 - 얼음의 끝에서 마주한 기후위기

윤창영( ycy6529@hanmail.net) 2025.05.29 22:01

20250307_101439.jpg

<롭 로이 트랙 들머리로 들어가는 길. 비포장도로를 2시간 가량 달린듯 하다.>

 

오늘의 가치조각

 줄어든 빙하를 눈으로 본 순간, 위기의 징후는 이미 우리 곁에 있었다. 느껴야 행동이 시작된다.

 무심코 누린 편리함이 자연을 해치고 있다. 절제와 책임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

 

오늘은 어스파이어링 국립공원 내 롭 로이 트래킹을 계획한 날이다.

아침식사후, 네이버 블로그로 길을 확인하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와나카 시내에서 롭 로이 트랙 들머리까지의 소요시간이 무려 4시간이 잡혀 있는 것이었다.

4시간이면 여기에서 밀포드사운드까지의 거리인데 뭔가 잘못 기록된걸까 의심이 들었다.

와나카지역의 어스파이어링 국립공원 내이기에 아무리 멀다해도 1시간 거리일텐데 말이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해보니 의심했던 내 자신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책을 하게 됐다.

롭 로이 들머리까지의 길은 일반적인 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40여분간 포장도로를 가게 된다. 

이어 언제 끝날지 모를 진흙과 자갈로 가득한 비포장도로를 계속 가야 한다.

차는 흔들렸고, 속도는 점점 느려졌다.

비포장도로를 아주 느린 속도로 2시간 가량 달렸을때 비로소 소요시간 4시간이라는 내용이 오류가 아님을 확신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것 같아, 어느 구간에서는 정말 이 길이 맞는 걸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캠퍼밴과 승용차, SUV차량들이 계속 앞질러 갈때마다 저들도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는 믿음도 커졌다.

앞서 가는 차들도 답답했는지 속도를 내며 달렸다.

차들이 뿌리는 흙먼지가 도로 가득 메웠고, 차량의 뒤를 따라간다는 것은 고통스럽기도 했다.

롭 로이를 만나는 길은  인내를 필요로 하는 수양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50307_110749.jpg

<이 현수교를 지나면 롭 로이 트랙 숲길이 시작된다.>

빙하트래킹으로 롭 로이를 선택한 첫번째 이유는 트래커의 수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북적이는 마운트 쿡의 인기로 빙하에 대한 나의 생각정리보다 오히려 피로감이 앞설 것 만 같았다.

어쩌면 나 스스로가 고요한 상황을 만들어야 빙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해 좀더 집중하지 않을까 싶었다.

롭 로이 트랙을 다녀온 후의 생각은 많이 변했지만 말이다.

롭 로이 트랙에 닿기까지의 험난한 길을 떠올리면, 지금은 마운트 쿡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라는 생각이든다.

험난함을 감수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또 하나의 피로감이었기 때문이다.

​어스파이어링 국립공원의 들머리에 도착하기까지 '포드(ford)'라는 단어가 나에게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동안 포드는 미국 자동차를 만든 사람의 이름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비포장도로를 가는 동안 포드라는 글자의 표지판이 나타나면 반드시 계곡 사이 물길이 흐르는 장소를 지나가게 된다. 

자동차 브랜드로만 알았던 포드가 험한 길을 뜻하는 단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 단어는 오늘 걸었던 길과도 꼭 맞았다.

쉽지 않은 접근, 그러나 도착하고 나면 절대 잊지 못할 풍경.

그렇게 롭 로이 빙하는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선물해줬다. 

20250307_114401.jpg

<숲길 속에서 보이는 풍경들. 뾰족한 산들이 한가득이다.>

트랙 초입에서 뉴질랜드 대학생 단체팀을 만났다.

단합대회를 온듯한 그들은 출발전 단체사진을 찍을 준비를 하고, 그때 지나가던 나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에서는 김치라고 한다며, '김치~'를 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들은 한목소리로 자연스레 외쳤다.

"김치~." 

그들은 낯선 단어를 따라하며 폭소가 터졌고,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낯선 땅에서도 우리는 작은 말 하나로 서로를 잇는 기분이다. 

현수교를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됐다.

롭 로이 트랙을 본격적으로 올라탄 것이다.

빙하 계곡의 물소리는 매서웠다.

단순히 시원한 자연의 소리가 아니었다.

계곡 바닥을 울리며 올라오는 그 소리는 내게 무서운 감정을 줬다.

자연은 때로 위로가 아니라 경고로 다가온다.

'여기서 실족하면 죽겠구나!'

문득 무서움이 덥쳐왔다.

첫 빙하 전망대, 로우룩아웃(Low Lookout)에 도착했다.

나는 이 빙하를 보기 위해 뉴질랜드까지 왔다.

인터넷에서 10년 전과 지금의 모습을 비교한 빙하 사진. 

점점 작아지는 얼음. 

언젠가 그마저도 사라질까봐,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실제로 눈앞의 빙하는 아직 거대해 보였지만, 예전보다 작아졌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었다.

위기란 항상 느리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모른 척한다. 하지만 그것이 더 큰 재앙을 부른다.

20250307_130227.jpg

<점심을 먹은 장소. 계곡물이 빙하수로 에메랄드 빛이다.>

계곡 옆에서 점심을 먹고, 발을 담갔다. 물은 너무 차가웠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그 냉기 속에, 이 얼음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곧 어퍼룩아웃(Upper Lookout)을 향해 다시 걸었다. 

빙하는 이제 점점 더 가까이 보였다. 

폭포들이 연이어 쏟아지고, 그 소리는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돌처럼 강했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수십, 어쩌면 수백 미터쯤은 되어 보였다.

어퍼룩아웃에 도착했을 때, 나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빙하의 줄어든 모습 앞에서, 감탄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현장에서 본 빙하의 모습은 마치 '마지막 잎새'가 힘겹게 붙어있는 듯 했다.

'정말 이 속도면 10년내에, 아니 5년내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나도 모르게 성서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떠올랐다. 

40일 밤낮 비가 내려도, 물이 턱 밑까지 차올라도 위기를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모습을 보며 '미친사람' 취급을 했다. 

심지어 비가 쏟아질때 노아가 사람들에게 방주에 올라타라고 소리쳐도 노아의 말을 '헛소리' 취급했던 일.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졌다.

 

꼭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다.

작년(2024년)에 전북 완주군내 초등학교 20여개 학교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알리는 활동을 했다.

나는 강의를 시작할때 기후위기를 가져온 현실에 대해 사과의 인사(90도)로 시작했다.

다음으로는 기후위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토론을 시작한다.

"개구리 실험입니다. 두 솥단지에 미지근한 물을 넣고 개구리를 그 속에 넣었습니다. 한 솥은 아주 천천히 물을 끓이고, 다른 솥은 아주 쌘 불로 물을 끓입니다. 개구리는 어떻게 됐을까요?"

이 물음에 대한 토론이 시작되면 초등학생들은 모두가 과학소년이 되어 답을 말한다.

다음엔 우리의 손으로 더이상 기후대응을 할 수 없는 티핑포인트(변곡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개인적으론 이미 티핑포인트를 모두 넘어섰다고 생각하기에 미래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집단지성을 통해 해결방안을 찾았으면 하는 한가닥 희망에 걸어본다.)

또 놓치지 않는 이야기가 기후정의다. 

기후위기와 관련, 지구촌 인구의 10%가 경제적 최상위 부유층이라고 한다. 부자와 가난한자를 나눌때 3(부자):7(가난한자)의 법칙을 적용한다.

10명 중 7명은 기후약자에 해당한다. 이들의 위기는 누구의 책임일까?하는 문제가 토론의 한 주제다.

마지막으로는 하버드대학에서 했던 '저수지 시뮬레이션 게임'을 한다.

규칙은 모두에게 똑같은 양의 저수지를 무상으로 나눠준다. 물을 쓰는 것은 자유.

그런데, 미래세대를 위해 내가 가진 물의 30%는 반납해주길 요청한다. 반납은 자유.

이 게임을 학생들에게 했을때 결과는 참담했다.

학생 20명중 6명(10명중 3명)은 물을 반납하지 않았고, 14명의 학생은 반납했다.

과연 저수지물은 어떻게 됐을까? 

하버드대 시뮬레이션도 같은 결과를 보여줬다.

'결과는 모든 물이 말라버렸다.'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물론 나부터 내 자신부터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다른이에게 강요할 부분도 아니다.

요즘은 기후위기 강의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올때마다 겁이 덜컥 난다.

어쩌면 이런 혼란이 더이상 기후위기 강의를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내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면 나아가지 못할 듯 하다.

롭로이 2010년도.jpg

20250307_133220.jpg

<2010년 위. 2025년 아래. 같은 장소의 비교사진이다. 2010년도 사진은 Flickr블로그에서 가져왔다.>

빙하 앞에 앉아 30분을 앉아 생각했다.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한 것들이, 결국 우리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고.

우리는 너무 늦게 후회하고, 너무 느리게 반성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나는 가능성을 믿고 싶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빙하가 파괴가 아닌 회복의 방향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자연은 나에게 매번 묻고 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은, 단지 플라스틱 하나를 덜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를 바꾸는 데 있다고 믿는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 더 적게 소비하는 습관, 그리고 눈앞의 이익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선택.

오늘 내가 본 건 빙하가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었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우리도 조용히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위에 다시 삶을 쌓아올릴 수 있는 존재 역시 우리다.

편리함과 생존 사이, 소비와 지속 사이,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 서 있다.

롭 로이 빙하에서 배운 것은 단 하나. 

우리가 정복해야 할 건 자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라는 것.-

그것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신이고, 다시 살기 위해 돌아봐야 할 방향이었다.

20250307_152600.jpg

<트래킹을 끝내고 빙하수에 발 담그니 피로가 한꺼번에 날라가는 기분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