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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경제 공공부문 비정규직, 짤리면서 돌고도아...“1월이 무서워”

윤지연(참세상)( newscham@newscham.net) 2012.01.10 15:40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매해 연말이 두렵다. ‘계약기간’에 묶여 근로하는 이들에게, 연말과 연초는 ‘계약해지’냐 ‘계약갱신’이냐의 고민을 가져다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벌써 지난 12월 30일, 인천공항세관 노동자들을 비롯해 구로구 방문간호사, 노사발전재단, 학교 청소노동자, 기간제 교사 등 전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방적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 만에 무더기 해고가 속출한 꼴이다.

 

▲참세상 자료사진


정부 산하 공공기관 A사에서 근무했던 김성하(가명,28) 씨 역시 지난 12월 30일, 갑작스럽게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미 회사 간부와 구두로 계약 갱신을 약속했던 터라 당황스러움은 더욱 컸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나 서울시의 비정규직 무기계약직화 정책 역시 김 씨에게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간제로 계약을 갱신해 일을 하고 있는 김 씨는, 2년 미만의 계약직 노동자로 일자리를 옮겨 다니는 처지여서 정책 시행과 상관없이 현장에서 숱한 고용불안과 편법에 의한 차별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계약 언급해놓고, 계약 마지막 날 ‘해고’ 통보
 
김 씨는 정부 산하 공공기관과 2011년 12월 말까지 3개월간의 고용계약을 맺었다. 김 씨의 업무는 업무 보조 일로, 출산휴가 대체인력으로 투입된 형태였다.

 

계약기간이 끝나갈 무렵인 12월 말, 김 씨의 담당 상사는 계약기간 연장을 권해왔다. 때문에 김 씨 역시 재계약을 염두하고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계약 만료일인 12월 30일, 상사는 갑작스럽게 김 씨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황당했어요. 근무 태도가 마음에 든다며 구두로 내년까지 같이 일하자고 해서, 저도 다른 직장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근데 12월 30일에 갑자기 저에게 대체인력을 한 명도 뽑지 않겠다면서 계약 해지를 통보하셨어요. 대체인력 예산을 다른 사업에 쓰기로 했대요.

 

사실 재계약을 요구하셨을 때, 재계약 시 임금이 삭감될 거라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현재 월급은 세금 다 떼고 140만 원 정도 받고 있는데, 예산이 축소됐는지 월급이 더 깎일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감안한 상태였죠.”
 
현재 김 씨가 일하는 공공기관은 정규직과 무기계약직, 수탁직, 기간제 노동자들이 혼재해 일을 하고 있다. 수탁직은 정부 기관에서 프로젝트 사업을 받아 1년 단위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수탁직 노동자들은 정부 기관에서 1000만 원짜리 사업을 떼어주면, 거기서 인건비를 책정해 계약기간 동안만 쓰는 노동자들이예요. 이들은 정규직, 무기계약직과 사무실 층도 달라요. 대부분의 회의는 같이 진행하지만 내부 주요 회의는 배제가 돼, 수탁직 노동자들이 소외감이나 괴리감을 느끼더라고요. 수탁직 노동자들은 10명 정도 있었는데, 연말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3명 정도예요. 나머지는 2주 정도 쉬었다가 다시 계약을 갱신해 일을 해요. 정부 예산으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1월 첫날부터 돈이 들어오지 않고, 특히 계약 시 1년을 채우지 않기 위해서기도 하죠. 이들은 다시 계약을 하면 연장해서 근무하는 거고, 계약이 안 되면 잘리는 식이예요.
 
무기계약직도 있는데, 사실 ‘무기계약직’이라는 게 있는 줄은 이 곳에서 처음 알았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 한 명이 무기계약직인데, 정규직 공채인줄 알고 왔는데 무기계약직이더래요. 가끔 내부에서 무기계약직 공채를 하기도 해요. 공채를 하면 수탁직들이 응시를 하고, 외부에서도 응시를 해요. 공채도 아무나 응시를 할 수 없고 실적이 있어야 해서 저 같은 사람들은 자격도 안 되죠. 수탁직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 어려워요. 저번 공채에서도 외부에서 사람을 뽑았으니까요.”

 
공공기관 비정규직...2년 이상 근무하기도 힘들어
 
그나마 A사는 이전에 근무했던 공공기관 B사보다는 월급이나 근무환경이 괜찮은 편이었다. 김성하 씨가 지난 2010년부터 1년 조금넘게 근무했던 B사는 모든 면에서 열악한 조건이었다.

 

김 씨는 2010년, B사에 행정인턴으로 입사했다. 업무보조 역할을 하며, 일급제로 임금을 받았다. B사는 12월말, 김 씨에게 계약 연장을 요구했으며, 김 씨는 회사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이 곳은 임금이 너무 열악했어요. 계약서상 기본급이 113만원이었거든요. 계약할 때 당사자와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기준을 적용해 임금을 책정했어요. 경력이 없으면 C급, 1년~3년 경력이면 B급, 3년 이상이면 A급으로 구분 돼 있더라고요. 계약을 하고 1월 2일부터 일을 했는데, 계약서상에는 1월 5일부터 2011월 말까지라고 나와 있어요. 1년을 채우면 퇴직금 등 예산이 들어가니까 일부러 며칠을 빼고 계약을 하더라고요.
 
월급이 너무 적으니까, 회사에서도 초과수당을 꽉 채워서 받아가라고 하더라고요. 초과수당이 시간당 6500원이거든요. 그래서 야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수당 꽉 채우면 한 달에 130만원 정도 받았어요.”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은 기간제법에 명시돼 있는 원칙이지만, 정작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2년 이상 근무할 수 있는 환경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특히 공공기관에서 다수 존재하는 보조인력들은 2년 이상의 근무가 사실상 제한돼 있으며,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이 곳은 보조인력 계약직이 많아요. 서울시에서 받아서 하는 연구가 많거든요. B급이나 A급들은 석박사 이상 연구원들이고, 나머지는 보조업무 종사자예요. 하지만 이 곳에서 2년 이상 종사할 수는 없는 구조예요. 계약서 자체를 2년 이상으로 계약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이곳에서 2년 이상 계약직으로 일한 사람이 없는 걸로 알아요. 보조 인력 계약직들은 사실 운영이나 업무 보조로 알고 들어오는데, 실제 업무는 윗사람 보필이나 자질구레한 일이어서 커리어가 쌓아지지 않아 2년 이상 버티기 힘들어요. 고용도 불안하고요.

 

경영팀에서 행정업무를 하던 20대 여성이 잘린 적도 있어요. 시에서 예산이 줄었다고요. 그 사람이 하던 업무가 문서수발이나 문구류 구비 등이었는데, 기존 직원들이 업무를 나눠서 하고 있어요. 사실 공공기관은 서울시나 정부 정책이 하나만 바뀌어도, 예산이 다시 책정되거나 감사가 나와도 전체가 요동치는 분위기예요. 예산이 깎이면 우리 같은 기간제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가 제일 먼저 잘려나가죠.”
 
정부와 서울시의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면피’조차 안 되는 ‘허당’ 정책

 
전국 공공부문 기관 1만 490개에 대한 정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접고용 기간제는 17만 6646명(51.9%)에 달한다. 시간제는 5만 4360명(16%), 간접고용은 9만 9643명(29.3%), 재택이나 일용 등은 9,962명(2.9%)로 집계되고 있다.

 

이처럼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정부는 작년 11월 29일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을 발표하고 나섰다. 이번 대책은 공공부문 전체 비정규직 34만 1천 명 중 9만 7천명을 무기계약직화 하겠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무기계약직화 대상은 2년 이상 근무한 ‘상시, 지속적 업무 종사자’ 중에서도 ‘직무 분석, 평가 기준에 따른 일정기준 해당자’로 제한 돼 있다. 때문에 공공기관에 만연돼 있는 수탁이나 업무보조 기간제의 경우, ‘무기계약직’으로 선별되는 것조차 어려울 수밖에 없다.
 
또한 고용노동부는 오는 1월 12일, 무기계약직화 기준을 각 기관에 시달하고, 해당 기관은 또 다시 선별을 거쳐 일정기준 해당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하지만 기관조차 2년 이상 계약 갱신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수의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2년 미만의 고용계약을 끝으로 해고의 위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결국 기간제법에 명시된 정규직화 대상자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형태여서, 사실상 해고 위협에 시달리는 기간제, 용역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용에 사각지대에 머물게 되는 셈이다.

 

특히 서울시는 올해 산하 기관의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역시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 정책과 유사하게 진행한다는 방침이어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은 더디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는 “기간제법에 따라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되어야 하지만, 정부는 차별적인 편법을 사용해 이들을 ‘무기계약직화’하고 있다”며 “오는 12일 고용노동부가 각 기관에 시달할 예정인 무기계약직화 조건 역시 ‘상시적 업무에 속하는 자’라는 편법 기준에 따라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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