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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유유서 헌법’의 고루함에 대하여

윤현식( icomn@icomn.net) 2021.06.16 00:15

국민의힘 당대표로 36세의 이준석이 당선되었다. 군소정당에서는 더 젊은 나이에 당대표를 역임한 사례가 없지는 않지만, 30대에 불과한 나이로 100석이 넘는 국회 의석을 보유한 제1야당의 대표에 당선된 사례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더구나 국민의힘은 대표적인 보수정당이다. 노후한 구성원의 연령대, 현상 유지에 더 신경을 쓰는 보수성으로 인식되는 정당이다. 이런 정당에서 벌어진 일종의 ‘세대교체’인지라 이번 일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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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세간의 관심이 증폭하고 정치권은 요동친다. 급기야 어떤 여론조사업체에서는 이 신임대표를 대선주자에 포함시켜 지지율을 확인하는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여론조사와는 별개로, 젊은 새 당대표는 2022년 대선에 출마할 수가 없다. 현행헌법 제67조 제4항이 선거 당일에 40세가 되지 않은 사람은 대통령으로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헌법은 불혹은 돼야 대통령쯤 할 수 있다고 아예 명문으로 못을 박아놓고 있는 것이다.

피선거권 연령을 제한하고 있는 현행 공직선거법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나이를 25세로 제한하고 있다(공직선거법 제16조 제2항). 또한 지방의회 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역시 25세 이상 되어야만 출마의 자격이 부여된다(동조 제3항). 대통령은 40세가 넘어야 되는데 왜 전북도지사는 25세만 넘으면 되는가? 대통령은 국가의 대사를 책임져야 하고, 그 외의 선출직들은 그보다는 급이 떨어지니까? 이처럼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게 나이로 출마를 막는 규정이 문제가 되다보니, “장유유서 헌법”이니 “장유유서 선거법”이니 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대통령 피선거권 연령제한 규정이 헌법에 들어선 건 박정희의 쿠데타 이후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가 헌법을 개정하면서 40세 연령제한규정을 삽입했던 것이다. 그 이전의 헌법에는 아예 해당 조문이 없었다. 다만, 이승만이 전쟁의 와중에 집권연장을 위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였고(소위 ‘발췌개헌’), 개정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과 부통령을 뽑는 법을 만들었는데, 이 법에 처음으로 40세 제한규정이 들어갔다.

반면에, 국회의원의 25세 피선거권 제한규정은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해 마련되었던 국회의원선거법 제정과정에서부터 들어가 있었다. 당시 피선거권 연령제한 규정에 대해선 그게 대체 몇 살이 적정하냐는 논란이 있었다. 출마연령을 두고 온갖 설왕설래가 난무하던 중, 해방이후 최초의 선거를 위해 들어온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개입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25세로 굳어졌다고 한다.

아무리 민주주의체제라고는 해도, 나이 어린 사람에게 국정을 맡기는 게 불안할 수 있다. 그러니 최소한의 자격기준을 갖추었을만한 연령대로 출마를 제한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 최소한의 자격기준은 대체 무엇인가? 나이가 차면 그러한 자격기준에 합당하도록 지성과 인성이 채워지나? 아니, 다 좋은데, 도대체 얼마나 나이를 먹어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나? 현직 21대 국회의원 평균연령이 54.9세인데, 의원들의 지성과 인성에 국민들은 만족하고 있는가?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어떤 특정한 자연과학적 원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정치의식, 정치문화, 선거풍토, 국민경제적 여건과 법감정, 세계 입법례 등을 두루 고려하여 판단할 문제라고 결정해오고 있다. 얼핏 합리적인 듯한 결정이지만 결국 헌법재판소 역시 뚜렷한 기준을 내세울 근거는 없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선거권과 마찬가지로 피선거권 역시 나름의 기준에 따라 출마하한을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준이 국민주권원리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 정치적 평등권 등을 침해하는 정도로 과도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원리와 관련 기본권의 보장은 민주주의의 원리라는 국체의 핵심 가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선거권 행사연령과 형평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19세가 된 사람은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출마자격제한으로 인해 19세부터 24세까지의 사람은 총선 및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19세부터 39세까지의 사람은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권리행사에 중대한 불균형이 있는 것이다.

피선거권 연령제한을 한국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슷한 경제수준이나 정치환경을 가진 나라들과 비교할 때 그 기준이 지나치게 높다. 국회의원선거만 보더라도 출마자의 연령 하한을 정한 나라는 많다. 벨기에, 브라질, 칠레, 체코, 인도네시아, 이스라엘, 아일랜드, 러시아 등은 21세를 기준으로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포르투갈, 스페인, 스웨덴, 네덜란드, 스위스, 영국 등에서는 18세 이상이면 출마를 할 수 있다.

선거에 출마할 사람의 나이를 따지는 일은 선출된 사람에게 지도자로서 역할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권한에 필적하는 적절한 권위와 품성을 가리게 되고, 그 와중에 최소한 표를 던지는 ‘나’보다는 잘난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때 가장 직관적으로 와 닿는 기준 중 하나가 바로 세상풍파 제법 겪어서 모든 사안에 두루두루 깊이 생각이 미칠 것처럼 여겨지는 연륜이다. 그러나 연륜은 객관적 기준이 될 수도 없을뿐더러, 민주주의는 원래 연륜을 따져 영도자나 지도자를 옹립하는 것을 거부하는 체제다.

민주주의적 절차인 선거에서 유권자는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따라 출마자에 대한 평가를 한다. 만일 출마자의 나이가 너무 어려서 도저히 국사를 맡길만한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면 유권자는 그 출마자에게 표를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따지면 애초 출마연령 하한을 굳이 헌법이나 법률에 정할 필요도 없다. 다만 꼭 필요하다면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최저선에서 연령하한을 둘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행 법률과 헌법의 규정은 과도하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6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오스트리아를 국민방문했다. 오스트리아의 주요 인사들과 만남이 이어졌다. 그 중에는 판 데어 벨렌 대통령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총리와의 만남이 더 주목될 수밖에 없다. 오스트리아는 의원내각제이므로 총리가 실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직 오스트리아 총리인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1986년생으로 올해 35세다. 국민의힘 신임대표보다도 더 어리다. 쿠르츠가 총리직을 수행하기 시작했던 나이는 31세였다.

의원내각제 국가와 대통령제 국가를 단순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불혹은 되어야 대통령 한 번 꿈꿔볼 수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나이든 사람보다 젊은 사람이 국정을 맡으면 더 잘 한다는 공식은 없다. 또한 젊다고 진보고 나이 들었다고 보수라는 통념은 근거가 없다. 쿠르츠 총리나 이준석 대표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매우 보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신의 철저한 보수성으로 대중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하지만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기존의 통념에 맞서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서 자신의 정치적 생각을 사회적으로 제기하고 당당하게 피력하는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들 신진 정치세력의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정치적 · 사회적 발전이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또 효율적인 장치로 제 몫을 하게 된다. 사회의 역동성을 막고 있는 통에 “장유유서 헌법”, “장유유서 선거법”으로 조롱받게 된 피선거권 연령제한은 이제 전반적으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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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식

한국미래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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