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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인의 거짓말

김영문( icomn@icomn.net) 2021.04.06 20:07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당연시하는 세상이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할 뿐아니라, 명백한 증거가 드러났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기 위해 거짓말에 거짓말을 일삼는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불법과 거짓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궤변과 말장난을 밥 먹듯 반복하며 허위의 성을 쌓는다. 심지어 그 거짓말은 자신의 거짓말에만 그치지 않고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까지 거짓말쟁이로 전락하게 하고 있으며,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거짓말의 동조자나 방관자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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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성왕이 아우 숙우에게 오동잎을 주며 장난친다. 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중국 은나라 폭군 주왕(紂王)을 정벌하고 중원을 통일한 주나라 무왕(武王)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 뒤를 이어 무왕의 어린 아들 성왕(成王)이 천자의 자리에 오르자, 무왕의 아우이며 성왕의 숙부인 주공(周公)이 섭정(攝政)으로 성왕을 보좌하며 정무를 주관했다. 공자가 자나 깨나 존경했다는 바로 그 주공이다. 당시에 어린 성왕과 그의 아우 숙우(叔虞)가 소꿉놀이를 하다가, 성왕이 오동잎으로 홀[珪]을 만들어 동생에게 주면서 “내가 너를 당(唐) 땅의 제후로 봉하노라.”라고 했다. 주공이 소문을 듣고 성왕에게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성왕은 “소꿉놀이를 하다가 장난으로 그랬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공은 성왕에게 “임금은 장난으로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天子無戱言.)”라고 하면서 나중에 숙우를 실제로 당 땅에 봉하게 했다. 여기에서 ‘오동잎으로 아우를 제후로 봉하다’ 즉 ‘동엽봉제(桐葉封弟)’라는 고사성어가 발생했다. 국가 사회의 지도자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여씨춘추(呂氏春秋)』 「중언편(重言篇)」)

춘추시대의 공자는 정치의 요체를 ‘군대(兵)’, ‘식량(食)’, ‘믿음(信)’ 세 가지로 제시하면서,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信)’이라고 했다. 즉 “백성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는 뜻이다.(『논어(論語)』 「안연(顔淵)」) 아무리 강한 군대, 아무리 많은 식량을 갖고 있더라도 지도자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 사회의 기반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회의 기반을 흔드는 거짓말은 역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중국 송나라 학자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주현왕(周顯王)」 10년 기록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나라는 백성에 의해 보호되고, 백성은 신의에 의해서 보호된다. 신의가 없으면 백성을 부릴 수 없고, 백성이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이러한 까닭에 옛날 성군들은 천하를 속이지 않았고, 패왕들도 사방을 속이지 않았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사람은 그 백성을 속이지 않고, 가문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그 친척을 속이지 않는다.” 작게는 가정과 직장에서 크게는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지도자의 신의야말로 그 집단을 지탱하는 바탕이며 기둥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지금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소꿉놀이를 할 때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공(周公)의 엄격한 도덕률을 그대로 적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어도 나라의 지도급 인사들은 제 욕심과 편의에 따라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에게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사회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유치원생도 비웃을 뻔뻔한 거짓말을 일삼는가? 중국 한(漢)나라 초기 젊은 정치가 가의(賈誼)는 『신서(新書)』 「대정(大政)」 상(上)에서 “대저 백성이란 만대의 근본이므로 속여서는 안 된다.”라고 했으며, 진(晉)나라 육기(陸機)는 「연련주(演連珠)」라는 잠언에서 “진실이 축적되면 그것이 비록 작더라도 반드시 만물을 움직일 수 있고, 거짓을 숭상하면 그것이 비록 광대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라고 했다.

자신의 과거 언행에 대한 진정하고 엄격한 반성이 없다면 설령 거짓말로 당선되더라도 그의 미래가 암담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도 암흑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팔뚝을 휘두르며 “새빨간 거짓말입니다.”를 뻔뻔하게 외치던 자의 말로가 어떠했는지 우리는 분명하게 알고 있다. 패가망신은 멀리 있지 않다. 탐욕을 위장하기 위한 거짓말이 바로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 비유컨대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는 리플리증후군 환자를 지도자로 뽑아서는 안 된다.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치료이지 가정과 사회를 파멸로 몰아넣는 정치 참여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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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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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자. 번역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문학박사.

중국 베이징대학 방문학자(한국연구재단 Post-Doc.)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경북대, 서울대, 한국교통대 등 대학에서 다년간 강의.

저서: 『노신의 문학과 사상』(공저), 『근현대 대구경북 중국어문학수용사』(공저) 등,

역서: 『동주열국지』(전6권), 『원본 초한지』(전3권), 『삼국지평화』, 『정관정요』, 『자치통감을 읽다』, 『문선역주』(전10권 공역), 『루쉰전집』(전20권 공역) 등 3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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