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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지역정당 ‘영등포당’ 창당의 시대적, 정치적 의미

‘영등포당’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 출발점

윤현식( icomn@icomn.net) 2021.10.22 09:56

영등포당 창당식.jpg

  10월 17일 일요일, 한국 정당사(政黨史)에 획을 그을 기념비적인 사건이 시작되었다. 지역정당인 ‘직접행동영등포당(이하 ‘영등포당’)’이 창당한 것이다. ‘영등포당’은 서울시 영등포구 주민이 당원이 되어 중앙정치로부터 독립한 지역정치활동을 전개하면서 영등포구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런데 영등포구만을 정치활동의 공간으로 한정하는 지역정당이라니, 웬만큼 정치나 정당을 아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정당구조가 매우 생경한 일일 수 있다.

 

지역정당은 일정한 지역을 정치활동의 무대로 한정한 정당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모든 의제를 포괄하는 전국정당과는 규모와 활동방향에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역정당이 없다. 딱히 강력한 정당등록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1950년대까지는 지역정당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61년 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 의해 만들어져 1963년부터 시행된 정당법은 까다로운 정당설립 요건을 정했다. 전국정당만을 정당으로 인정하고 있는 이 정당법 때문에 우리 사회에는 지금까지 지역정당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군사정권이 지역정당을 금지한 표면적인 이유는 정당의 난립에 따른 사회질서의 혼란을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1950년대 한국사회의 극심한 혼란이 정당의 난립에서 기원하고 있었고, 이러한 정치적 난장판을 수습하기 위해 쿠데타, 자신들의 용어로는 ‘혁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군부의 논리였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는 쿠데타를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했다. 군부가 두려워했던 것은 민주주의였다. 민주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군사정권은 민주주의의 정착과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였다. 정당설립의 자유 및 정당활동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그 일환이었다.

 

군사정권은 특히 풀뿌리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고사시키려 했다. 제정헌법으로부터 9차례에 걸친 헌법개정과정에서 지방자치는 단 한 번도 본문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군사정권은 이 지방자치를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국 헌정사의 최대 암흑기라고 할 수 있는 1972년 유신헌법에서, 군사정권은 부칙 제10조에 “이 헌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조국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라고 정할 정도였다. 박정희 군사정권의 뒤를 이어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 역시, 12·12 쿠데타로 집권한 후 개정한 1980년 헌법에서 역시 부칙 제10조에 “이 헌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를 감안하여 순차적으로 구성하되, 그 구성시기는 법률로 정한다”라고 했으나 결국 정권 내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두 헌법 모두 지방자치는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1991년에 부활한 지방자치는 30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사회적 상식으로 만들었다. 지방자치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대면을 통한 문제제기와 참여를 통한 문제해결로 체감되는 자치의 효용은 전국적 의제를 다루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바로 여기서 주민 또는 시민은 민주주의 의의를 현실로 자각하게 된다. 이렇게 정치의 효과를 체득한 사람들은 주권자의 권리를 자각하게 된다.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의 요람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처럼 정치의식의 함양과 민주 시민의 자질 양성의 기초가 되는 지방자치이다 보니, 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대척점에 서 있는 쿠데타 정권이 이를 억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방자치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 지 30년,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여전히 지방자치의 수준은 미흡하다. 행정과 재정의 자치에 비하여 특히 정치의 자치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지역정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치의 자율이 담보된 지방자치는 요원할 뿐이다. 지역정치는 사실상 지역구 국회의원의 권력에 장악되어 있고, 이 와중에 지역은 전국정당의 세 대결을 위한 자원기지 역할로 국한되어버린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지방의회, 특히 기초의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실정이다. 기초의회를 폐지하거나 적어도 기초의회 선거에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래서 나온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행정의 차원에 국한하는 건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행정은 결국 정치를 통해 결과된다. 정치적 과정을 경유하면서 제도가 정비되고, 그 제도에 의해 행정은 작동한다. 따라서 행정을 위해 정치가 자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러한 구조를 왜곡하는 것이다. 즉 지방행정을 위해 지역정치가 중단되어야 한다는 건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지역정치가 더욱 활발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할 게 아니라 중앙정치에 매몰된 전국정당과는 전혀 다른 대안적 정당이 기초의원 선거에 참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다.

 

불행히도 현행 정당법은 이러한 대안을 원천봉쇄하고 있다. 정당을 만들려면 반드시 중앙당이 있어야 하고, 중앙당은 서울에 있어야 하며, 5개 이상 광역시도에 당부를 두어야 하고, 각 광역 당부마다 1천 명 이상의 당원이 있어야 정당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특정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사안과 의제에 집중해 정치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전국정당에 입당해 해당 정당의 지역조직에서 활동할 수 있을 뿐이다. 전국적 의제와 중앙당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좌우되는 전국정당의 지역조직은 중앙정치에 휩쓸리기 십상이며, 지역정치를 활성화하는 데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을 기대한다는 건 난망한 노릇이다.

 

지난 2018년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했다. 이 개헌안에서 강조된 내용 중 하나가 바로 지방분권이었다. 자치를 넘어 분권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선언하고 이를 개헌안에 담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방분권을 내용으로 하는 개헌안에서 지방정치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물론 헌법에 모든 걸 담을 수는 없다. 헌법이 원칙을 천명하면 법률이 이를 실현하면 된다. 하지만 개헌안이 나오는 과정에서 지역정치에 대한 논의가 그다지 없었고, 따라서 법률 개정으로 이어질 어떤 핵심적 의제가 형성되지도 않았다. 그나마도 기껏 나온 개헌안이 흐지부지되면서 지역정치의 활성화라는 의제는 아예 등장하지도 못했다.

 

제20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불과 반년도 채 남지 않았다. 유력 정당들에서는 대선후보를 선출하느라 바쁘다. 한국사회의 모든 사안과 의제가 대통령선거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마치 우리 앞에는 대통령선거 외에 어떠한 정치적 이슈나 이벤트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불과 3개월 안에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실시된다. 하지만 대선과는 달리 지방선거에 대해선 지금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고 있다. 어느 정치세력도 지방선거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대선과 총선의 부수물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세태다.

 

이 상황에서 ‘영등포당’의 창당의 의미는 각별하다. ‘영등포당’은 창당대회를 마친 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정당등록 신청을 했다. 현행 정당법에 따르면 ‘영등포당’의 정당등록신청은 아마도 100%의 확률로 반려될 것이다. 법에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정당등록신청이 반려되면 ‘영등포당’은 행정소송을 비롯한 사법적 대응을 할 것이고, 이와 동시에 정당법 개정을 요구하는 제도개선활동을 전개할 것이다. 문제는 법이기 때문이다.

 

지역정당이 막 출발한 상태인지라 아직은 사회적 반향이 거의 없다. 돌은 던져졌고, 이제 막 파문이 일어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등포당’은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는 출발점이 되리라는 점이다. 전세계적으로도 지역정당을 이렇게 제한하는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웠다는 한국이 이제야 지역정당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겸연쩍은 일이다. 이 겸연쩍음을 딛고 분연히 용기를 낸 ‘영등포당’의 창당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물결이 되어 넘칠 것이다. 그 장도의 첫걸음을 뗀 ‘영등포당’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는 실질적으로 지방분권을 위한 기본적 토대를 만들 때가 되었다. 그 토대의 핵심에 지역정당이 있다. 전국 각처에서 ‘영등포당’과 같은 지역정당이 만개하기를 기대한다.

 ​ /윤현식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술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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