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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의 여걸, 2선의 민주당 선대위원장 추미애후보가 정치신인인 시민운동가 김형주 에게 패배한 사건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의 정치적 사망을 상징하는 일대사건이었다. 모인터넷신문에서 이번 총선의 키워드를 '탄핵, 여성, 계급'이라고 꼽을 정도로 중요한 '여성'으로서 화제와 관심을 불러모았던 뉴스메이커중의 하나였던 우리의 추다르크는 온몸을 던져 50년전통의 평화개혁정당 민주당을 살리고자 2박 3일간의 3보1배도 마다하지 않았건만 왜 처참하게 패배하였는가? 반대로 독재자의 딸로서 오랫동안 정치활동조차 하지 못했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한나라당이 차떼기정당의 악명과 방탄국회, 탄핵정국속에서 절대위기에 봉착하자 구원투수로 등장한뒤 안정적으로 차기 당대회에서도 한나라당 대표가 될 수 있는 발판인 121석이나 얻으면서 자리를 안정시킬 수 있었는가?


어떻게 죽은 박정희는 산 삼보일배를 이겼을까?
- 박근혜의 귀환과 추미애의 몰락의 비밀


박근혜와 추미애는 사실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해' 나서서 '지역주의'를 무기로 사용한 '사실상의 여성 당대표'이라는 점에서 완전히 같은 처지였다. 그런데 추는 죽고 박은 살았다. 무엇이 이 둘의 운명을 갈랐을까?

추미애는 잘 알려진대로 '정치인다운 정치인'으로 알려진 드문 여성이고 스타덤적 리더쉽이전의 카리스마적 리더쉽에서도 일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녀가 민주당이 탄핵정국속에서 완벽한 위기에 봉착하자 조순형대표로부터 전권을 넘겨받으려다 실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3보1배라는 의외의 전술을 활용하여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국회로 재진입하는 듯했다. 그래서 민주당은 20석이상의 원내교섭단체, 심지어는 30석정도를 내다보기도 하였고, 그 30석속에 추미애는 당연히 들어있었다.

추미애의 실패는 지역주의에 대한 비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 호남의 지역주의는 군사정권 시절 호남의 '야당형'의 '저항적 지역주의'가 '5.18정신을 출발점으로하는 민주주의'와 상호결합하며 일정한 긍정적 효과를 산출하는 측면도 없지않았으나 김대중 집권과 노무현정권을 거치면서 이미 내용이 변화하고 있었다. 김대중집권이후 지역주의는 이미 '지역성장이데올로기'를 축으로 하는 '여당형'의 '보수적 지역주의'로 전화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광주항쟁을 출발점으로하는 민주주의 정신은 기본적으로 유지되었지만 김대중정권이 강력하게 주장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의 침탈을 받은 '개혁이데올로기'로 재포장되었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호남인의 강력한 지지는 김대중정권 시기를 경과하며 호남대중들의 이데올로기 지형이 이미 '보수적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 영향을 받은 민주주의'로 변형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변형된 지역주의'는 안정을 깨뜨리는 어떠한 정치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DJ적자정당'으로서의 민주당과 추다르크가 DJ의 유산을 잇는 작업은 민주당간판을 유지하고, DJ의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방법이나 광주에서 3보1배를 하는 것으로는 애초부터 이루어지기 어려웠다. DJ의 혈통의 계승은 의외로 현실의 핏줄이나 이름과는 무관하게 부산출신의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이미 만들어놓은 정치지형위에서 장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적 지역주의'는 아무리 그것이 적은 것이라하더라도 지키기 위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지킬 능력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명분이 좀더 있는 쪽에 힘을 싣자는 대중들의 기대심리 그 자체이다. '개혁이데올로기'는 처참한 민중들의 삶을 개선시켜줄만한 특별한 대안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이든 좋으니 좀 '바꾸자'는 단순한 심정들의 종합물이다.

'대통령탄핵'은 호남의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로 포장된 민주주의'를 건드렸다. 호남민중들은 분노하고 탄식하였다. DJ정신의 구현체로 지지를 보냈던 민주당에게서 호남민중들은 즉시 지지를 거두어들였다. 세가지 수준의 문제의식이 작동한다.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핵심인 '민중을 거스르는 대의제권력'에 대한 문제지기가 작동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깊이있게 고민되는 문제는 아니다. 현실에서는 첫째로, '개혁이데올로기'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을 주도할 대통령이라는 권력체를 무너뜨려 '개혁체제'를 가로막고 '불안정체제'를 조성하는 '탄핵세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이고 둘째로는 '보수적 지역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지역성장'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여당'을 방어하고 키워주어야한다는 열망을 품게한 것이다.

민주주의와 지역주의, 개혁이데올로기의 3층위가 상호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호남지역에서조차 추미애와 민주당을 거꾸러뜨렸다. 호남민중들은 자신들의 대리인으로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선택하였다. 지역주의는 변형되었다. 민주주의는 충분히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보수적 지역주의와 개혁이데올로기 내부로 숨어들어갔다.

추미애와 민주당은 호남민중들의 의식과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은 응분의 댓가를 받았다. 추미애는 낙선했고 민주당은 전남의 5석이외에는 지역구 의석을 얻지못해 '전남자민련'이 되었다. 특히, 추미애는 민주주의의 심판의식과 '개혁이데올로기'가 가장 정교하게 조합된 주민들인 서울지역에서 출마하였고 서울지역 주민들은 훈련된 정치인으로서의 추미애 대신에 잘은 모르지만 차리리 정치신인을 자신들의 대표로 내세웠다.

반면 대구광역시 달성군 선거구에서 70%의 지지를 얻어 박근혜는 당선되었고, 붕괴직전이었던 한나라당은 121석의 제1야당으로 새진용을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대구경북지역을 평균 60%의 득표율로 싹쓸이하고 부산, 경남, 울산등지에서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지역을 석권하였다. 똑같이 지역주의적 득표전략을 펼쳤는데 박근혜와 한나라당은 왜 성공하였을까? 대통령 탄핵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국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실제 탄핵이 이루어졌을 때 대구경북을 포함하는 영남지역에서도 촛불시위와 한나라당 규탄시위가 빈발했다. 그런데도 왜 '미워도 다시한번'이라는 투표행태가 만들어졌을까?

이것은 영남지역주의의 특성과 역사와 연관이 있다. 영남지역주의는 태생부터 '보수적 지역주의'였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지역주의는 민주주의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거기에 영남지역주의는 김대중집권 시절부터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데올로기'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보수주의'가 더해지면서 더욱 보수화되었다. 그러므로 민주주의가 밑바닥에 갈린 호남지역주의가 '개혁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면 열린우리당 지지성향이 나오지만, 민주주의의 동력이 실리지 못한 영남지역주의가 '보수주의'의 추동력위에서 '개혁이데올로기'를 지지하면 한나라당 지지성향이 나올수도 있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영남지역주의는 '차떼기' '탄핵'등등에 할말을 잃고 한나라당 지지를 거두어들여야할 상황에 처했다가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대표가 되자 다시 생명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 대구경북지역을 중심으로 한나라당은 다시 반격에 나서기 시작하였고 이는 시간이 지나자 영남지역으로 확산되었다. 부산경남지역은 열린우리당이 가볍게 이길 것으로 생각했다가 부산경남지역마저 한나라당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 확인되기 되었다. 여기에 서울 강남지역에서부터 '부자들의 지지'가 확인되기 시작하였다. 말도안되게 돈을 잘버는 사람들이 말도안되는 정치적 행태를 보인 사람들을 변호하는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는 대구경북은 물론이고 부산경남지역에서도, 강남에서도 승리했다. 의석수는 약간 줄었지만 개헌저지선을 확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한번 새롭게 하는 성과를 냈다. 홍준표, 김기춘등 수구보수정치는 생존하였다. 사라져야할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말이 안된다. 말이 안되는 일이 반복되면 그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이전의 법칙으로 해명되지 않는 그 무엇, 새로운 힘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야하지않을까?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17대총선에서의 박근혜의 무사귀환에서 한국사회의 파시즘적 징후를 읽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파시즘은 말도 안되는 일들이 반복될 때, 즉 규칙이 실종되었을 때 '강력한 규칙'을 세우기 위해 등장한다. 어쩌면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현재 한국사회의 극단적인 사회문제들, 경제적 어려움과 높은 자살률, 급증한 신용불량자와 청년실업률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식 가운데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 개혁방식에 대하여 문제제기하는 새로운 형태의 파시즘적 대안을 선택하는 집단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일수도 있다.

17대총선에서야 한나라당이 지역주의와 결합하여 생존하는 전략을 찾았고, 워낙 지역주의청산, 수구정치 청산의 목소리가 높아 더 이상의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영남지역을 많이 넘어서서 확장되지는 못하였지만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그 자체로 내포한 법칙인 '고용없는 성장'과 '선성장 후분배' 기조 때문에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는 상황이고보면 한나라당식의 수구보수주의와 청년실업자, 신용불량자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한 것이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과반수 의석 점유는 열린우리당에 무한책임을 부과하여 만약 대중들이 열망하는 '성장과 안정'을 주지못할 경우 열린우리당의 신자유주의개혁에 기대를 걸고있는 대중들이 일시에 다른 대안을 찾아나설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때 다른 대안으로 등장할 가능성 가운데 한나라당의 파시즘적 변신과 대중적 지지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고 이 경우 매우 파괴적인 상황이 올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추미애의 삼보일배는 누군가를 살리는데 실패했다. 그것은 전북지역 총선토론회에서 어떤 후보가 말한대로 문규현신부와 수경스님, 이희운목사, 김경일교무등 '도인'들이 한 성스러운 일을 도가 높지않은 정치인이 한 것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삼보일배가 아니라 소신공양을 했어도 불가능한 일을 했기때문이었다. 이미 호남주민들은 추미애와 민주당을 버렸다.

그러나, 영남주민들은 한나라당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었고, 박근혜가 대표가 되자 얼근 구원하였다. 영남지역주의 특성이 박근혜를 구했고 나아가 한나라당이 예비파시즘당이 되는 운명을 점지하였다. 이 한나라당은 파시즘당으로 성장하든지 후천적으로 교화되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과 근본에서는 유사하고 정치스타일만 다른 '개혁을 외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정당'으로 거듭나든지 할 것이다. 죽은 박정희가 박근혜를 구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박근혜를 살린 것 같지만 박근혜의 산 몸에 죽은 박정희의 영혼이 빙의(憑依)하는 것으로 세간에서는 이를 귀신들렸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추미애의 삼보일배는 누구도 살리지 않았으므로 더 이상 해를 입힐수 없다. 그러나, 죽은 박정희는 자신의 딸을 살려 자신의 파시즘적인 정치이데올로기의 재생산 대리인으로 삼았으므로 한국사회에 엄청난 불행의 폭풍을 몰고올 수도 있다. 모름지기 죽어가는 것은 죽어가게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구시대 정치의 불행의 싹이 새시대 정치적 코드인 '여성'을 매개로 피어오르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총선결과, 생각가는대로 썰풀기는 3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첫 번째 이야기 박근혜 vs 추미애
두 번째 이야기 노회찬 vs 김종필
세 번째 이야기 이남순 vs 단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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