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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특수계급을 양산하는 법비들의 나라

법을 악용하는 행위는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

윤현식( icomn@icomn.net) 2021.08.23 10:55

  삼성의 3대 세습자인 이재용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어 뇌물공여, 위증,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몇 차례에 걸친 법원의 판결이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하다가, 결국 2021년 1월 뇌물혐의 등이 인정되면서 징역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이 판결은 당시에도 상당히 논란거리였다. 현행 형법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의 법률에 따라 이재용의 형량을 계산하게 되면, 아무리 형량을 줄인다고 한들 원칙적으로 5년 이상 징역의 선고가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재용이 초범이며, 횡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때문이었다는 이유로최저형량의 절반까지 깎아서 형을 선고했다.

  실제로 이재용의 범죄행위를 '초범'이라고 하기엔 당치 않은 전례가 너무나 많다. 이재용은 삼성승계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발행, 삼성SDS 등 계열사 전환사채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등을 통해 막대한 차익을 얻으면서도 조세를 포탈하는 등의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이후에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나 주가조작을 통한 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 등 온갖 범죄에 연루되었다.

  이들 각 사건은 삼성의 막대한 자금력 및 법조 인맥 동원을 통해 적절히 무마되었다. 그 결과 이들 사건을 이유로 이재용이 처벌받은 일은 없다. 법원이 이재용을 구속하면서 감형사유로 내세운 '초범'이라는 이유는 범죄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처벌 받은 전례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이재용을 '초범'으로 만들어준 역할의 8할은 법원이 했던 것이다.

  법정에서 이처럼 재벌들에게 특혜에 가까운 관대한 처벌을 하는 데 대한 비판은 이전부터 존재했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SK 최태원 회장에 대한 가석방을 추진할 때에는 아주 강력한 비판이 있었다.

  "재벌 대기업 총수나 임원들은 그동안 국가 경제에 기여해온 공로나 앞으로 국가 경제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 때문에 이미 법원에서 형량을 정할 때부터 엄청난 고려를 받고 있고, 국민들이 볼 때는 특혜를 받고 있다."

  즉 재벌 총수들에게는 일반 국민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특혜를 법원으로부터 이미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현직 대통령인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였다.

  그때 재벌 총수에 대한 가석방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이미 형량에서 많은 특혜를 받고 있는데 가석방 특혜까지 받는다면, 그것은 경제정의에 반하는 일이다"라고 선언했다. 바로 이 말을 한 대통령의 치하에서 이재용에게는 형량의 60%를 채워 요건을 충족했다는 명분으로 가석방이 이루어졌다.

  이재용은 최저형량의 절반에 불과한 형을 받는 특혜를 받았다. 그리고 이 형량마저도 60%를 채웠다는 이유로 영어의 몸에서 풀려났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특혜 외에도 이재용에는 또다른 특혜가 부여된다. 가석방 출소자에게는 취업이 허용되지 않지만 이재용에겐 그런 제한쯤은 가볍게 무시된다.

  이재용은 출소하자마자 바로 삼성전자 사옥으로 들어갔다. 언론은 이를 두고 일제히 '경영복귀'로 파악했다. 언론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들은 이재용이 업무를 시작했다고 이해했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행보를 두고 취업제한 규정을 어긴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대한민국 법무부의 수장인 박범계 장관은 "무보수, 비상근, 미등기 임원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취업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하면서, 이재용은 이에 해당하므로 취업한 것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박범계 장관은 판사 출신이다.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동안 법으로 밥을 먹고 살았던 사람이다. 지금은 법무부를 지휘하고 있다.

  그런 박 장관이 이재용의 경영활동이 문제 없음을 두둔하고 나선다. 그런데 이렇게 따지면, 그동안 대부분의 재벌 총수들은 업이 없었던 백수들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보수야 스톡옵션으로 끊으면 그만이다. 총수들에겐 어차피 상근이라는 개념이 없다. 게다가 그동안 책임회피를 위해 미등기 임원으로 남았던 일이 어디 한 두 건인가? 그런데도 그들이 법정에 서게 되면 한결같이 그동안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뛴 공로를 참작받는다.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창설을 부정한다(헌법 제11조 제2항). 평등권의 요체 중 하나다. 하지만 이처럼 사법부와 행정부가 앞장서서 그 이익을 보호하는 특수계급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고 노회찬 의원이 일갈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에서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한 것이 아니라 만 명만 평등한 듯하다.

  쿠데타 정권에 부역했던 김기춘 같은 법 전문가들을 두고 '법비(法非)'라 일컬었던 때가 있었다. 법을 자의적으로, 편의적으로 해석하면서 아전인수와 곡학아세로 권력에 빌어붙었던 법조인을 비난하는데 쓰였던 말이다.

  삼성 재벌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법을 악용하는 행위는 헌법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특수계급을 양산하는 법 전문가들 또한 '법비'라 불리워도 할 말이 없을 거다. 박범계 장관을 비롯한 이 정부의 주요 법 전문가들이 '법비' 소리를 듣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윤현식/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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