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획

2010년 12월 8일로부터 140여 일간, 기록적인 파업을 벌였던 전주 시내버스노동자들의 투쟁은 2011년과 2012년 여름에도 거리에서 계속되었다. 50여 일 간의 단식, 3보1배의 호소에도 여전히 버스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언론과 지자체의 시선은 차가웠다.


전주 시내버스노동자들은 올 해 초 단체협약에 합의하면서 일터로 복귀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막대한 보조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도, 버스운행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으며 시내버스 노동자들은 오늘도 벼랑 끝에 서 있다.

 

열린전북 특집<지역사회 난제를 파헤친다>는 그 첫 번째로, 전주 시내버스의 현실과 문제점을 짚어 본다.

 

<싣는 순서>
①시내버스노동자 ‘이 기사’의 해고사유는? _김수돈(열린전북 기자)
②추접스러워 말하기도 창피한 얘기들-전주 시내버스노동자의 현실에 대한 토로 _김영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신성여객지회장)
③버스 문제를 방기하는 행정의 문제 _오현숙(전주시의회 의원
④버스문제의 중심 바로보기 _이문옥(전주시민회 사무국장)

 

징계처분 통지서
1. 인적사항(중략)...
2. 주문: 해고
3. 징계시기: 2013년 7월 12일자 해고
4. 이유: 2013년 6월 7일, 6월 11일, 6월 13일, 6월 15일 등에 조발운행, 노선이탈운행, 무임승차, 승강장이 아닌 곳에서의 강제하차 등 버스운전원으로서 해서는 안될 행위를 하고, 다수의 사규를 위반하여 위와 같이 징계함
(이하 중략)...

 

전주의 한 시내버스 노동자 이모(52)씨가 보여준 그의 징계처분 통지서 첫머리이다. 이 노동자는 왜 해고됐을까? 명목이 “조발운행, 노선이탈운행, 무임승차, 승강장이 아닌 곳에서의 강제하차 등”이니 위반행위가 꽤나 많아 보인다.

 

이 씨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인은 단지 ‘밥’ 때문이었다. 그의 해고사유가 된 위반행위의 원인이 ‘밥’이라는 것은, 버스기사가 아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대목이다. 밥 먹자고 그렇게 많은 위반행위를 했다고? 버스 노동자들의 실상을 모르는 일반인으로선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다.

 

점심밥 먹으려다 고발당해 결국 해고

 

해고사유가 된 위반행위가 벌어진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이 씨는 당시 전주시 송천동 농수산시장에서 완주군 구이면 원안덕까지 편도 1시간 40분, 왕복 3 시간 20분 노선을 운행하고 있었다. 이 씨는 오전 11시 원안덕 종점에 도착했다. 다시 출발하는 시각은 11시 15분. 배차시간표대로 하면 이 씨가 모는 버스는 12시 55분에 송천동농수산시장에 도착하게 된다.

 

이 씨는 점심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점을 감안해 일단 노선 결행신고를 하고 평화동까지 빈 버스를 끌고 나오기로 했다. (종점에서 평화동까지 결행신고를 하게 되면 해당 구간만큼은 정규버스가 결행하는 것이 되고, 다시 평화동부터 농수산시장까지 정규 운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원안덕 종점에는 지정식당이 없고 평화동 종점에는 지정식당이 있으니 빈 버스를 끌고 나와서 식사를 하고 평화동에서부터 농수산시장까지 운행을 해야겠다고 계산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출발하려는데 종점에 나와 앉아 있던 어르신 네 분이 태워달라고 나섰다.11시 15분 버스를 타려고 11시가 못 되어 미리 나와 있던 어르신들이다. 이 씨는 이미 결행신고를 했기 때문에 그냥 빈 차로 와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11시 버스를 못 타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하지 않는가? 이 씨는 도의적으로 어르신들을 외면하고 그냥 출발할 수가 없었다.

 

이 씨는 “제가 밥을 먹으러 가야 하니, 다른 버스 탈 수 있는 승강장까지만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운임을 받지 않은 채 그냥 태워드렸다. <무임승차. 조발(일찍 출발하는 것)>

 

이 씨가 몰고 나오는 결행신고를 한 상황이라 정규노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시내버스 운행노선을 따라 나오면 버스 승강장을 외면한 채 지나야 한다. 이 씨는 버스 승강장을 거쳐 가는 도로 대신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해 버스를 몰았다. <노선 이탈> 버스를 몰고 나오던 도중 어르신들이 하차지점을 말하자 내려드린 것이 근처의 버스 승강장과는 약 5백 미터 떨어진 지점이었다.<승강장이 아닌 곳에서의 강제하차>

 

그 후 말썽이 생겼다. 버스에 태워드린 네 분 어르신 중 한 분이 동네에 들어간 뒤 자신이 내린 곳이 승강장이 아니었다는 점 등을 말씀하셨고, 이 말을 들은 마을 이장이 고발한 것이다. 어쩌면 마을이장이 고발한 것은 당연하다. 어르신들이 결행신고라든가 정규노선인지 비정규노선인지 시내버스의 운행상황을 제대로 알 리도 없고, 버스 승강장이 아닌 데에서 어르신들을 내려드렸다는 말을 전해 들으면 화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결국 회사는 징계위를 열었고, 이 씨는 해고통보를 받았다. 사유는 앞에서 적시한 대로다.

 

이후 해고무효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 씨는, 어르신들을 내려드릴 때 승강장이 아닌 곳에서 내려드린 점이 잘못이라고 반성하고 있다. “법적인 절차를 다 밟았지만, 기왕이면 어르신을 내려줄 때 버스승강장 쪽으로 전용도로를 벗어나 내려가서 내려드릴 것을... 그렇지 못한 게 잘못이다”고 이 씨는 말했다. 이것이 말썽의 발단이 되었으니 후회스럽기도 하겠다.

 

우리도 인간이다. 밥 좀 먹자!

 

얼른 생각하면, 이 씨가 점심밥을 먹기 위해 노선 결행신고를 하고 이동하려 했다는 것이 좀 무리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다. 웬만한 직장인들이나 자영업자들이 점심을 더러 늦게 먹는 경우는 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내버스 노동자들의 항변 섞인 이야기에 따르면 이들에게는 점심시간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이들에게는 밥 먹는 일조차 투쟁해야 하는 숙제가 되어 있다.

 

이 씨는 지난 5월과 6월 연거푸 점심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장거리 노선을 배정받았다. 5월만 해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던 이 씨는 6월에도 장거리 노선을 배차 받게 되자 도시락 들고 다니는 것을 아예 포기했다. 점심밥 먹기도 곤란한 불편한 노선을 두 달째 배정받고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민주노총 조합원이고 보니 회사 측에서 일부러 엿 먹이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운행시간이 빠듯한 장거리노선이기에 점심시간을 맞추기는커녕 종점에서 쉬는 시간도 빠듯하고 종점에 지정식당도 없어서 도시락을 싸오지 않고서는 도저히 식사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런 경우 회사 측에서는 기사들에게 지정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식권을 주는 대신 4천원의 식비를 지급한다. 그런데 이 씨의 경우 점심시간을 넘겨 뒤늦게 반대편 종점에 도착해 봐야 그곳에도 지정식당은 없으니 밥 때를 훨씬 넘겨서야 차디찬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며칠 동안 반복되면 설움이 북받쳐 오를 만하다. 더군다나 배차가 공평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면 분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경우다. 그래서 이 씨는 도시락 대신 식당 밥을 먹기 위해 결행신고를 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장거리 노선이 불편한 걸 다 아는데, 이런 노선은 돌아가면서 하도록 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 상식적으로도 그렇겠다. 그러나 회사 측은 상식을 지키지 않았다. 한 마디로 추잡스럽게 한 노동자를 괴롭힌 셈이다.

 

운행노선에 따라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의 버스 노동자들에겐 아침, 점심, 저녁 때 맞춰 밥 먹는 일이 투쟁이다. 여유 없이 촉박하게 빽빽이 짜놓은 배차시간표가 이들을 옥죄기 때문이다. “한 노선을 치면, 똑같은 시간을 줘야 하는데 갈 때는 1시간 20분, 올 때는 1시간 30분, 그래놓고는 돌려 와서 쉬어라. 2시간 40~50분을 뛰고 돌아 와서 10분 쉬라는데 말이 안 되죠. 그렇게 해서 시간을 못 맞추면 승객들의 불편 불만이 생기고 기사들에게 책임이 돌아가는 거죠.”

 

전주의 시내버스 운행 노선은, 긴 곳은 1시간 반에서 1시간 40분, 밀리면 두 시간이 넘기도 한다, 시간이 안 맞으면 때로 오전 10시에도 밥을 먹어야 하고 때로는 오후 3, 4시에 저녁을 먹기도 해야 한다. “도시락을 싸 갖고 다니며 종점에 도착해 잠시 쉬는 시간에 버스 문을 닫은 채 먹고 있으면, 일찍 오신 분들이 버스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불평해요. 식사시간을 못 맞춰 법규 위반을 밥 먹듯이 하게 만드는 상황이죠.”

 

버스노동자 유 모씨(48)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시간표를 짜놓는 짓은 기사들더러 요령껏 하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종점에 도착해서 조금이라도 쉬려면 과속과 신호위반, 난폭운전을 유도하는 배차 상황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기사들이 문제를 지적하면 시간을 늘려주겠다고만 하지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시간 여유를 두면 탕수(운행횟수)가 줄어들고 운행수입이 줄어드니, 이렇게 하는 거죠. 버스가 10회 운행할 것을 8~9회로 줄이면 여유시간이 생기겠지만 운행수입이 줄어든다 이거죠.”

 

소변 좀 제때 누고 살자!

 

버스노동자들에 따르면 “기사들이 안전하게 운행할 기반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전주 시내버스의 현실이다. 이들에게는 심지어 화장실 가는 일도 투쟁이다. 버스노동자 장 모씨(51)는 “장거리운행하면 습관적으로 종점 오면 소변을 본다.”고 말했다. “억지로 누기도 하고, 억지로 참기도 하고, 화장실 없는 종점에 도착하면 남의 상가에 들어가서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데 화장실이 없는 거예요.” 운행하다 오줌을 저리는 황당한 일도 겪는다고 했다. 


여유 없이 촉박한 배차시간. 이런 현실에서 정상적으로 준법을 운행하면 배차시간 제대로 힘들다는 게 버스노동자들의 하소연이다. “승객들 민원이 들어오면 왜 늦었는가 서로 이야기를 해봐야 하는데, 기사 의견은 무시되고 징계하고 배차를 빼버리죠. 그러면 월급이 줄어들어 생활이 안 되는 거예요.”

 

밥과 화장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이 두 가지가 시내버스 노동자들에게는 절실한 요구다. 한 마디로 “추잡스러워서 말하기도 뭐한”현실이다. 보통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인 이 두 가지 문제는 시내버스의 안전운행 문제와 직결된다. 과속과 신호위반, 난폭운전이 이 두 가지 문제에서 비롯된다.

 

시내버스의 안전운행과 직결된 또 하나의 문제는 차량 정비다. 더운 여름철이면 으레 터지는 천연가스버스의 타이어파열사고도 그렇거니와, 차량정비를 필요한 때에 하지 못해 애태우는 일이 허다하다. “차를 고치려면 쉬는 날에 나와서 고쳐야 하고, 예비차가 부족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다려야 해요.”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가 버스의 정비 상태를 파악하고 정비고에 가서 차량 정비를 요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내버스를 운행하는 것은 운전기사의 몫이지만, 버스회사의 사정 때문에 그 때 그 때 수리하지 못한 차량의 정비 책임을 운전기사에게 떠넘긴다니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란 말인가?

 

버스노동자들의 항변을 통해 바라본 전주 시내버스의 현실은,  2010년 12월 8일 시작했던 전주 시내버스의 장기 파업의 근본적 원인을 여전히 그대로 떠안고 있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