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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하기수(上下其手)---사실 왜곡과 시비 전도

김영문( icomn@icomn.net) 2021.07.14 23:16

중국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수 천봉술(穿封戌)은 정(鄭)나라와의 전투에서 대장 황힐(皇頡)을 사로잡았다. 고대 전투에서 적장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대단한 전공에 속한다. 당시 천봉술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초나라 강왕(康王)의 아우 공자(公子) 위(圍)는 천봉술의 전공이 탐이 나서 포로가 된 황힐을 빼앗아 자기가 잡은 것으로 자랑했다. 천봉술은 공자 위의 파렴치한 억지에 화가 치밀어 공자 위와 격투를 벌이며 황힐을 다시 뺏으려 했다. 그러나 이미 거짓으로 전공을 세우려고 마음 먹은 공자 위는 황힐을 계속 자기가 잡은 포로라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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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상하기수를 그린 삽화, 출처 : 구글이미지검색)

초나라 강왕의 태재(太宰) 백주리(伯州犁)가 그곳을 지나다가 두 장수가 황힐을 사이에 놓고 전공을 다투는 것을 보았다. 두 장수의 말을 듣고 백주리는 사태의 실상을 짐작했지만, 공자 위는 강왕의 아우였기에 함부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백주리는 두 장수에게 포로 황힐을 강왕의 면전으로 데리고 가서 대질 심문을 하자고 제의했다. 천봉술과 공자 위도 백주리의 말에 동의하고 포로 황힐을 데리고 강왕 앞으로 갔다. 태재 백주리는 두 사람이 다투는 연유를 강왕에게 아뢰었다. 그리고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잡고 위로 높게 들어올린 채 공자 위를 가리키며 포로 황힐에게 말했다.

“이 분은 우리 초나라 주상 전하의 아우님이시다. 너는 거짓 진술을 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말하면 살려주겠다.”

이어서 모아 잡은 두 손을 아래로 낮게 내린 채 천봉술을 가리키며 포로 황힐에게 말했다.

“이 사람은 우리 초나라 방성(方城) 밖 시골의 현윤(縣尹)인 천봉술 나으리다. 너는 거짓 진술을 해서는 안 된다. 진실을 말하면 살려주겠다.”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목숨이 걸린 포로 황힐은 태재 백주리의 손짓을 보고 금방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백주리가 손을 위로 높게 들어서 가리킨 공자 위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본래 천봉술의 포로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공자 위에게 사로잡혔다고 거짓 진술을 했다. 태재 백주리와 강왕은 황힐의 진술을 근거로 모든 전공을 공자 위가 세웠다고 판정했다. 사실에 입각한 천봉술의 진술은 고려의 대상조차 되지 못했다. 진실이 완전히 왜곡되자 천봉술은 창을 집어 들고 공자 위를 죽이려고 했다. 태재 백주리가 그를 말린 후 결국 황힐을 잡은 전공을 두 사람이 반반씩 나누도록 중재했다.

이것이 ‘상하기수(上下其手)’ 사건의 전말이다. ‘상하기수(上下其手)’라는 고사성어도 여기에서 나왔다. ‘상하기수(上下其手)’는 본래 자신의 손으로 위를 가리키기도 하고 아래를 가리키기도 한다는 의미인데, 사사로운 인정이나 권력에 의지하여 사실을 왜곡하고 시비(是非)를 뒤집는 작태를 비유한다.(『좌전(左傳)·양공(襄公)』 26년,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 제66회)

놀랍게도 무려 2천5백년 전 중국 고대 사회에서 벌어진 광경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현재 많은 정치인들이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과 망언을 반복하며 사리사욕과 권력 쟁취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게다가 국가의 막강한 권력 기관도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자기 조직의 이익과 권력 유지에만 집착하고 있으며, 불편부당한 취재를 통해 공정한 여론 조성에 기여해야 할 언론조차 상당수 확인되지 않은 허위 보도로 진실 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정치적 중립을 조직의 생명으로 삼아야 할 검찰과 감사원의 수장이 옷을 벗자마자 현실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 대선 가도에 분주하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재직 시 그들의 언행과 권력 행사는 대부분 자신의 정치를 위한 편파적·선택적 소행이었다는 혐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가뜩이나 국민의 불신과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해온 권력 기관은 정치적 중립을 준수해야 할 조직의 생명조차 고사 상태에 직면하고 말 것이다. 현 정부의 편파성을 비판해온 권력 기관의 수장들이 또 다른 편파성 뒤에 숨어 자신의 언행을 분식하고 합리화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율배반이고 아전인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율배반과 아전인수의 바탕에는 사실 왜곡과 시비 전도라는 사술(邪術)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이것이 과연 허위와 협잡으로 진실을 왜곡한 ‘상하기수(上下其手)’ 사건의 본질과 얼마만한 차이가 있을까? 천봉술의 전공을 후안무치하게 가로챈 공자 위는 이후 초왕 웅균(熊麇) 부자를 시해하고 보위까지 훔쳤다. 그리고 무도한 폭정을 펼치다가 그의 막내 동생 채공(蔡公) 기질(棄疾)에게 쫓겨나 신하 신해(申亥)의 집에서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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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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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학자. 번역가.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문학박사.

중국 베이징대학 방문학자(한국연구재단 Post-Doc.)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역임.

경북대, 서울대, 한국교통대 등 대학에서 다년간 강의.

저서: 『노신의 문학과 사상』(공저), 『근현대 대구경북 중국어문학수용사』(공저) 등,

역서: 『동주열국지』(전6권), 『원본 초한지』(전3권), 『삼국지평화』, 『정관정요』, 『자치통감을 읽다』, 『문선역주』(전10권 공역), 『루쉰전집』(전20권 공역) 등 30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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