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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치의 계절에 횡행하는 지역 없는 지역 공약

관리자( icomn@icomn.net) 2021.12.2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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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식(민주주의법학연구회 학술위원장)

  선거철이다. 더구나 대선정국이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다. 대선은 모든 의제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온갖 감언이설과 공약이 난무한다. 표가 된다면 못 하는 소리가 없다. 개중에 대표적인 것이 지역 연고에 대한 후보의 내력이다.

  현재 유력한 대선주자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모 후보를 보자. 출생지는 서울이지만 원적이 충청도라는 점을 내세워 “충청의 아들”, 외가가 강릉이다 보니 “강릉의 외손”, 초임지였던 대구는 “나를 품어준 고향”, 또다른 부임지였던 광주에 가서는 “호남은 마음의 고향”을 이야기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연고를 강조하는 건 다른 유력주자도 다를 바가 없다. 출생지인 대구경북은 당연히 고향이고, 그 밖의 지역에서도 연고를 따지고 들어간다. 예를 들어 강원 태백은 형님이 살고 있으므로 인연이 있다는 식이다.

  정치인이 전국을 다니면서 연고를 따지는 건 고전적인 현상이다. 연고에 따른 친연성을 강조하는 것은 나름 각 지역의 유권자들과 친근감을 높이고, 후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다. 관심과 인기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법이다.

  문제는 지역적 연관을 강조하는 것에 있지 않다. “팔도가 고향”이라는 빈정거림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역을 입에 올리지만, 정작 이들의 관심사에는 지역이 없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적 측면의 공약은 있지만, 구석구석 존재하는 ‘마을’의 존폐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엄중함은 관심 밖이다.

  대선 말고 지방선거에서는 지역에 대한 풍성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경험에 비추어볼 때 별로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는 대선과 바로 붙어서 이루어지는 시기적 특성으로 인해 지역사안에 대한 판단보다는 대선결과에 따른 작용 반작용의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여러모로 지역에 관한 논의는 변방으로 물러난다.

  그나마 지금 논의되는 ‘지역’ 이야기는 단연코 ‘메가시티’다. 메가시티는 인접지역의 연계 ·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도시연합을 의미한다. 도시연합을 통해 양적 질적 역량을 키워 거대도시형 지역개발로 연계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 집중됨에 따라 비수도권은 갈수록 초토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집중해있고, 교육과 일자리를 이유로 특히 청년층의 60% 가까이가 수도권으로 집중하는 상황이다. 지역 내 총생산(GRDP) 또한 수도권에 절반 이상이 쏠려 있다. 이런 수도권 집중화 현상에 대응하면서 지역적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메가시티다.

  예를 들어 수도권 이외의 지역을 4대 메가시티로 추진하자는 안이 있다. 대전 · 세종 · 충북 · 경남권, 대구 · 경북권, 부산 · 울산 · 경남권, 광주 · 전남권 등 4대 권역별 메가시티 추진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들 권역엔 특별지자체가 만들어진다. 쉽게 말해 각 권역의 ‘수도’가 구성된다는 거다. 이렇게 해서 광역권 메가시티와 그 중심도시가 형성되고, 이러한 구조에서 지역발전을 모색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과연 작금 문제가 되는 ‘지역소멸’을 막는 방안이 될 것이냐이다. 즉 지역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메가시티 계획이 실제로 방방곡곡의 ‘마을’로 대변되는 진짜 지역을 살려낼 수 있는가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그럴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다. 메가시티 관련 논의들이 이미 몇 개의 ‘서울’을 더 만드는 방향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특별자치체인 중심부 또는 개발지에 메가시티 전역의 자원이 쏠리고, 결국 도시 외곽의 촌락은 더욱 빠르게 소멸하게 되는 현상이 우려된다.

  이러한 현상은 메가시티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도 지역 각처에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예컨대 마산 · 창원 · 진해가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한 후 기존 창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이었던 마산과 진해가 더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있던 자원까지 창원으로 흘러가고 있는 현황이라든가, 또는 혁신도시로 인구가 쏠리면서 구도심이 빠르게 비워지게 되는 광주광역시 사례를 보면 메가시티에 대한 우려의 신빙성을 높여준다.

중심부로의 쏠림현상을 서울만이 아니라 지방에서도 누리겠다는 메가시티방안이 현안인 지역소멸의 방비책이 아님은 분명하다. 규모의 경제보다는 오히려 마을마다 자치권을 강화하고 자생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먼저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방안은 행정효율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근시안적으로 행정효율만 따지다 보니 메가시티 이상의 방안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자치는 행정의 효율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정치적 과정을 더 정교하게 하는 데서 출발해야만 한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되는 지방자치법을 보자. 시행 예정인 이 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제4조다. 법 제4조 제1항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와 의회의 구성을 주민의 자율적 선택에 따라 결정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구성을 의회의 구성과 연동하여 내각제 형태로 한다거나, 의회의 구성을 전원 비례대표제로 하는 등의 구성이 가능하다. 그 외에도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집행기관의 형태 및 의회의 형태가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상상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가능성과 전망이 고루 검토되는 정치적 상상력 말이다. 한편 대두된 온갖 가능성이 그저 상상으로 휘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본격적으로 지역정치가 시작된다. 특히 지역정치가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지역과 현장에서부터 주민들의 정치가 시작되므로, 가장 말단의 마을단위까지 정치적 역량이 발휘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는 점이다. 읍면동장을 주민의 손으로 뽑거나 읍면동 의회를 만드는 등 과정은 지역현안을 주민 스스로 찾아내고 해결함으로써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대안과는 달리 바로 살갗에 닿는 생생한 정치적 결과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지역차원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도록 보장하는 정치적 기반의 형성은 아직 요원하다. 지역정치의 원동력이 되는 지역정당의 설립 등은 계속 발이 묶여 있다.(필자의 10월 참소리 칼럼 “지역정당 ‘영등포당’ 창당의 시대적 정치적 의미” 참조)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어 소위 ‘자치분권 2.0’ 시대가 열린다는 자화자찬이 무색하게 여전히 지방자치는 행정자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공허한 메가시티 담론만 넘쳐난다.

  대선후보들은 중구난방으로 고향을 주워섬기기보다 명확하게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과연 누가 얼마나 현재의 지역문제를 살피고 있는지, 풀뿌리 민주주의에 기반한 분권자치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지, 유사 서울 몇 개를 만드는 메가시티가 아니라 소멸해가고 있는 마을들을 살릴 계획이 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전국을 유사 수도권으로 만든다고 하여 수도권으로 몰린 자원이 지방으로 돌아서지는 않는다. 대도시는 물론, 저 산간오지 도서벽지 어느 곳이든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곳이 사람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고민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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