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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야구 방망이로 맞았던 제 과거가 떠올랐습니다"

뇌병변 1급 장애인이 전북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한 사연

문주현( jbchamsori@gmail.com) 2017.06.20 20:43

6월 20일 오전 하늘은 흐렸지만 전날 폭염 탓인지 전북도청 앞마당은 뜨겁게 달궈졌다. 달궈진 앞마당에는 고급 중형차와 이를 가로 막고 있는 전동 휠체어가 눈에 띄었다. 중형차는 크기로 보면 약 1/10 수준의 전동 휠체어 앞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전북 전주의 000주간보호센터와 관계 시설에 대한 민관 합동감사와 인권실태조사를 전북도가 실시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고급 중형차를 막고 있는 전동 휠체어의 주인 이연호(32)씨가 말했다. 그는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장애인 폭행... 민관 합동감사 및 인권실태조사 실시하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19일부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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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호씨가 19일부터 전북도를 상대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최근 장애인 폭행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전주의 한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에 대한 감사 및 인권실태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노컷뉴스는 <‘장애인 보호시설에 무슨 일이?’...지적장애인 폭행 의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일어난 폭행사건을 보도했다.

30대의 지적장애 여성이 이 주간보호센터에서 심하게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보도다.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전주에 사는 김모(여, 59)씨가 주간보호센터에 있다가 저녁에 집에 온 지적장애 1급인 딸 진서윤(29, 가명)씨의 몸에서 심한 멍 자국을 발견했다. 매일 딸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는 김씨는 주간보호센터의 직원이면서 딸 서윤씨를 맡았던 A씨를 가해자로 지목해 경찰에 고소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A씨가 사회복지사 및 특수교사 자격이 없는 것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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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1급의 20대 여성이 전주의 한 주간보호센터에서 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부모가 촬영한 딸의 상처. 경찰은 이 사건을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현재 A씨와 센터 측은 폭행 내용 일체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CCTV 등 현장 상황을 살필 자료도 없는 상태. 그러나 경찰은 거짓말탐지기와 멍이 도구 등에 의해 났다는 것, 서윤씨의 심리 검사 등을 토대로 혐의를 인정했다. 그리고 A씨를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1인 시위를 시작한 이연호씨는 뇌병변 1급 장애인이다. 서윤씨와는 안면이 없지만, 시설에서 당한 폭행에 대한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1인 시위에 나섰다. 3살부터 전북 완주군의 한 생활시설에 입소하여 15년을 생활시설에서 살았다. 아니 구금되다시피 살았다. 이번 사건은 잊고 살았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도청 앞에서 폭염에도 불구하고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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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이연호씨

이연호씨는 장애인을 보호해야 하는 공간에서 폭행이 벌어졌다는 것에 치를 떨었다. 그도 불과 15년 전에는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생활공간에서 생활교사에게 심각한 폭행을 당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맞아 기절을 했어요.”

생활교사에게 맞은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사춘기가 오면서 억압된 공간에 대한 답답함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저항하곤 했던 연호씨는 자주 폭행을 당했다.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6시가 되면 기도원에서 기도를 하는 것은 한창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하는 청소년에게 가혹한 일과였다. 연호씨의 저항이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좀 더 자는 것 정도였다.

“맞아도 신고를 할 수 없었어요. 겨우 신고를 한다고 해도 경찰은 믿어주지 않죠.”

연호씨 옆에 있던 동료가 말을 거들었다. “(연호가) 머리가 이상하니까 그냥 하는 말이라고 원장이나 관리자가 말을 하면 경찰도 그 말을 믿고 가요.”

장애인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사회. 연호씨가 이번 사건에 분노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폭행 당한 흔적(몸의 상처와 심리 검사 등을 통해 폭행이 확인되는 것)은 드러났지만 피해자가 지적장애라는 이유로 사회는 그 폭행을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어쩌면 피해자 서윤씨의 부모 김씨가 분노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김씨는 “서윤이가 폭행을 당할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잠에서 깨어납니다”면서 “아이가 겪었을 아픔과 고통을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고 참소리와 통화에서 말했다. 김씨는 “(CCTV 등 직접적 증거가 없다고) 지금까지 부인하고 있습니다”면서 “집에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하니 너무 억울합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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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호씨의 1인 시위는 노숙 농성 방식으로 진행된다. 26일부터는 단식 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래서 민관 합동 실태감사가 더욱 필요합니다.”

연호씨의 1인 시위는 노숙 농성 방식이다. 연호씨가 막아선 중형차는 전북도 정무부지사의 관용차다. 연호씨는 그 관용차 옆에 돗자리를 깔았다. 밤에는 모기장 텐트에 의지해 잠을 청한다. 잠이 올 턱이 없다. 매 끼니는 값싼 편의점 도시락이나 김밥으로 해결할 예정이다. 장애인 수당 등을 통해 얻는 한 달 수입은 고작 70여만 원. 공과금과 방세 등을 빼면 약 20만원이 연호씨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다. 그 돈으로는 김밥도 부담이다.

“26일부터는 밥도 먹지 않을 예정입니다.”

곡기를 끊기로 결심했다. 19일 전북도 관계자들과 면담을 가졌다. 지난 6월 초 요구한 000 주간보호센터를 비롯한 관계 시설들에 대한 ‘민관 합동 감사 및 인권실태조사’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한 것이었다.

이연호씨는 “인권침해 사건이 벌어지면 항상 돈과 관련되어 있었다”면서 “000 센터와 시설들은 이번 폭행사건 외에도 몇몇 의혹들이 더 제기되었고, 이에 대해 전북도에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민관 합동 감사가 필요한 이유다. 연호씨에 따르면, 현재 전북도는 합동 감사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이다.

연호씨는 26일까지 전북도가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매번 반복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인권유린. 연호씨는 그 악순환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의 1인 시위가 과연 폭염을 견디고 장애인 인권 보호의 씨앗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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