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오피니언

『주역』 ‘화천대유(火天大有)’의 원리

김영문( icomn@icomn.net) 2021.10.18 09:35

huachendaeyu.jpg

 

‘화천대유(火天大有)’와 그 자회사 ‘천화동인(天火同仁)’ 탓에 각종 매체에 『주역』에 대한 언급이 대폭 늘었다. 이미 많은 기사나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화천대유’는 『주역』 상경(上經)의 14번째 괘다. 상괘가 불(火)과 태양을 나타내는 이(離)이고, 하괘가 하늘(天)을 나타내는 건(乾)이기 때문에 ‘화천(火天)’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태양이 중천에 떠서 삼라만상을 크게 비추며 점유하므로, 이 괘상(卦象)의 의미를 취하여 ‘대유(大有)’라고 부른다. 음력 14일은 보름이 되기 전 날이라 ‘화천대유’ 괘는 아직 완전히 차지 않은 미완의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달은 보름(15일)에 만월이 되어 점점 기울게 되므로, 아직 완전히 차지 않은 14일 달은 채움과 비움의 원리 중에서 가장 길한 형상으로 인식된다. ‘화천대유’ 괘가 『주역』의 64괘 중에서 매우 길한 괘로 인정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천화동인(天火同仁)’은 ‘화천대유’ 바로 앞에 나오는 괘다. 『주역』 괘의 순서는 모래시계처럼 아래와 위를 뒤집는 도전괘(倒顚卦)가 한 쌍을 이룬다. ‘천화동인’을 밑바닥에서 거꾸로 뒤집으면 바로 ‘화천대유’ 괘가 된다. 따라서 ‘천화동인’은 ‘화천대유’와 반대로 상괘가 하늘이고 하괘가 불이자 태양이다. 하늘과 태양은 둘 다 상승하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서로 의지하고 도와주며 상승 작용을 한다. 하늘 아래에 뜬 태양(天火同仁)은 동반 상승하면서 점점 하늘 높은 곳까지 솟아오른다.(火天大有). 따라서 ‘천화동인’ 괘는 하늘과 태양이 뜻을 함께하며 서로의 상승을 도와주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도 목표와 지향을 함께하며 서로 협력하고 이끌어주는 ‘동인’을 의미하게 된다. 문예지를 흔히 ‘동인지’라고 하고 그 구성원을 ‘동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여기에 연원을 두고 있다.

이렇게 보면 ‘천화동인’과 ‘화천대유’는 선한 뜻으로 함께 협력하고 이끌어주며, 중천에 뜬 태양처럼 천하를 비추는 매우 길하고 아름다운 괘임을 알 수 있다. ‘천화동인’ 괘의 단사(彖辭)에는 “아름답고 밝아서 굳세며, 치우침 없는 올바름으로 호응하니, 이는 군자의 올바름이다.(文明以健, 中正而應, 君子正也.)”라는 구절이 있고, ‘화천대유’ 괘의 상사(象辭)에는 “악행을 막고, 선행을 널리 알리고, 하늘의 아름다운 명령을 따른다.(遏惡揚善, 順天休命.)”라는 구절이 있다. ‘천화동인’과 ‘화천대유’가 좋은 운을 예비하고 길한 미래를 담보하는 밑바탕에는 바로 음습한 계략과 검은 술수를 거부하고 밝은 행실과 올바른 의지를 구현하는 천지자연의 선한 이치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실 『주역』의 모든 괘를 관통하는 이러한 이치는 『주역』을 구성하는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최초의 『주역』은 아마도 8괘(八卦)와 64괘(卦) 중심의 애매모호한 점사(占辭)들을 모아놓은 주(周)나라 시초(蓍草) 점술 참고서 또는 해석서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공자를 비롯한 후세의 학자들은 『주역』의 8괘와 64괘의 작동 원리에서 천지자연, 우주만상, 정치사회, 인간만사의 보편 원리를 연역해냈다. 이는 예컨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꽃이 피면 열매를 맺는다.” “달이 차면 기울고, 그릇이 가득 차면 넘치게 된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기쁨 끝에 슬픔이 온다.” 등등의 관용어에 관통하는 원리와 같다. 이것이 바로 『주역』의 원리다. 너무나 평범하고도 쉬운 이치다. 여기에 무슨 신비하고 불가지한 마법이나 주술이 끼어들 여지는 없다.

『주역』의 바탕에는 이처럼 만물과 만사가 늘 변화한다는 ‘변역(變易)’, 늘 변화하는 과정에도 변하지 않는 원리가 관통한다는 ‘불역(不易)’, 이러한 ‘변역’과 ‘불역’의 원리가 너무나 간단하고 알기 쉽다는 ‘간이(簡易)’의 이치가 깔려 있다. 더 쉽게 말하면 『주역』은 기본적으로 우주 자연의 운행이 조화롭고, 질서 있고. 선하게 순환한다는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모든 인류사의 흐름이 그러하듯 『주역』의 인식사도 불가지하고 신비한 인식 너머에 있던 『주역』의 영역을 알기 쉽고 현실적인 인지와 해석의 광장으로 끌어오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지금도 『주역』의 괘를 뽑아 현실의 궁금증을 물어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100% 믿으며 『주역』의 신비성을 과장하는 것은 어리석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고리로 해석할 수 있는 『주역』의 애매모호한 괘사와 효사가 아니라, 그것을 지금의 현실에 맞춰 타당하게 해석할 수 있는 해석 주체의 통찰력과 지혜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라는 회사를 차려 가히 천문학적인 개발 이익을 독점한 언론, 검찰, 판사, 토건, 정치인, 부동산업자 카르텔은 『주역』의 조화롭고 선한 공동선의 원리를 정면으로 위반한 채 사리사욕과 일확천금에 탐닉했다. 그들이 ‘화천대유’라는 괘명(卦名)을 통해 추구한 것은 “악행을 막고, 선행을 널리 알리고, 하늘의 아름다운 명령을 따른다”는 『주역』의 보편 원리가 아니라, 오히려 “악행을 자행하고, 선행을 막으면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령을 거스르는” 반역 행위였다. 그 자회사인 ‘천화동인’도 선한 목적을 위해 동일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협력체가 아니라, 사악한 목적을 위해 막대한 개발 이익을 자신들끼리 노나먹는 협잡범 패거리에 불과했다.

『주역』의 조화롭고 선한 원리는 팽개쳐둔 채, 단순한 괘명 차용으로 불로소득을 추구한 패거리가 엄한 징벌을 받는 것 또한 『주역』의 무서운 법칙이다. 불교식으로 인과응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이 법칙은 『주역』의 무슨 신비한 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탐욕과 불법에서 기인한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격언이지만 너무나 평범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다음 구절 또한 『주역』 「곤문언전(坤文言傳)」에 실려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평범하지만 무서운 이 법칙을 우리는 쉽게 망각하곤 한다.

“선(善)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넉넉한 경사가 있고, 불선(不善)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넉넉한 재앙이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김영문(중국문학자. 번역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문학박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